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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25]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2)
운영자 2019-09-26 추천 1 댓글 0 조회 691
[성경본문] 시편23:5-6 개역개정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편은 비유가 가득한 시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하고 그를 따르는 백성을 양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선한 백성을 착취하고 압제하는 악한 원수들을 양들을 물어가는 야수로 표현했습니다.

 

시편 23편의 저자인 다윗은 어릴 적부터 목동으로 살았으니 어떻게 양들을 돌보고 야수로부터 지키는지 경험을 통해 잘 압니다. 때로는 물맷돌로 멀리서 접근하는 야수들을 쫓았으며, 때로는 막대기로 던지며 야수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사자의 이빨, 곰의 발톱에서 양들을 건져내기 위해 생명을 무릅쓰고 아비의 양들을 지켰습니다. 보통 책임감이 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그러한 모습에서 자신을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의 모습으로 떠 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시편 23편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일 다윗이 신실한 목자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을까? 그처럼 자신이 지친 양들을 위해 푸른 초장과 물가를 찾아 인도하지 않았던 게으른 목자의 모습이었다면, 하나님을 굳이 선한 목자로 표현하고자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최선을 다하는 목자의 모습으로 양들을 지켜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돌보는 양들의 평안한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 모습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실하게 지키고 돌보는 존경받는 리더, 왕의 모습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때에 그의 마음에는 이제는 왕으로써 백성을 지키고 돌보는 자의 마음이 무엇인지 더 깊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그 책임감 강한 모습 속에서, 삶의 장애물이 부딪혀 올 때에, 자신을 도우시고 지키시고 건지내시는 하나님, 더 책임이 크고, 강하신 목자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실제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한 아기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아기가 갑자기 열이 나고 경기가 나고, 또는 입맛이 없어 먹지 않을 때에, 어떠한 질병으로 병상에 힘없이 누워 있을 때에, 부모로써 느끼는 아픔이 있어요. 어떻게 해서라도 자녀를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간구하는 모습이 있지요. 그 모습 속에서,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마태복음 7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헤아려 줄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헤아려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억지로라도 원수를 사랑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더 많이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한 가정의 어머니로써 또한 가장으로써 교회에서의 직분의 사명과 일터에서 일꾼의 사명이 있습니다. 신실하게 감당하고자 할 때에, 다윗과 같이 생명을 무릅쓰고 양들을 돌보고 지키고자 할 때에,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친히 선하시고 능력이 강하신 목자가 되셔서, 생명을 지키시고, 더 많은 형통함의 길로, 더 큰 복된 자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양들은 종종 광야에서 밤을 맞이합니다. 집이 멀으니 돌아갈 수가 없어요. 보통 굴 안에서 머물게 되고, 굴 입구에서는 목자가 불을 지피고 양들이 안전하도록 그 입구를 야수로부터 지킵니다. 또는 굴이 없으면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곳에서 지키고 밤을 지내게 됩니다. 울타리 안에는 평상처럼 평평하게 된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위에서 양들이 잠을 잡니다. 팔레스틴의 사막기후는 낮에는 태양이 뜨겁고 밤에는 급강하하는 기온으로 춥습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 볕에 달구어진 바위는 따뜻합니다. 그 기온이 밤에도 유지됩니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깊은 잠을 잡니다. 이 장소를 메사라고 하는데, 양들은 울타리 안에서 목자의 보호를 받으니 편안히 잠을 잡니다. 야수들로부터 피난처인 것입니다.

 

울타리 밖에서는 야수가 틈을 노리고 접근하지만 목자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주춤 주춤 하며 감히 다가오지를 못합니다. 이 상태를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셨다 야수가 곁에 있으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지척에 있으나 울타리 안에 있고 또 목자가 곁에서 지켜주니 나는 염려 없이 깊은 잠에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말씀합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양들에게 치명적인 적은 야수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리 떼가 있습니다. 쇠파리, 말파리, 코파리, 진드기, 모기, 해충파리, 각다귀....,

 

목동출신의 목사님이었던 필립 켈러는 여름철, 양들을 공격하는 가장 큰 원수들이 바로 이 파리 떼라고 합니다. 특히 양들은 코파리에게 약하다고 합니다. 이 작은 파리들은 양의 코에 덮힌 촉촉하고 끈끈한 점막에 알을 낳으려고 기회를 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의 주위를 윙윙거리며 귀찮게 합니다. 만일 코 파리가 알 낳기에 성공하면 며칠 안에 부화되어 작고 가느다란 벌레와도 같은 유충이 되어 콧구멍을 통해 양의 뇌 속까지 파고 들어가 각종 염증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양은 이런 고통을 받으면 머리를 나무나 바위에 부딪치며 데굴, 데굴 구른다고 합니다. 이때 팔레스틴의 목자들은 여러 가지 향료를 섞은 올리브 기름을 양의 코나 귀, 목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에 계속 발라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심할 경우 아예 목자들은 양들을 약물 기름통에 양들의 머리를 잠시 잠기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 사용되는 올리브기름은 이미 받은 양들의 상처를 치유하며 더 이상의 파리 떼의 공격에서 양떼를 보호한다고 합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양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치료합니다. 그러므로 다시금 건강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치료할 때에도 기름을 발랐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교회 지도자들이 병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5:14)고 말씀했습니다.

 

기름은 이처럼 귀했습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유용한 것입니다. 그러니 문화적으로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름을 축복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잔치 집에서 가장 귀한 손님의 머리에 올리브유 기름을 붓습니다. 영화와 축복의 상징입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 세울 때에도, 선지자를 세울 때에도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에 우리에게는 어떠한 기름이 필요할까요?

이처럼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며, 병든 마음을 새롭게 고치는 일에, 또한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높은 자리에 서서 주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어떠한 기름이 필요하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 Anointing! 우리가 이 새벽에도 사모합니다. 주여, 내 심령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소서!” 성령의 기름이 부어 질 때에, 세파에 시달리고, 인간관계의 문제로 인해 멍들고 상처 난 가슴이 위로를 받고 치유함을 받습니다. 그 아픔과 눈물을 씻어주시고, 재 대신 화관을 씌우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61장에서 말씀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면,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며,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할 것이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름부음을 받겠습니까?

간절히 사모할 때에 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들을 때에도 임했습니다. 사도가 안수할 때에도 임했습니다. 이 새벽에 사모하며 기도하실 때에, 여러분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시는 역사가 충만히, 충만히 나타나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절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은 다윗의 인생의 말년에 쓴 시이며, 찬송입니다. 지나온 삶을 되 돌이켜보니 삶의 고비마다 하나님의 손길로 보호하여 주시고 건져주셨음을 다윗이 보게 됩니다. 그러니 저가 확신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말씀에서 여호와의 집이란 내 영혼이 쉴 곳입니다. 피난처요, 안식처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여호와의 집이란 주의 품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의 품안에 거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품안에 거하겠습니까? Coram Deo, 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신전의식 이라는 뜻이 있는데, 내가 주님 앞에 있다 그런 뜻입니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뜻입니다.

 

새벽에 일어나면서도, 새벽기도 길을 걸어오면서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일을 하면서도,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하나님이 곁에 계시다. 그 임재하심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주의 품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혼의 안식과 평강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 평강으로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도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찬송가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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