- [성경본문] 마태복음9:23-2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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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의 권세
오늘 우리가 대하는 마태복음 9장은 전장인 8장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큰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셨어요. 8장에서는 허다한 무리 중에 간절한 마음으로 낫기를 원하여 예수님을 찾아온 문둥병자를 고치셨고, 중풍병을 앓고 있는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셨으며, 열병 가운데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셨고, 심지어는 파도치는 바다를 잠잠케 하시므로 자연을 제어하시는 능력 있으신 주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거라사 지방에서는 무덤가에 살고 있는 귀신 들린 자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로 영적인 세계를 지배하실 수 있는 그 권세를 가지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능력 많으신 예수님의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여러분의 삶에도 주의 권세가 임하셔서, 기적같은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 능력 많으신 주님의 모습이 오늘 9장에서도 계속됩니다.
8장과 비교하여 9장에서는 예수님의 권세에 대해서 우리가 더 배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그런 능력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가 사망의 이르는 죄를 사할 권세가 있겠습니까?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자 까지도 살려내시면서 죄의 결과인 사망,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의 올무를 풀으실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요, 인류를 구원하실 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입니다. 그 사랑과 용서는 누구에게 주어지겠습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교만하지 않고, “나는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사람, 그 누구도 자신을 그 죄 가운데에서 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믿을 때에,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권세를 우리가 좀 더 깊이 알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사망에 대한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사망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가장 참혹한 형벌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형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처럼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십니다. 어떻게 증명하셨나요? 23절로 26절 말씀을 찾아가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예수님께서 말씀처럼 사망의 올무에 걸려 있던 한 소녀를 사망으로부터 건지시고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인류를 구하실 구주라는 사실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육체는 원죄로 인한 결과로 늙어갈 수 밖에 없고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믿는 즉시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흙으로 돌아간 우리의 육체는 세상 마지막 날에 영광 중에 구름타고 주님 오시는 그날에 영혼과 하나가 되어집니다. 그러면 새로운 신령한 몸으로, 부활체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도 그 어느 것도, 저와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롬 8:37~39)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초연히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죽음 저편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 믿음이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 있는 자의 모습은 죽음이 다가 올 때에 드러납니다.
요양원을 운영하시는 우리 교회 성도님으로부터 들었어요.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이 숨이 멈추기 전에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한 부류는 죽음이 너무 싫은 거에요. 두려운 거에요. 그래서 안 죽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떠나는 부류, 그리고 또 한 부류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 이제 하늘나라 갈 때가 되었어~!” 편안히 잠드시는 부류입니다.
그런데 너무 너무 너무 맘이 아픈 것은 평소에 예수 믿는다는 집사님, 권사님 중에, 막상 죽음의 시간이 되니 그 평생 믿었던 믿음은 온데, 간데 없고, 마치 천국이 없는 것처럼,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 중에 한 두 분이겠지요. 그러면서 저에게 조언 주시는거에요. “목사님, 구원의 확신에 관한 말씀을 자꾸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요양원에 계시는 동안 확신이 없는 믿은 자들을 볼 때에 너무 맘이 안타깝고 힘들어요.”
성도 여러분, 여하한 경우에도 우리가 천국소망 믿음을 놓아서는 아니됩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확실히 믿으시고, 영생복락이 있는 천국이 있음을 믿고 소망 중에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죄에 대한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죄’란 성경원어로 보니 ‘하말티아’ 그 뜻이 '과녁을 빗나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에로부터 벗어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벗어났다.” 이 뜻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짓을 행하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실 때에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죄 사함의 권세가 예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6절에 예수님의 죄 사하시는 모습에 의문을 갖은 서기관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은 죄를 다스리고 용서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 권세는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 중 제2위가 되시는 성자 예수님에게 부여하신 권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8)
셋째로, 죄의 올무에 대한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죄의 올무란 죄로 인해 발행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모든 아픔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러한 올무를 풀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죄로 인해 생긴 올무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질병과 배고픔, 귀신들림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 우리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올무들로부터, 병든자들, 직업으로 인해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는 세리 마태와 같은 자들, 귀신들린 자들을 건져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가 모든 죄의 올무에 대해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로 보건대 예수는 우리를 모든 질고에서 건져내 주실 메시야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권세로 도움을 받고, 구원을 받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첫째 그 대상은 스스로 죄인이라 여기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나 창기, 가난하고 병 든 자들과 같이, 사람들이 멸시하거나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이들을 가까이 하셨어요.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구원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께서는 심령이 가난하고, 죄에 억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겸손해야 해요. 자신을 의롭다 생각하여, 교만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죄를 자복할때에 긍휼과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 대상은 병든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에게 접근한 것은 그들이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중풍병자가 그렇고 혈루병에 걸린 여인이 그렇고 소경된자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귀신들려 말을 못하는 자도 그런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고쳐주셨어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가 육신의 질고를 짊어지고 괴로워 할 때에 찾아오시는 사랑이 많으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마음을 활짝 열고, 고쳐주시는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주님의 용서하심과 긍휼하심과 치유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그 대상은 긍휼을 필요로 하는 자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병 든 자만이 예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자, 삶의 소망이 없어 고통받는 자, 사랑 베풀어 줄 사람이 없어 고통받는 자들도, 모두 구주 되신 예수의 구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을 아시사 그들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성경말씀 3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한글개역본은 “민망히 여기사” 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 뜻이 ‘불쌍히 여긴다’ 라는 말입니다.
지난 주일 한 나이 많으신 남자 어르신이 식당에서 밥을 드시고, 저는 인사드리고 기도해 드렸는데요. 요양원과 같은 독거노인을 돌보는 시설에 거주하고 계신 분이세요. 그런데 입을 옷도 입고 있는 그 옷 밖에 없대요. 추운 겨울 어떻게 지내요? 그런데 이분을 교회로 인도하신 우리교회 권사님은 이분을 불쌍히 여기니, 어찌하든지 이분을 도우려고, 알고 보니, 전에도 몇 번 남편의 옷을 갖다 드린 거에요. 잘 하시는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어려운 자들을 어떻게 도우시겠습니까? 교회를 통하여, 그리고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교회의 성도들을 통하여, 그 마음을 움직이셔서, 도움의 손길을 베푸신다는 것을 꼭 아시기 바랍니다.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감사한 마음으로 바른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인간들에게 값없이 은혜를 주신다고 해서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 받은 자는 이전보다 더 해야 할 일이 많아집니다. 그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이 올바른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9장 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은 정말 제사 드리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올바른 제사를 드려라” 하는 말씀이에요. 예수의 은혜를 입어 구원받은 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는 것인데 이는 예수님과 같이 삶이 어렵고 힘든 자들을 향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보는 것으로, 느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해 저들의 필요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어려운 자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세요.” 이렇게 마음을 먹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놀랍게도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리는 자에게, 도울 수 있는 재물도, 건강도, 능력도, 환경도 여건도 마련해 주십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나 한 사람 추스르기도 바쁜 그런 모습이 아니라 이 예수님의 권세를 힘입어, 복을 받아, 나누고 섬기는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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