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가복음1:3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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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의 새벽기도
하나님은 처음 것을 제일 귀히 여기십니다. 첫 열매가 그렇고, 첫 태생이 그러하며, 하루의 처음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새벽시간이 또한 그렇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라고 명하셨고,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또한 첫 아들을 축복의 통로로 세우셨어요. 장자권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에, “내가 너를 도우리라”(시편46:5)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첫 열매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고, 첫 태생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으니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새벽시간은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직 사람이 일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일하십니까?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합니다. “새벽을 깨우는 자들을 위해 일하시는 시간이다.”
이 사실을 잘 안 다윗은 시편 57편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로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7∼8절)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이요, 새벽을 깨우는 자는, 특별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왜냐하면 새벽은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시간이요, 새벽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홍해가 갈라졌던 시간이 바로 새벽이라고 했습니다. 새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큰바람을 일으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의 기적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새벽에 시내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새벽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야곱은 새벽에 하나님과 씨름하여 ‘야곱’이라는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인생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그의 인생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도 새벽시간이었음을 우리가 압니다. 새벽 그 첫 시간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새벽을 깨우고 향유를 준비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는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첫 사람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예수님을 ‘새벽 별’ 이라고 말씀하므로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이라야 주님을 볼 수 있음을 암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사건도 분명 새벽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새벽을 깨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류가 전기문명이 시작되고부터 사람들은 밤 12시가 되어도 잠들 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새벽을 양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말씀 마가복음 1장을 통해 바쁘신 예수님, 사역으로 인해 엄청나게 바쁘신 예수님의 하루를 봅니다. 먼저는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막1:21)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내 쫓으셨습니다.(막1:22-26) 그 후에는 베드로의 장모가 병들어 누워 있는 집을 방문하여 그를 치유해 주셨습니다.(막1:29-31) 그렇게 하는 중에 저녁을 맞이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고단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 성경은 1장 32절에 말씀합니다. “저물어 해 질 때에...” 그 때에 어떤 일이 더 남아 있었습니까? 각색 병든 자들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지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고 말씀합니다.(막1:33) 언제 이날 예수님의 사역이 끝이 났을지 기록은 없지만 밤이 맞도록 고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입니다. 35절 말씀이 새 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35절 말씀을 다같이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새벽은 사람의 시간이 아니요, 사탄의 시간도 아닙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만나야만 승리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영적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 뛰어난 영적인 인물들은 새벽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많이 들어 본 종교개혁의 기수, 마르틴 루터, 탁월한 신학자 존 칼빈, 전도의 거장, 죤 웨슬리, 또한 중국에서 “믿음선교”의 주창자인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그러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참으로 능력 있는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받기를 원한다면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어느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벽에는 마귀도 잠자는 시간이다.” 왜 그렇겠습니까?
밤에 이루어지는 향락문화는 밤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즐기자 난리를 치고 시끄럽지만, 세상 어느 곳이라도 새벽에는 죽음 같이 적막합니다. 새벽을 저들의 시간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하루의 첫 시간, 거룩한 시간,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공격하는 마귀를 공격하는 가장 효과적인 시간이 언제가 되겠습니까? 새벽 시간이죠. 그러므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새벽 두 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지는 생활을 한다.”
새벽기도회로 큰 목회를 이룬 영광교회 이상돈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교회에 신옥순이라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되는 새신자였습니다. 병원에서 위암과 간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만을 의자하고자 했습니다. 남편은 회사원이었는데 한 번 술에 취하면 어떤 사람도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살았습니다. 오랜 투병생활로 힘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사생결단의 기도를 하기 위해 경상북도 영주기도원으로 가서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남편도 아내를 위하여 회사에 병가를 내고 3개월 동안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차도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 하산했다가 바로 이 영광교회에서 열린 40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온 교회가 합심하여 그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목사님도 집중적으로 환자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39일째 되던 날, 새벽2시에 성령께서 잠을 깨우셨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라. 빨리 예배당에 가서 기도하라. 목자는 양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지금 네 양이 고통중에 있다. 어서 기도해라.”
그날따라 성령의 은혜가 강하게 임함을 느끼면서 기도회를 마치고 이 목사님은 신옥순 성도에게 안수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더러운 병마는 떠나라.” 그런데 그 성도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앗 뜨거워! 뜨거워요.” 성령의 불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새벽에 그녀의 병을 고쳐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식사도 채식을 먹으면서 체질을 바꾸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이제는 갚아야 하겠지요. 신학교에 가서 주의 종이 되십시오.” 그녀는 생명을 연장받게 되니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교회에 전도사가 되어 지금도 건강하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고, 남편은 이 교회에 장로님이 되어 사무장으로 섬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하나님께서 이번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한 주간이 너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후로 계속해서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성도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선교하는 교회, 사랑하는 교회, 축복받는 교회, 산돌중앙교회, 너무 귀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 견고한 말씀의 기초 없이는, 그리고 성도의 강한 기도 없이는, 악한 적의 진지를 훼파할 수는 없습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종에게, 선교지에서 새벽기도의 응답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더니, 이제는 고국교회로 부르셔서 역사하십니다. 지난 짧은 3년 반 사이에 기적과 같은 일들을 이루어오고 계십니다. 특별히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들, 병상에 누워 절망 중에 처한 교우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기적적으로 치유해 오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 교우 모두가 함께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살아계신 주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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