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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월초] 내가 약할 때에 날 세우시는 하나님
운영자 2019-11-01 추천 2 댓글 0 조회 683
[성경본문] 출애굽기3:10-14 개역개정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가 약할 때에 날 세우시는 하나님

 

201911월 첫날입니다. 참 세월 빠르지요? 년말이 다가옵니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아주 냉정하게 흘러갑니다. 밤이 되면 모든 생명체는 안식을 취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쉬지 않고 흐릅니다. 그 모습이 꼭 유수와 같다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고 있는 순간에도 산골짜기 계곡의 물은 콸 콸 콸 콸~!”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갑니다.

 

더욱이 11월이라 그러니, 2019년도에 그토록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바랬던, 기대와 소원, 목표들이 과연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그 셈을 할 때가 다가온다고 하니, 어느 분들은 초조해지기까지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조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그리고 우리는 주를 의지하고, 그 앞에 나와, 이 날도, 첫 시간, 하나님께서 제일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첫 것, 한 달의 첫 시간, 하루의 첫 시간을 주께 바치고 기도하고 있으니, 반드시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입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입니다. 취업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새 일이 시작될 것입니다. 원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입학시험의 좋은 결과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일터에는 새로운 거래처가 연결되고 성사될 것입니다. 아기를 잉태하는 임신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신 사명 감당하도록 마음과 육신의 건강의 회복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믿음대로 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새벽에 말씀 제목이 내가 약할 때에 날 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한 음성으로 따라 하겠습니다. 내가 약할 때에 날 세우시는 하나님아멘~!

양들에게 더 좋은 꼴을 먹이기 위해 호렙산에 이른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 그러나 타서 없어지지 아니하는 그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심에 떨기나무 그리고 꺼지지 않는 불로 나타나심은 그 깊으신 뜻이 있었어요.

 

떨기나무는 세네라고 불리는 일종의 아카시아 나무인데,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습니다. 나무도 그 모습이 다양해서 위풍당당하게, 곧게 자란 나무들은, 재목으로 쓰임 받는가 하면 또는 가지가 무성해서 그늘을 드려,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떨기나무는 그야말로 볼품도 없고 쓸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땔감정도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떨기나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면, 그 당시 멸시받고 압제당하고 굴욕가운데 처해 있는 비참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불이 붙었다 라는 것은 태워 없애고자 하는 것인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진노’, 그리고 심판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는 하나님 그러면 죄를 지을 때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옥은 뜨거운 불, 꺼지지 않는 불 못으로 묘사됩니다. 예수께서 마가복음 948절과 49절에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거기에서는(지옥)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지옥은 불못이요,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는 곳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불타는 떨기나무, 그러나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애굽에서 나타난다 할 지라도....., 이 모습은 바로 바로왕에게 임하게 될 열 가지 재앙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그 진노와 심판의 불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남는다.” 불타지 않는다. 불이 타고 있으나 불타서 없어지지 않고 생존하게 된다 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 모습은 장차 주님께서 구름타고 재림하실 때에, 저리로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때에도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불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지겠으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그 심판 중에서 건짐을 받아 영원한 하늘나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모습은 또한 모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세는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가 되고 광야에 무명의 목자가 되어 보잘 것 없는 떨기나무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네가 선의의 일로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가 되어 환란을 당하는 구나~! 그러나 내가 너를 지금까지 보호하였다. 이제 때가 되었단다. 내가 너를 다시금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다시금 애굽으로 보낸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이 모습은 이 새벽에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중에 어려운 때에 처해있는 분 있습니까? 믿지 않는 가정에서,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과 일터에서, 또한 이 경제적 불황에서 맡겨주신 사업체를 붙잡고, 너무 눌려 있습니까? 근심과 눈물 마를 날이 없습니까? 그 상처로 인해 피멍든 가슴으로 답답하고 비참하다고 여깁니까? 패배감이 가득차서,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는 그 자랑스러운 자존감마저 잊었습니까?

