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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특별새벽기도회4] 나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중보기도
운영자 2019-10-24 추천 2 댓글 0 조회 804
[성경본문] 창세기18:20-33 개역개정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나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중보기도

 

여러분은 이러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원래 영어로 시작된 말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영어 공부합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무슨 뜻인지 잘 들어보세요. “When man work, man work. When man prays, God works.”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단순한 말이죠? 그러나 아주 Powerful 한 기도의 명제입니다. 한 음성으로 따라 하겠습니다.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믿습니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늘의 능력이 이 땅에 내려오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나를 의지하고 내 힘으로 일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기도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내 맘대로,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수 밖에 없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응답받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주의 주권을 높이고, 나는 겸손하게 넙죽이 엎드려, 그의 결재를 받는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어떠한 기도겠습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뿐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4: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의 주제표어 아니겠습니까? 어디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6:9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그리고 시작하신 기도는 모범기도, 주가 가르치신 기도 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처음부터 발견하는 가장 큰 영적교훈은 이 기도가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의 주어가 우리입니다.

 

한글로 번역할 때에는 주어가 보이지 않아요. 마치 감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 볼 때 우리는 를 표현할 때에도 우리를 쓰니 나와 우리가 구별이 잘 안 될 때가 많습니다. “My country”를 우리는 나의 나라라고 하지 않고 우리나라로 표현하며, "My wife"나의 아내 라고 하지 않고 우리 집사람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 남편 우리 집그래서 그럴까요? 아이들이 커도, 성년이 되어도 내집,” 니집 구분이 안돼요.

그러니 독립을 할 생각을 안 해요. 아빠 집에 살면서 공짜로 살려고 해요그러면 나중에 아빠가 나이 먹어서 니네 집에 가서 살려고 하면, 자녀들이 환영하며 받아 드려요? 안 그러잖아요?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나를 포함하여 이웃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나의 이웃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나의 죄 뿐만 아니라 나의 이웃의 죄도 용서하여 주옵시고....”

 

주께서 원하시는 기도, 그래서 응답을 최고로 빨리 주시기 원하시는 기도는 바로 라고 하는 기도의 범위를 넘어서서 우리하고 하는 공동체를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를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는 나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중보기도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중보란 한자어로는 버금 ()” 자를 쓰는데, 사람 변에 가운데 자가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자는 보호 할 때 자 해서 仲保’(중보)입니다. 문자 그대로는 사람 사이의 중간에서 그를 위하여 보호한다.” 그런 뜻입니다. 영어로는 intercession인데 라틴어의 “inter cedere”에서 왔어요. 이 뜻은 갈라진 틈 사이에 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중보기도는 쉽게 얘기해서 남을 위한 기도 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중보기도의 모범을 이루셨기에 중보기도란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 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로마서 834절에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표현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4)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중보자로 계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저 하늘나라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중보 기도자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의 파워풀한 능력은 성경 전체를 통해 뿜어져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말렉 족속과 전쟁을 치룰 때에 용감한 여호수아가 수장이 되어 전투를 합니다. 그때에 모세는 높은 곳에서 양손을 들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 합니다. 정작 전투에 임하지 않은 모세는 그 힘써 드리는 기도로 그 능력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기도를 돕는 아론과 훌은 모세의 기도를 돕습니다. 양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내려오면 전세가 밀리는 거에요. 그러니 곁에서 그 팔을 계속 들어 기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승리를 이루었지요.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큰 교회들은 대부분, 중보 기도팀이 있습니다. 주일 낮에 담임목사가 강단에서 말씀으로 선포할 때에, 기도실에서는 그 설교를 위하여 기도팀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론과 훌의 기도지요. 예배시간을 아말렉 적군과의 영적전투의 시간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승기를 잡고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통해, 죽은 영혼들이 항복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진영으로 들어와 새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뜨겁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교회는 더욱 더 성장해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선교지의 영적전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믿겨지기 어려운 기적같은 일들이 중보기도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어느 날, 한 선교사가 도시에서 병원 운영자금을 은행에서 찾아 가지고, 중국인 동역자와 함께 선교지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질 즈음에도 그들은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이 조그만 야산에서 야영을 해야 할 것 같군요선교사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산적들이 있는데요? 이 돈이 위험하지 않습니까? 빼앗기면 어떻게 하실려구요?” 중국인 조력자가 염려했습니다. 그때에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이 돈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이 돈을 지켜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립시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함께 기도를 드린 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그들은 자신의 몸과 하나님의 돈이 모두 안전한 것을 알았습니다. 수 개월이 지난 후에 어떤 산적 두목이 그 선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치료를 받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혹시 얼마 전에 이러저러한 도시로 가서 돈을 가지고 온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만.." "당신은 그 때 호위병들과 함께 어느 조그만 야산에서 야영을 했었습니까?"

