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사기7:15-2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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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기드온과 이스라엘의 승리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습니다.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 적군은 10만명 용사요, 기드온의 군사는 오직 300명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숫자를 줄여 놓은 것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마치 자신들이 잘 싸워 이겼다고 하는 착각을 가질 수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3만2천명에서 만명으로 줄였고 또 만명에서 300명으로 줄였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라.”
저는 이 상황을 묵상하면서 얼마나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罪性(죄성)입니다. 아담이 타락 이후에 죄성을 갖고 태어나는 인생은 바벨탑을 쌓아올려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들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이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하나님을 쫓아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만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그는 창조주시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며 구원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요, 또한 용서함 받은 죄인으로써, 자녀로써, 그분의 돌보심 속에 주어진 이 땅에서의 짧은 인생을 청지기로,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건강이 넘칠 때에, 물질적으로 풍요할 때에, 가정에 우환이 없고 화평이 넘칠 때에, 자녀들이 잘 될 때에, 사업적으로 잘 나갈 때에, 남들이 나를 알아 줄고 세상이 나를 높일 때에....,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한 시라도 갖지 말아야 할 위험한 생각은 “내가 잘 해서, 내가 능력이 많아서, 내가 건강관리를 잘 해서, 내가 성품이 좋고 대인관계가 원만해서......” 아닙니다. 착각하면 안 되기에 하나님께서 그 기드온의 용사들의 숫자를 줄이고 또 줄여서 “그래 이래도 네 힘으로 했다고 할래?” 그렇게 하면 또 다시 자고하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할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렇게.....“내가 약할 때에 주는 강하시다.” 것을 이 전쟁을 통해 산 체험으로 깨닫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전쟁에 임하는 기드온의 군대는 무기가 별 것 없습니다. 빈항아리, 횃불 그리고 나팔 뿐이었습니다. 이게 상대방을 그렇게 위협할 만한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비슷합니다. 어린 다윗이 들고 나온 물맷돌 하나 그것이 골리앗 장군을 비웃게 만들었습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느냐?” 무장도 하고 나오지 않은 다윗을 그렇게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물맷돌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한방에 골리앗 장군이 쓰러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은 첫째, 내가 겸손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둘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 하는 굳센 믿음을 가지며, 셋째, 평소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가 주신 은사를 개발하고 주의 법도와 율례를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모습으로 무장하셔서 승리로운 복된 삶을 영위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쟁이 어떻게 이루어져 승리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읽은 대로 단 네 절로 짧게 표현하고 있어요. 19절, 20절, 21절, 22절입니다. 19절에는 밤 이경에 파수꾼들이 교대할 때에 저들이 일제히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경이란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를 말합니다. 잠이 가장 깊이 든 한 밤중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20절에는 횃불을 들고 외치는 일이었습니다. 그 빈항아리에 숨겨둔 횃불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21절은 저들의 진영을 에워쌓았다고 했습니다. 300명이 10만명 진영을 어떻게 에워쌉니까? 적진을 향해 전진해 들어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온 진영의 군사들이 깜짝 놀라서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
22절에 보니 적군이 서로 자기들끼리 칼로 치며....깜깜하니 그랬을까요? 정신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서로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고 죽이며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 상황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을 그렇게 하셨다고 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어요.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여호와께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셨다” 고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겨지지 않는 얘기 아닙니까? 삼백 명 앞에서 그 많은 군사들이 혼비백산하여 서로 죽이고 패잔병이 되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정말 믿기가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우리의 이성과 생각의 한계를 초월합니다. 주께서 원하시면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자연을 통한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손도 못 대는 것이에요. 화산폭발, 지진, 폭우, 폭염, 한파가 그런 것이죠.
1991년 6월에 있었던 피나투보 화산의 폭발은 20세기 가장 큰 화산폭발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화산폭발은 그 산속에 거주하며 살고 있었던 미전도 종족인 9만 여명의 아이타 부족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만의 방법이었습니다. 저들은 산속에 감추어진 종족으로 정부에서 그 숫자를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산지족이었습니다. 복음과는 상관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동구선교사님은 저들을 복음화하기 위해서 40년간의 계획을 세웠쟎아요? 저와 아내에게 사역을 이양 하고 떠나면서 말했습니다. 산속의 흩어져 있는 수많은 마을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40년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화산폭발로 예수제자의 집도 무너지고 세우려 하던 교회도 화산재 아래 묻혔습니다.
그런데 이 화산폭발이 인간에게는 자연 재앙이었으나 영적인 면에서 그 숨어살던 9만여명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고 정부에서 이 이재민들을 위해 재 정착촌을 제공하면서 저들이 운집해서 살고 있는 재 정착촌마다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게 되니 제가 사역했던 7년 만에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미전도종족에서 그 이름이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자체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종족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손 하나만 까딱하여도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의 이성과 상상과 계획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또 한편으로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창조설을 부인하는 19세기 다윈의 진화론 이후 이 땅에서는 신의 영역에서 자유함을 입는다고 소위 과학지상주의가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이 과학만능주의는 과학 이외의 모든 사고방식이나 의식구조를 무시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이런 사고는 인간만이 지닌 사유 능력 즉, 이성에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은 영적세계에 대해서는 관심 밖입니다. 하나님도 부인합니다. 과학으로 증명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이지요.
바야흐로 인간의 이성이, 과학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낙관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배제하고 인간이 바벨탑 위에 섰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으로 이 땅에 파라다이스를 세울 것이라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납니다. 900만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그로부터 25년 후, 1939년에 또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5천 5백만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인류 역사이래 가장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불러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과학의 문명의 기형아인 원자폭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물질문명이 다 인줄 알았습니다. 과학 지상주의적 사고는 물론 물질문명 발달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인간의 죄성을 간과한 것입니다. 먹을 것이 많으면 도둑이 없습니까? 그래서 먹을 것을 공평히 분배해 주는 공산당 이론이 평화를 보장합니까? 그렇치 않아요. 물질이 풍요해서 더 행복합니까? 그렇지 않아요. 불만율과 우울증과 자살율은 더욱 더 늘어갑니다. 과학만능주의로 물질만능주의로 이 근본적인 인간의 죄성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과학이 발달해도 한 인간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심령도 선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마음에 찔림을 받고 돌아서라. 오늘 하나님께서 이 커다란 전쟁을 전쟁 같지 않게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순종하고 믿고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이 새벽에도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혜 받을만한 그릇, 즉 심령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가 주님 앞에 제대로 서기를 원합니다.
제대로 믿음생활 잘해서, 먼저 심령이 잘 되고, 성품이 변하고, 그래서 가정과 일터와 생업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복된 인생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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