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골로새서3:22-2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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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 [성경본문] 골로새서4: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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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일로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온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시간입니다. 시간이 멈춰 있지 않고 흘러가게 하신 것,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론천체물리학자인 이형목 교수는 “인간은 시간의 발견자”라고 말합니다. 고대인들이 해와 달이 뜨고 지며, 계절이 반복되는 주기적인 천문현상의 관찰을 통해, 시간을 발견했다는 것이에요. 그렇습니다. 인간은 시간의 발견자이고 이 시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고, 또한 우리가 사는 지구를 만드셔서, 서로가 부딪힘 없이, 조화롭게 운행하도록 지으셨어요.
새로운 달, 10월이 첫날입니다. 한 달이 가고 또 새로운 달을 맞이한다는 것은 지구가 서른 바퀴를 회전 한 것입니다. 서른 번 해가 뜨고 졌습니다. 10월이 되고 완연한 가을에 접어든다고 하는 것은, 지구가 23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태양을 돌기 때문에, 태양빛을 받는 부분이, 여름보다 줄어들어서, 선선한 가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우주 삼라만상의 조화를 통해, 새 달이 오고, 또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은, 바로 시간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손길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세월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모세는 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이와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2)
참으로 그렇습니다. 아무도 내일 일을 알 수 없어요. 내 생명이 내일 있다 없다 나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장담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도, 지금 이 시간에도, 나에게 생명주시고, 건강주셔서, 일터로 부르시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사회 역꾼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나를 사용하고 계심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 감사하심으로, 새 달을 열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야 할 일터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복 있는 자입니다.
일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주십니다. 그리고 필요한 건강도, 재능도, 은사도, 지혜도 함께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일을 하게 하시므로, 내게는 1) 일로 인한 성취감을 주시고, 2) 삶에 필요한 재화를 주시고, 나아가서 3) 우리 이웃에게 유익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은 힘들게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즐겁게 일을 합니다. 어느 사람은 월요일 아침이 출근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은 통이 트기 전에 소망을 가지고 일터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겠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일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은 일하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바로 일을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을 주셨어요. 그러니 인간은 원래가 일을 하게끔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는 일 없이 그냥 놀고, 먹은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도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 이후로 변했습니다. 기쁨으로 에덴동산을 돌보는 일이 아니라, 억지로 힘겹게 일을 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땅도 저주를 받아 엉겅퀴를 내고, 일하는 사람이 땀을 흘려야만 땅의 소산을 먹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일이 기쁨이 아니라 노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구원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심으로, 저를 믿은 자마다 영생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의 심령에 성령으로 내주하시므로 재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믿는 자의 마음에 일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일을 하게 하시는 목적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일은 자아실현을 이룹니다.
믿는 자의 마음에는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그 형상 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gift, 즉 은사를 주셨습니다. 또는 Talent 재능이라고 말합니다. 그 은사를 십분 발휘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것에 행복과 기쁨을 갖게 하십니다.
그러니 그 행복을 갖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의 마음에 소원을 주십니다. 이를 Vision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말씀대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미술가는 작품을 만들다 보면 빠져 들어가요. 작곡가는 멜로디를 만들고 악보를 그리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래서 feel이 꽂히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작품에 몰두합니다. 작품을 만들어갈 때에도 흥미진진하지만, 또한 다 만들고 나면 그의 마음에는 희열이 있어요. 우리가 일에서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업은 기업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그 심령에 주시는 비젼을, 일을 통해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이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얻게 하십니다. 수고의 댓가입니다. 그러므로 재정적인 필요를 채우시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하십니다. 성경 말씀에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하시는데, 반대로, 일을 하면 먹을 것을 많이 주십니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일을 통해 재화의 복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일을 이루어감으로 자신이 기쁠 뿐만 아니라 이웃을 또한 기쁘게 합니다. 예술가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과학자는 발명품을 통해, 의사는 병든 자들을 고침으로써 이웃에게 유익을 줍니다. 건축가는 필요에 따른 건물과 살 집을 건축하므로, 사업가는 제품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생산된 물건으로 이웃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면서, 이웃이 기쁨을 갖게 만듭니다. 내가 하는 일로 이웃들이 도움을 받고 행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 또는 직업이라는 말을, Calling, 즉 ‘부르다,’ 하나님이 불러 시키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23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 다음절에 다시, 한번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무엇으로? 일을 통해 주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 K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 일을 한다” 라고 하는 신전의식을 갖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일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또 한가지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일의 행동강령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성실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22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성실한 마음 (with sincerity of heart)”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23절에 말씀합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faithfulness)이 크시도소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성실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실성에 있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처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빛의 모습으로 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머리가 좋을 수 있습니다. 최고의 학부를 나와 권세있는 자의 자리에서 법망을 피해 갈 정도로 머리가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머리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을 지언정, 신실함과 성실함에 있어서는 언제고 세상을 감동시킵니다. 성실함, 신실함은 짧은 시간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결국 드러나게 됩니다.
성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소망중에,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를 ‘상을 주신다’고 표현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너희는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영국 런던의 캔터베리 대성당에 ‘니콜라이’라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성당을 관리하는 성당집사가 되어 평생을 성당 청소와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는 성당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맡은 일에 지극정성을 다했으며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가 하는 일 중에는 시간에 맞춰 성당 종탑의 종을 치는 일이 있었어요. 그는 성당 종을 얼마나 정확하게 쳤든지 런던 시민들은 도리어 자기 시계를 니콜라이 집사의 종소리에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성당에 열심히 일하면서 키운 두 아들은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부자가 아니어도 성실한 부모 아래에서 큰 자녀들은 보고 자라게 되니,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그 두 아들이 아버지 니콜라이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제 일 그만 하세요.” 그러나 아버지인 니콜라이는 “아니야, 나는 끝까지 이 일을 해야 해.” 그는 76살까지 종을 치며 성당을 사랑하고 관리하였으며, 그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지켜보려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종을 칠 시간이 되자 일어나 옷을 챙겨 입더니,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 종을 쳤습니다. 얼마간 종을 치다 니콜라이는 종 밑에서 지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감동을 받고 영국 왕실의 묘지를 그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귀족으로 대우해 주었으며, 모든 상가와 시민들은 그날 하루 일을 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유흥주점도 문을 열지 않자 자연히 그가 세상 떠난 날이 런던의 공휴일로 되었습니다. 대단하죠? 열일곱 살 때부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성당의 종을 쳤던 그가 죽은 날이 런던의 공휴일이 된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에 수많은 성직자들이 죽었으나 왕실의 묘지에 묻히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지 하찮게 보이는 성당의 종을 성실하게 친 니콜라이는 그의 자녀들이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자신은 왕실의 묘지에 묻히는 영광과 자기가 죽은 날이 공휴일이 되는 명예도 함께 얻었다는 위대함의 존재로 존경을 사후(死後)에 누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성실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성실하지 못하면 게으르면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지 않습니다.
저는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10월을 맞이하면서 이 한 달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을 가지고 성실함으로 매진하는 새 달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상 받는 달’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상을 기업으로 받는 복된 일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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