 

이 모습이 오늘 모세의 모습이지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말씀에 보니 모세가 선뜻 그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이기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표현은 그의 과거의 아픈 모습,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자 했었으나, 이스라엘 동족의 동조를 받지 못하고, 도리어 항의를 받고, 거꾸로 애굽병사를 죽인 것이 화근이 되어 바로 왕이 그를 죽이고자 했었던 그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자신은 왕자였습니다. 당시 최강의 나라 애굽, 그 나라의 왕자로 40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과 권세가 있었어요. 위풍당당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동족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으리라 여겼었어요. 자만심이 가득찬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출애굽기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사도행전 725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모세)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자기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 고 믿고, 과감하게, 살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동족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 손을 통하여,” 다른 말로는 왕자의 손을 통하여,” 그런데 아니었던 것이었어요. 오히려 그 일로 도망자가 되어 미디안 땅에서 무명의 목자로 보낸 세월이 40년이었던 것입니다. 실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40년 세월 속에 그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조차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이에요. 그러니 사명도 잊었어요. 내가 누군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 그런 분, 있습니까? 내가 누군가?” 이 질문조차 잃어버린 채, 강한 세파에 휘둘리고 때로 실패하고 좌절하는 가운데, 마치 미운 오리새끼처럼, 나는 백조인데, 오리가 아닌데....,!”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겨,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시기까지 하시며. 내 영혼을 구하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만들어 가시는데, 정체성조차 잃어버린 채, 그저 그렇고 그렇게, 기대없이, 비전없이, 그저 하루에 하루를 더하며 살아가는 인생, 혹 이 자리에 있습니까?

 

모세는 그처럼 어머니로부터 어릴 적부터 들었습니다. 배웠습니다. 가슴에 새겼습니다. 모세야,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너를 물에서 건져주셨어. 그래서 네 이름이 모세란다. 그러기에 너는 고통받고 있는 네 동족을 위해 뭔가 큰일을 할 거야! 너는 그것을 잊으면 안 돼~!” 그래서 모세는 뭔가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살인자요, 도망자요,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그런 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듣지 않았습니까? 주 앞에 나와 기도할 때에 청년의 시절에, 중년의 시절에....., 연정아, 너는 자랑스런 내 아들이다. 금래야 너는 사랑하는 내 딸이다. 너를 향한 나의 계획이 있다.” 그런데 잘 안돼요. 성공하지 못해요. 가라앉아요. 그래서 자괴감에 빠져요. 결국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난 안돼~! 노력해도 안 돼~!”

 

건전한 자아상은 아닙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하고자 하는 의욕도 사라졌습니다. 실패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트라우마죠. 충격이 되어 실패와 좌절감이 가슴에 꽉 차 있어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은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그러시려면 40년 전에 저를 찾아오셨어야죠? 제가 왕궁에 있을 때에, 왕자의 권한과 능력과 패기와 권세가 있을 때에, 그렇게 내 동족을 위해 뭔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타고 있을 때에 오셨어야죠? 이제는 늦었습니다. 보세요. 나는 이제 나이도 먹었고, 무명의 목자일 뿐입니다. 오늘도 그저 광야를 전전하고 있어요. 내 일은 그저 내 양도 아닌 장인어른의 양들을 치며, 보세요, 나는 그저 내 집도 없는 데릴사위일 뿐이라구요.”

 

안 그렇겠습니까? ~, 옛날이여~!” 이선희 가수가 불렀죠? 노래 가사처럼...., 패배감, 실망감, 좌절감, 의욕상실....., 성도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한번 큰 소리로 따라서 하십시다. 믿음의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죽었으니 예수로 산다.”

 

왜 그렇습니까? 교만함이 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 그 누군가 도와준다고 해도, 일의 주도권이 내게 있어, 내가 한다는 생각, 왜 나는 잘 났으니까!

그래서 I am something!” 그런데 이처럼 철저히 부서지고 나서는 생각이 나는 아냐! 나는 그런 존재가 못 돼~! 그래서 "I am nothing" 그런데 이 모습이 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변해요. 하나님께 주도권을 드리고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I am special!.....in God's hands! "나는 특별한 존재, 주님의 손안에 있는 한~!” 그러기에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단계에 성숙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메세지에요. 하나님은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교만한 사람도 원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열등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원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그러나 신실합니다. 그러기에 주여, 나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주여 나를 도와주세요. 그러면 내가 일어나 주신 일 감당하겠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주의 능력으로 감당하겠습니다.”

