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8:1-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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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를 감동시키는 자
우리가 앞서 마태복음 5장에서부터 7장까지는 산상수훈으로, 예수님께서 산위에 올라가셔서, 가르치신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에게 천국시민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실천 강령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셨어요.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주세요. 그 권세를 실제로 행사하십니다. 먼저는 병든 자들을 병마로부터 고쳐주십니다. 나병환자를 고쳐주시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시고, 베드로의 장모를 열병에서 고쳐주세요.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귀신들린 자들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시고 저들의 병을 고치십니다. 이후에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 중에, 거친 파도가 일어 제자들이 힘들어 할 때에는 바다를 꾸짖고 잠잠케 하시는 놀라운 권세도 보여주십니다. 자연도 제어하시는 예수님의 권세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후 바다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서 도착해서는 그 마을에 귀신에 사로잡혀서 무덤가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귀신들린 자를 고치십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이와 같이 질병을 고치시는 권세와 자연을 제어하는 권세, 그리고 귀신들을 물리치는 권세를 갖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메시야로 오셔서 백성들에게 1) 천국복음을 전하시는 일을 하셨고, 2)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셨고, 3) 그리고 치유사역을 하셨습니다. 이 중요한 세 가지 사역은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인류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 일들이었어요.
그분의 사역들이 다 귀하고 중요하지만 이 새벽에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은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병도 고치실 수 있다고 하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어요. 그의 믿음으로 예수님은 감동을 받습니다. 감동을 받으시는 예수님, 그래서 예수님은 놀라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세요.
10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놀랍게 여겨” (He is amazed) 한글개역에는 “기이히 여겼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깜짝 놀라셨다는 것이에요. 그의 믿음에 예수님이 감동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병 고침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어떻게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믿음이 있는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감동시키고 싶으시지요?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이 백부장의 믿음으로부터 우리가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어려움에 처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백부장, 그는 로마의 장교였습니다. 백 명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는 권한이 그에게 있었어요.
그런데 그의 하인이 병들었습니다. 보통병도 아니고 중풍 병이었어요. 사실 그 당시 의학의 수준으로 보면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처해있었습니다. 당시에 하인이라면 노예와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저 권세 있는 자의 소유물 정도였고 그 역할은 일로 돕기 때문에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인데, 이는 일을 돕기 키우는 가축과 다를 바가 없는 그야말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그 당시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는 말하기를, “하인은 가축과 다를 바가 없는 소유물이었는데, 가축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그저 사람이기에 말귀를 알아듣는 다는 것 이외에 가축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풍 병이 들었으니 사실 하인으로서 두기를 포기해도 그뿐이었어요. 아무도 이 로마 백부장을 뭐라고 말할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 백부장은 그를 긍휼히 여겼어요. 그를 어찌하든지 낫게 하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었어요.
더욱이 로마 군인이 로마인도 아닌 이방인이며 중풍병자인 하인을 낫게 하기 위하여 간청하는 모습에 예수님은 감동을 받으셨어요. 사실 그와 같은 백부장의 마음은 예수님이 갖고 계신 긍휼의 마음이었어요. 그러기에 예수님은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높고 낮음을 떠나, 생명을 소중이 여기는 마음, 불쌍한 처지에 있는 자를 긍휼이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어려운 자를 도울 때에 사실 이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자는 이미 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 마음이 건강한 것이에요. 바로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빚으실 때에 생기로 넣으신 하나님의 형상이, 그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가 미국을 순회할 때에 어느 한 여인이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어떠한 좋지 않은 충격으로 인해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녀가 데레사 수녀에게 말했어요. “나는 지금까지 치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였어요. 상담도 하고 약도 먹고 재활운동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남은 일은 자살밖에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때에 마더 데레사가 그녀의 말을 듣고 조언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죽음을 좀 뒤로 미루고 인도를 방문해주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곳에 한 병원이 있는데 거기서 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어요. 당신이 그곳에 와서 저와 함께 한달 정도만 봉사하기를 바래요. 그 이후에 당신이 원하는 그 자살은 하든지 그건 당신 맘이에요.”
데레사 수녀의 조언을 듣고 이 여인은 인도 캘커타로 갔습니다. 그녀는 그 병원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달 뒤에 데레사 수녀가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 알기 위해 그곳에 가서 그녀를 만났어요. 그런데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그녀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져 있었어요. 마더 데레사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어요. “그래, 언제 죽을 계획이에요?” 그때에 이 여인이 답을 했어요. “죽다니요? 왜요?” 그녀는 계속 말했어요. “나는 이제 왜 내가 계속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전에 나는 나에 대해서만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죽으려고까지 했지요. 그러나 이상하죠. 남들을 생각하고, 남들을 돌보는 동안, 정작 내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느꼈어요.”
