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사기10:10-1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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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2.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쉽게 가나안 땅의 음란한 종교문화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대신 그 땅의 사람들과 같이 바알과 아스다롯 신을 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 족속의 또 다른 종교와 종교예식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블레셋의 신들의 신전에 그 신들을 숭배하러 올라갔습니다.
그 신전예식과 연관된 비윤리적인 음행의 모습은 독버섯처럼 온 사회를 병들게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은 어둠의 영적세력,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역사는 이처럼 매력적인, 그러나 멸망으로 가는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서서히 빠져 드는 늪과도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적으로 그 속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하나님을 완전히 잊게 만들었습니다.
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발생하는 죄악의 문화가 오늘날 이 시대에도 얼마나 교묘하게 침투해 있는가를 어제도 말씀드렸습니다. 법적으로 간통죄가 사라졌습니다. 법이 가정을 지키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제는 법정에서 “증거부족이다” 하여 판사들이 결국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고 무죄 판결을 하게 되니 많은 시민들이 격앙하고 있습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있습니다.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7절 말씀에 보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라고 간단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원어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분노가 불 탔다” 라고 표현합니다.
그 결과로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파시매”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소유권이 넘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놓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이 아닌, 손 밖에 놓으신 것입니다. 그 결과는 블레셋족속과 암몬족속의 침략으로 이어졌고, 이어 열 여덟해 동안 곤고와 환란의 날들이 연속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이제야 정신 차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돌이켜보게 되고 그 상황에서 해결해 보려고 고군분투했으나 어림도 없습니다. 누가 저들을 도와줍니까? 아무도 없어요. 고통과 환란속에서 저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저들이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을 파악하고 인정합니다.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으로 나누었습니다. 이 시대의 우상이란 가장 높은 자리에 모셔야 할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흠모하고, 아끼고, 추구하고, 바라는 바를 올려놓는 것이다. 그것이 물질일 수도 있고, 권세, 성공, 건강, 장수, 자녀, 미식, 운동, 미모, 사랑, 심지어는 사업일 수도 있습니다. 왜 그게 나쁜가?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그것들로 가득 채워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못하는 것이 잘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가장 중심에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주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안에 거하므로” 삶의 모든 영역에 교통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성품도 변해가지만 마음에는 진정한 평강과 일에는 형통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멘!
변덕스럽고 같은 죄를 반복하는 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청 앞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응수하십니까?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물질에 매여 물질이 우상같은 자에게는 “그래 물질로 해결 해봐라” 하시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건강이 보장됩니까? 아닙니다.
권력에 매여 있는 자에게는 “그래 권력으로 해결 해봐라” 어제 권좌에 있던 자들이 지금 어디에 가 있습니까? 감옥에 줄줄이 가 있어요. 권력무상입니다. 지금의 위정자들은 권세를 얼마동안 보장받겠습니까? 사람이 권세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같은 수준의 사람들을 보면 겸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더 잘 난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자가 없습니다.
경험에 매여 있는 자에게는 “그래 네 경험과 능력으로 해결 해봐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박사학위 논문을 써 보았지만 한 특정 분야의 연구문헌이 도서실에 가득 차있습니다. 같은 분야의 논제를 가지고 이런 저런 각자의 의견들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회도 변해가고, 생각도 변해가고, 어제의 진리가 오늘에 진리가 아닙니다. 내 경험이 다 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내 경험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습니다만 그러나 환란 앞에서 그 경험이 무용지물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불변한 것이 있으니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말씀은 4천년의 역사 속에 한 획도 변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진리로 말씀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구원의 말씀으로 변함없이 역사하고 있으니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 앞에 나아가 긍휼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환란과 고난이 찾아 올 때에 하나님 앞에 넙죽이 엎드려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차가운 모습으로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움직이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회개였습니다. 지속적인 회개와 간청이었어요. 1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니.....”
“하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님 앞에 아뢰면 긍휼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지 않으실 수가 없으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죄인대신, 바로 우리대신, 십자가에 못박히게 허락하시지 않았겠습니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용서를 안하시면 그 십자가의 은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인도에서 있었던 실제 얘기입니다.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교회문 밖에서만 맴돌던 이 청년이 눈병에 걸렸습니다. 심히 고통을 당하다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눈을 정밀히 진찰한 의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눈에 살인적인 병독이 들어가 감염되었으므로 두 눈을 뽑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즉시 두 눈을 뽑아야만 한다.” 아마도 패혈증이 염려되었던 모양이지요.
참으로 절망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아픔과 번민과 슬픔으로 몸부림치고 있는데 크리스챤 친구가 찾아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보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슨 말인들 못 듣겠습니까? 그는 친구와 함께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데 참으로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예수 믿으라고 할 때는 끄덕도 하지 않던 자신이 죽게 되자 살려달라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는 완악했던 마음부터 회개하기 시작하니 기도의 홍수문이 열려 지난간 날 속에 잘못한 모든 것을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눈이 퉁퉁 부을 정도였습니다.
다음날 마음이 홀가분하여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다시 진찰을 하던 의사는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심하게 번졌던 독균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의 뜨거운 회개의 눈물은 영과 육, 생명을 모두 고침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이 저의 마음도 고치시고 눈도 고쳐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 처음에는 회개 같지 않은 회개를 했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그러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택한 신들에게 빌어라 왜 나를 찾느냐?” 그러니 저들이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주님 밖에 저들을 환란에서 건질 자가 없다는 것을 안 것이지요.
그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이 주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행동의 변화였습니다. 실제적인 태도의 변화, 행동의 변화, 삶의 변화를 보신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니라”
왜 근심하십니까? 안 구해주려고 했는데 저들의 회개가 진심인 것을 저들의 변화되어져 가는 모습 우상신을 제하고 여호와 앞에 나아와 섬기게 되니 “에고~! 내가 다시 구원해 줘야 하나보다.” 하고 마음에 감동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로만 회개하면 안돼요. 진정한 회개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떠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행동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며 우상신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게 되니 진정한 회개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그래야 하겠습니다. 잘못한 것 있으면 다시금 주님 앞에 나아와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리고 회개한 그 결과로 변화된 행함이 시작되어 그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입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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