 

그래서 잘 되어지는 일이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자신이 그 영광을 가로 채려고 하지 않아요. 자신이 높아질 이유가 없어요. 그저 주님의 영광만 나타나는 거에요. 이 모습이 주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계속 쓰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능함을 인식한 모세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처방전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12절 말씀 첫 문장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임마누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역사가 나타납니까? 형통하였더라. 범사가 형통하였더라. 저가 행하는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하였더라 요셉의 삶 아니었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잃었어요. 그저 인생의 가장 낮은 자리 노예로 팔렸지 않았겠습니까? 뭐가 남은 것이 있어요? 몸뚱아리 하나 뿐이에요. 아니요, 그런데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식지 않는 꿈이 있었습니다. 곡식 단 열한개가 일어선 자신의 곡식 단을 향해 절을 합니다. 해와 달과 열한별이 요셉에게 절을 합니다. 그 꿈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이게 소망입니다.

 

여러분, 이 꿈이 오늘도 여전히 여러분의 가슴을 울리고 있고 휘젖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신 약속의 말씀 말입니다. 그 꿈을 안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요셉에 인생에 그 역사가 일어나는 곳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할 때가 아니었어요. 채색옷을 입고 있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고 있을 그 편한 때가 아니었단 말입니다. 저가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고 아무것도 의지 할 수 없었던 그 인생의 그 곤고한 때에 정말 그 누구도 의지할 것 없어 하나님만 바라 볼 때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 그 광야학교에서 훈련을 받으며, 무명의 목자로 40년을 보낸 모세, 그가 겸손한 자가 되어, 온 땅에 그 누구보다 온유함 가득한 성품으로 섰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르셨어요. 그리고 본래 그가 했어야 할 일을 이제 시작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일에 민족의 영웅으로 세우시고, 그러나 겸손하고 온유하고 신실한 주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오늘의 말씀과 연관하여 지은 묵상시를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제목이 변함없는 이 한 날에도입니다. 여러분에게 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변함없는 이 한날에도

 

햇볕 따가운 미디안 광야,

왕자 아닌 양치는 자 모세,

보잘것없어 보이는 환경,

찬란한 삶의 위치는 결코 아니었지만,

 

또 다시 주어진 하루의 삶을 위해,

양떼를 이끌고 광야로 나아갔다.

좀 더 꼴 많고 물 많은 곳을 향하여...,

 

거칠 것 없이 드넓은 하늘아래,

또 그만큼 넓은 광야 한 복판에서

한 점, 무명한 한 존재로

불어오는 열풍에 날려 보낸 날들이

하루 이틀, 한해 또 한해,

그러나 그 변함없는 세월 속에서도

늘 그를 바라보셨던 주님,

그를 만나야 할 한 날을 준비하고 계셨다.

 

평범한 한 날에,

그의 일터에서 그를 부르시는 주님,

그 한날은 주님에게도 모세에게도 아주 특별한 날!

 

! 시내산이여!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신 거룩한 산이여!

 

불꽃 떨기 나무에 임하신 주님,

그리고 그분을 만난 모세,

 

세상 역사의 전환점이요, 개인 인생의 전환점으로

그는 그날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오늘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변함없는 하루에 한 날을 더 한다 하여도

너와 나, 우리가 걸어가야 갈 길이 있다.

 

비록 여기에서, 이 모습,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여도

하여,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도

오늘도 동녘에 해가 떠오르면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물통을 둘러메고, 지팡이를 들고,

빈 하늘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맞으며,

아침을 기다리는 양들을 위해

오늘도 찾아야 할 꼴과 물이 있단 말이다.

 

비록 하루에 하루를 더하는

변함없는 이 한날에도

주님은 여전히 바라보고 계시고

이 한날 가운데 나와 함께 하신다.

 

날 만날 날을 준비하고 계시며,

너에게 은혜주실 날을 세고 계시며,

 

성실한 자에게 다가오시는

성실하신 주님!

 

오늘, 이 변함없는 한 날에도.!!

 

김연정

 

詩想: 이방인들과 함께 한 22, 처음 사역을 시작 할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 삶의 모습, 그래서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한 날, 또 한 날, 때로 변화도 갖고 싶고, 때로 도망도 치고 싶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할 일이 있다는 것이 행복인 것을, 그런 건강이 있다는 것이 축복인 것을, 나아가서 그게 주님을 만나는 길인 것을, 성실하신 주님께서는 모세의 삶을 통해 이 아침에 이 종에게 격려하신다.

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떠오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설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여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자국 난 그 손길/ 눈물 닦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아들이라

 

약할 때에 나를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다시금 주신 사명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11월 한 달도 그렇게 행하시므로 승리하시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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