내가 나만 바라보고 나의 어려운 처지만 바라보면 삶을 포기하고 싶어요. 그럴 때에는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내가 아플 때에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을 보세요. 내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여길 때에, 그래서 집이 좁다. 반찬이 시원찮다. 입는 옷이 고급이 아니다. 어려운 선교지에 가서 그 사는 모습을 보세요. 없어도 웃어요.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살아요. 나는 정말 외로운 존재라고 여길 때에는 요양원에 가서 연로하여 홀로 되었으나 그곳에 계신 같은 처지에 있는 어르신들과 도란 도란 얘기하며, 오손 도손 살아가시는 분들을 보세요.
내가 외롭다 여길 때에 나보다 외로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보세요. 그리고 가서 저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보세요. 놀라운 일이 여러분 삶 가운데 벌어집니다. 내 영혼이 소생하게 됩니다. 내 영혼이 건강해 집니다. 놀랍고 신기하죠. 왜 목사들이 선교사들이 정신이 건강할 수 있는가? 힘든자들을 위해 찾아가서 심방하고 전도하고 기도하는 중에 내 영혼이 씻쳐지고 맑아지는 거에요. 그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모습을 바로 이 로마 백부장의 태도에서 볼 수 있는 거에요. 내가 남을 돕지만 사실 그와 같은 선한 일을 통해 이미 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세가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어요.
두 번째,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의 강한 믿음입니다.
백부장의 간청을 듣고 예수님은 “그래, 가보자” 대답하셨어요. 그런데 그가 이어 응답합니다.
8절 말씀,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어떻게요? 9절 말씀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님과 백부장의 집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요. 오늘날에는 전화를 통해, 스카이프를 통해, 이메일과 카톡을 통해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소통하고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 당시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믿음이 이 백부장에게 있었어요.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깜짝 놀라시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이 모습을 볼 때에 저는 우리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곁에 없는 자녀들을 생각해봅니다. 군에 가서 복무하고 있는 자녀들, 유학이나 이민을 가서 먼 나라에 있는 자녀들, 지방에서 근무하는 자녀들, 먼 곳에 시집가서 자주 보지 못하는 딸들..., 저들이 아프고 저들이 어떠한 문제로 어려움을 격을 적에 부모된 우리들은 얼마나 마음이 안타깝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여기에서 기도하는데 그곳에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기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여기에서 기도하는데 저기에서 응답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있었지만 위기 때마다 풍토병으로 자연재해로 공산당의 테러위협으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에, 때로는 전화로 때로는 팩스로 고국교회에 긴급기도요청을 하곤 했습니다. 그날이 수요일이면 수요 저녁예배에 기도해 달라고 금요일이면 금요철야기도시간에 기도해달라고 ....그런데 고국교회에서 기도하면 선교 현장에서 놀라운 응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슴떨리고 힘든 어려운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런 경험을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 백부장의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시공간을 초월하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그 믿음에 예수님은 놀라시고 감동을 받으셨던 것이었어요. 성도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어요. 우리의 자녀들 군에가 있어요. 외국에 나가 있어요. 가서 볼 수 없어요. 여기에서 기도해요. 그런데 기도의 응답이 그곳에서 나타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민족 간에 또는 인종간의 차별을 두지 않는 그의 모습에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백부장은 명백히 로마시민이었습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을 정복한 로마군대의 장교였어요. 이 하인은 로마시민일 수가 없지요. 더욱이 이 백부장은 자신들이 정복한 이스라엘 유대인인 한 젊은 랍비인 예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간청을 합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자존심 상해서라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에요. 같은 로마인이 보면 창피를 당 할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는 그 장벽을 뛰어넘었습니다. 천한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민족과 인종를 초월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이 백부장, 이 모습은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어요.
바로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선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랑)을 품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지금까지 역사를 이루어왔습니다. 교우들께서 참 헌신많이 하셨습니다. 기도로 그리고 물질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너무 훌륭하고 감사한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요. 정작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는 선교지가 어떤 모습인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요. 그러니 마음에 와 닿지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정작 전도해야 할 때에 전도하지 못해요. 외국인들이 들어와 있어도 관심이 없어요. 그저 돕는다고 했지만 내가 실천하는 일로는 여전히 서툰것입니다. 직접 현장에 나가보지 않아서 그래요. 그런데 이 모습이 우리 청년들에게도 있어요. 가장 열정이 뜨거울 나이의 청년들이 선교지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가 보려고 하지도 않아요. 왜 그렇겠습니까? 주일학교때부터 이 훈련이 안되어 있어요. 나가본 적이 너무 없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교회가 다음세대 선교훈련 선교교육에 집중하고자 교회가 돕고 격려하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우리 교회에 있어서 그리고 개인의 마음에 있어서 1) 긍휼히 여기며 2) 기도의 능력을 믿으며 3) 인종의 벽을 초월하여 선교하므로 주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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