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사기14:10-2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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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11.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15. 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빼앗고자 하여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니
16.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도다 하는지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알게 하리요 하였으나
17. 칠 일 동안 그들이 잔치할 때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18.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자의 눈물에 무너지는 삼손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다시금 딤나로 내려갔습니다. 그때에 30명의 블레셋 남자들이 그 잔치에 축하객으로 참여했습니다. 당시에 결혼식은 그 날수가 칠일이나 되었고 풍습 중 하나는 신랑이 수수께끼를 내고 풀면 상을 주고 만약에 풀지 못하면 반대로 친구들이나 하객이 신랑과 신부에게 선물을 주어야 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풍습대로 삼손이 저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게 되었습니다. 수수께끼는 아무도 풀지 못할 것이었어요.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그들이 삼일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이에 대한 답은 말라 죽은 사자의 몸에 있는 꿀 이었습니다. 이 답을 누가 알겠습니까? 삼손이외에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상품은 베옷과 겉옷 삼십 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굳이 겉옷과 베옷을 상품으로 건 것은 이유가 있었어요. 자신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 사람은 아예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삼손은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저들 삼십 명의 옷을 그 잔치집에서 벗겨 보낼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면 저들이 스스로 옷을 벗어 삼손에게 주겠습니까? 수치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겠지요. 그러면 저들이 이에 대하여 순응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이를 근거로 삼손은 저들을 때려죽일 심산이었던 것입니다. 이 방법이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하고 핍박하는 블레셋 인들을 향한 응징의 묘수였던 것입니다.
결혼식이 칠일 간이었고 삼일이 지나고 이제 마지막 날 일곱째 날이 되었습니다.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게 되자 저들이 초조해졌습니다. 정말 자신들의 옷을 벗어주어야 할 상황이 될 것이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사인 삼손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저들이 삼손의 아내가 된 블레셋 여인에게 접근을 했습니다. “삼손에게 물어서 어찌하든지 알아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못하면 집을 불 사르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제 칠일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리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취하고자 하여 우리를 청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무슨 말씀입니까? 저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겁을 주면서 “삼손을 통해 네가 우리의 소유를 취하고자 꾸민 일 아니냐?”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심각하게 위협을 하였습니다. 이 모습은 결국 삼손의 계획대로 되어가는 모습이었어요. 저 삼십명의 무리가 그 일로 난동을 피우면 잔치집에서 난동을 피운 이유로 삼손은 저들을 때려죽일 근거를 갖고자 했던 것입니다. 일은 삼손의 계획대로 되어져 가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결국 변수가 생겼습니다. 겁에 떠는 삼손의 아내가 삼손에게 그 수수께끼의 답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답을 알아내지 못하면 그 삼십명이 정말 자신의 아버지의 집을 불살라버릴 판이었습니다. 울며 애걸을 합니다. 삼손을 답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가로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풀어 이르지 아니하도다 삼손이 그에게 대답하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풀어 고하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풀어 이르리요 하였으나”
참~! 이럴 때에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울며 가로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 도다” 수수께끼 답을 말하지 않으니 이렇게 땡깡을 씁니다. 여러분이 삼손이라면 답을 말하겠습니까? 부모에게도 여러 가지를 비밀로 하며 말하지 않는 삼손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자의 눈물 때문에.....!!
남자의 무기가 주먹이라면 여자의 무기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지혜 중에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바로 ‘눈물’입니다. 이건 제 말이에요. 그래도 근거가 있습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Voltaire)가 말한 격언이 있습니다. “남자가 무슨 언변을 발휘하든 여자의 눈물 한 방울을 이길 수 없다” 이 말의 의도는 “여자의 눈물을 보고도 약해지지 않는 남자는 자격이 없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여자의 눈물을 보고서도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않는 모습은 신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자의 눈물을 미화시키는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최근 연구에서 실제로 여자의 눈물이 남성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주 과학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인간의 눈물도 화학신호 전달한다(Human Tears Contain a Chemosignal)’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그 주 내용은 “슬픔이나 애통함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여자들이 흘리는 눈물 속의 화학적인 성분이 남성의 호르몬 수치를 조절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의 신경생물학자인 노엄 소벨(Noam Sobel) 교수 연구팀이 이스라엘의 이디스 울프슨(Edith Wolfson) 의료센터 소속 의사들과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여자의 눈물이 남자의 마음을 돌려 놓는다.” 그 말입니다.