 

, 우리는 어는 야산에서 야영을 한 적이 있지만, 호위병들은 데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호위병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산적 두목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돈을 약탈하려 했지만 27명이나 되는 호위병들 때문에 무서워서 결국 약탈을 못했었소!"

 

얼마 후에 그 선교사는 자신을 후원하는 영국의 한 후원교회에서 그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에 참석했던 한 기도 많이 하는 성도가 그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 날 밤 선교사들과 선교사역을 위한 기도 집회를 가졌던 것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는 자기 일기장을 들추어 보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 날 밤 기도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의 숫자는..... 모두 27명이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나라고 하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형제, 자매, 선교사들과 주의 종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나를 빼고 저들을 위한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하여, 하나님이 바라보는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너무 어려운 상태에 있어서, 하나님의 눈물이 있는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중보기도의 예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에요.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보니 아브라함은 자신을 찾아온 하나님의 천사들과 하나님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섰는데요. 두 명의 천사는 먼저가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금 축복의 언약을 재확인하셨습니다. 그것이 17,18,19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축복의 말씀을 마치신 후에 바로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을 언급하시며 멸하시겠다고 하세요. 그 말을 듣는 아브라함이 깜짝 놀랍니다. 그의 마음에 드는 생각은 이것입니다. 의인을 악인들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누구를 생각했을까요? 그의 혈육인 롯과 그의 가족을 생각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명을 무릅쓰고 네 부족의 연합군에게 잡혀갔던 롯과 가족을 구해 올 때에 함께 구해왔던 죄 없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양민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쉽게 하나님 앞에서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마옵소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 모습이 본문 22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라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라 그리고 그 다음절에 보니 섰을뿐만 아니라 가까이 나아가...”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긴 간청이 시작됩니다. 의인 오십인이 있어도 그 오십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그 중에 오인이 부족하다면 그래도 용서하지 않으시고 멸하시겠습니까? 사십인이 있으면, 또 삼십인을 찾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이십인을 찾으시면 용서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의인 열사람이 있으면 심판을 그치시고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왜 의인이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쓰시고자 하시겠습니까? 그의 마음이 넓습니다. 사람을 사랑합니다. 용서를 구하는 긍휼의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그의 간절한 중보기도의 모습은 비록 소돔과 고모라 성에 멸망이 임했어도 롯과 그의 가족을 살려내는 일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창세기 1916절을 찾아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강권적인 손길로 저들을 잡아서 이끌어 냅니다. 구원해 냅니다.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롯을 보십시오.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멀리 갈 수 없어요. 그 급박한 상황에서 저의 소원을 보십시오. 창세기 1920절 찾아가 읽겠습니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이 롯의 미련 많은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왜 은혜를 베푸십니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전히 믿음이 부족한 내 자녀들, 내 남편, 아내, 형제들, 구역원들, 회사 동료들...., 그러나 나의 눈물의 중보기도는 저들을 살리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시고 아브라함처럼 중보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1921절과 22절 말씀입니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지요. 첫째, 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 ,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첫째 사람은 소인배일 뿐이요. 둘째,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람들은 리더라고 부릅니다.

나 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고, 한 단체의 장이 되고, 한 교회의 목사가 되고, 한 구역의 구역장이 된다면, 그 나라는 든든히 서가고, 그 단체는 성공을 이루며, 그 교회는 사랑이 넘치고, 그 구역은 언제고 온정으로 훈훈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목적은 로 시작하지만, 그러나 예수를 닮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성장하고 깊어져 갈수록 우리를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저들’, ‘그들까지도 생각하여 중보 기도하는 자가 됩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중보 기도자가 되셔서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들, 기도의 용사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응답찬송: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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