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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28] 예배는 주의 은혜를 받는 통로
운영자 2019-10-15 추천 2 댓글 0 조회 646
[성경본문] 시편26:1-12 개역개정

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3.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5.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6.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7.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9.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10.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1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2.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배는 주의 은혜를 받는 통로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는 어떤 사이일까요? 어떤 관계일까요?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자연세계도 마찬가지지요. 하나님과 자연을 어떤 관계일까요? , 하나님은 자연의 창조주가 되시니 모든 만물의 주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과 바다와 모든 동물세계의 창조주가 되십니다.

 

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성을 분명히 구별하지 못하면 복잡해집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와 불교는, 인간이 공덕을 쌓고, 도를 깨닫게 되면, 심성에 신성이 충만해져서,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영적 수준에 오른 자를 뭐라고 부릅니까? ‘生佛이다. 무슨 말입니다. 살아있는 부처다 라고해서, 결국 사람을 존경하고 사람 앞에 존경을 표합니다. 티벳 불교 사원에 가 보면 사람의 사진들이 부처상 옆에 높여 있습니다. 저들을 달라이 라마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공경하고 사람에게 복을 기원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연자체를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하여 奇巖怪石(기암괴석)이라든지, 수령이 오래된 나무라든지, 깊은 바다, 큰 산 앞에서, 그 자연을 두려워하고, 그러니 그 자연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봅니다. 이는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 피조물에 불과한 자연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잘못된 신앙행위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영적 관계를 처음부터 확실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시부터 직접 가르치셨기 때문이지요. 아담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카인에게도, 노아에게도, 아브라함에게도 모세에게도 직접 나타나서 말씀하시니 그 관계가 분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셔서 확실히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일반계시다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성경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 수 있는 것을 특별계시다 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확실하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구원이 어떻게 임하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큰 주제는 하나님만이 오직 유일한 창조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서는 그저 희미하게 알 뿐이지 확실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희미하게 알게 되면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고, 인간이 이 창조세계의 주인노릇하려 합니다. 이 모습을 인본주의다 라고 말합니다. 무지한 것입니다.

 

이 영적원리를 깨달아 알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예배자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시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개인의 생사화복도 구원도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게 되니 그 앞에 나아가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고자 하는 시편 26편은 바로 이러한 예배의 모습과 예배자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확실히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예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 예배의 방법은 제일 먼저 주의 성소를 찾아가는 것이었어요. 거룩한 곳,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방법은 제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를 용서받아야 깨끗한 심령으로 회복되어야, 하늘로부터 주시는 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짐승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하고, 피제사로 번제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니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때에, 제일 먼저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 자세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죄의 용서함을 받고 심령이 깨끗해져야 합니다.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음을 확실히 믿고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용서함 받는다 하는 것을 믿을 때에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고나서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만족하고 감사하며 찬송하게 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예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아주 중요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고 예수님께서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제 시편 26편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1절에 뭐라고 하나님께 아룁니까?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제일 먼저 고백하는 말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완전함이란 자신의 능력이 아님을 곧 바로 고백합니다. 내가 완전하게 행할 수 있는 이유는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하였기 때문 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되기 위하여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신앙의 자세는 주를 의지하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당연한 관계인 것입니다.

 

때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갑니다. 놀이 도구들을 보는 순간 아이들은 너무 신납니다. 흥분되지요. 그 놀이도구를 탈 생각을 하니 너무 즐겁고 신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의 손을 놓고 혼자 뛰어다니며 혼자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련히 알아서 때울 것 태우고, 시간되면 맛있는 점심도 사주고, 안전하게 즐겁게 기쁘게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 인생이라고, 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주의 손을 놓고, 너무 멀리 가서, 깨지고, 넘어지고, 실패하고......, 이런 모습은 복된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아니고서는, 절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혹 혼자서 마음껏 논다할지라도, 저녁이 되고 폐장의 시간이 다가오고 놀이공원에서 나오면, 어떻게 집으로 찾아가야 할지를 모릅니다. 후회해도 늦는 것입니다. 절망의 어두움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예배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예배하기 위해 나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검사하신다고 했어요.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예배자로 적합한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검사해 주세요.” 그런 말씀입니다.

 

금 세공사가 순금인지 확인하는 첫 단계는 눈으로 보고 색깔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시험하사그랬습니다. 이는 이로 깨물어 보고 긁어도 보아 도금인지 속까지 금인지 확인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금을 두껍게 입혀 놓았다. 속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의심이 되면 마지막 단계는 무엇입니까? 녹여봐야 가장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내 뜻과 양심을 단련시켜 주옵소서그랬어요. 내가 예배자로 서기에 아직 아니라면,” “단련하소서 그런 간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련이란 말은 높은 열로 녹여서 다시금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순금으로, 주님 앞에 흠없는 자의 모습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무엇을 그렇게 하시라는 것입니까? 내 뜻과 양심 이라고 했습니다. 내 속사람을 새롭게 하소서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자로 서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내려 주옵소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에 이러한 마음과 자세로 나와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요? 과연 몇 명이나 합격을 받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의 자리에 설 수 있을까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3절에 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주의 인자하심,” 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 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하나님, 내 능력은 그렇게 안됩니다. 그러니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헤세드의 인자하심은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시편 기자인 다윗은 죄인들을 참아 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죄를 지었을 때에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자신이 완벽하게 선하다는 뜻이 아닌 것이에요.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을 그렇게 이끌어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어 나오는 구절들은 진리 중에 행하고,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않고,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 않고,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고,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않고.....,” 여기에서 앉는다 라는 표현은 습관적으로 그 죄를 범한다 그런 뜻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말씀드렸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11절에 또 다시 반복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아무리 내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고 잘 한다 하여도, 결국 나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헷세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가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력을 우리가 힘입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의지할 때에, 그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씻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또 새로운 날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어디에서든지 진정한 예배자로 설 때에 복이 임합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를 의지할 때에, 나의 부족함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십자가의 용서로 우리를 새롭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주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늘도 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진정한 예배자로 서시고, 예배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복으로 감사할 일이 생기는 이 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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