시험을 통해 증명된 것은 “감정으로 흘린 눈물의 냄새 맡으면 충동이 누그러진다”는 것이었어요. 이 실험에 여러 명의 남자들이 등장했고 슬픈 영화를 보며 흘린 여자의 눈물을 남자들의 코 아래에 거즈로 붙이고 냄새를 맡게 하고 감정 조절 호르몬이 변화를 추적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정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도 낮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MRI 뇌 촬영결과로도 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공격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활성화 정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어요. 이는 감정 섞인 여자의 눈물이 남성의 충동과 공격성을 억제시킨 것입니다. 자, 공부는 그만하구요.
아내의 눈물에 삼손이 마음이 약해집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보면 이 블레셋 여인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은 아닌 것이지요. 가짜 눈물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어찌하든지 저들의 해코지를 막고자 삼손에게 그 수수께끼의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17절에 보니 마음 약해진 삼손이 아내에게 답을 알려주었고 아내는 그것을 자기 백성에게 알려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삼손의 수수께끼의 답을 저들은 말합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제 칠일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그 답을 말하게 되니 삼손이 그때서야 아차 합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면..... 풀지 못하였으리라” “내 아내를 꼬이지 않았다면” 그런 말이죠.
결국 삼손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고 약속은 약속이니 이제 거꾸로 자신이 저들 삼십명에게 겉옷과 베옷을 주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구합니까? 야스글론이라는 마을에 가서 블레셋 사람 삼십명을 죽이고 노략하여 그 삼십명에게 옷을 줍니다. 그리고 분을 품고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말씀을 통해 깨닫는 교훈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육신과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이 나실 인인 삼손을 추하게 만들었습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절제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1차적 욕구를 말합니다. “육신이 편하고자 하여, 육신적 쾌락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적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정욕’의 반대편에는 ‘영적 목마름’이 있습니다. 삼손은 여전히 이 영적 부분이 많이 부족합니다.
또한 안목의 정욕이 자신의 계획대로 가는 것에 거꾸로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속성”을 말합니다. 블레셋 사람 중에 이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해도 이미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그 비참한 결과가 오늘의 마지막 절에 있습니다. 2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 되었던 그 동무에게 준바 되었더라” 그 사건이후로 삼손의 이 아내는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되고 맙니다.
삼손의 이름은 ‘작은 태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블레셋 여인은 ‘어두움의 여인’이었습니다. 태양이 빛을 발해야 하는데 어둠의 여인에게 육신적으로 또한 감정적으로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네팔에서 사역할 때에 한 형제의 비극을 기억합니다. 리빙스톤 학교가 처음 시작할 때에 한 행적직원으로 엘비 라고 하는 청년이 고용되었습니다. 초기 멤버니 많이 가깝게 지냈습니다. 나름 열심히 신실하게 일했습니다. 신학교에 그때는 야간이니 또 신학강좌를 들었습니다. 교회 활동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2003년 미국에 신학석사과정으로 공부하러 간 사이 이 형제가 학교를 떠났습니다. 당시 네팔 사람들이 한국에 일을 하러 가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인력공단에서 네팔에 가서 한국어 시험도 치루고 네팔 노무자들을 선발해 오지만 당시에는 네팔인이 운영하는 사설인력회사로 노무자를 선발해서 한국으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 동업자로 들어간 거에요. 한 사람당 근 천만원에 달하는 돈을 커미션을 받고 한국으로 노무자를 보낸다고 사람들을 모집했는데, 돈을 잘 벌었습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삶이 어지러웠습니다. 야간업소에서 일하는 외모가 예쁜 여자와 사귀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믿지 않는 여자였습니다. 이 형제의 삶도 어둠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을 함께 하는 자신의 동료가 수십 명의 돈을 받고는 그 신청자들을 한국으로 보내지도 않고 돈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남아 있었떤 이 엘비 형제가 경찰에 잡혀 들어갔고, 제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 그 형제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 감옥에 찾아갔습니다. 그 형제가 부탁하기를 올 때에 제 설교원고를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말씀에 은혜 받았던 때가 그리웠던 것입니다. 후회막급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모아 두었던 모든 설교원고를 들고 아내와 함께 그 형제를 찾아갔습니다. 그 형제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습니다.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자업자득이었습니다. 그 형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었습니다. 이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중요합니다.
한순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 눈이 어두워 마땅히 가야 할 인생길이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시므로 분별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언제고 맑은 영으로 민감하게 깨어있어 세미한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하심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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