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하박국2: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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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8월의 첫날입니다. 좌우에 계신 분들을 서로 축복하십시다. 축복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형통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아멘!
바로 성경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여기에 한 선지자의 고뇌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하박국입니다. 하박국의 이름의 뜻은 부등켜안다. 또는 씨름하다 라는 뜻이 있어요. 이 선지자의 고뇌는 이름 그대로 자신의 민족 전체를 위한 고뇌를 안고 하나님과 씨름을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영적으로 패역한 세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에 대한 분노였어요. 악인들이 의인을 둘러싸고 핍박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백성들이 더 큰소리치고 잘 되가는 세상을 그가 바라 볼 적에, 그는 하나님의 대언자로 일할 맛이 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는 간구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이렇게 가도록 내버려두시면 않되쟎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응답이 없어요. 정의가 무너지고 불법이 횡행하는 그러한 부조리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가 안고 씨름하는 그의 고뇌는 결국 하나님을 향해 불만과 울분으로 터져 나옵니다.
1장 2절, 3절,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니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13절,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이것이 민족을 위해 부름 받은 선지자 하박국의 고뇌였습니다. 너무 답답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때때로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에 우리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 되가는 것을 볼 때에 그렇습니다. 권모술수와 비양심적으로 야비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저들은 잘되어 가는데, “도대체 난 뭔가? 하나님! 주님을 향한 나의 수고와 기도는 무엇입니까? 내가 이처럼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고 봉사하는 보람이 무엇입니까? 왜 세상은 이리 부조리로 가득 찼습니까?”
예수를 잘 믿고 사는 사람들도, 선교사는 선교사대로, 사업인은 사업인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자녀를 둔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그 모두가 안고 씨름하는 고뇌가 있어요.
Beyond my control!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나의 이웃도, 친척도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지가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마음속에 가득한 Complain들을 다 토하고 난 뒤, 상심한 마음, 울적한 마음을 가지고 홀로 찾아 간 곳이 있었어요.
2장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파수하는 곳, 곧 성루를 말합니다. 성벽의 위쪽, 누각이 세워져 있는 곳, 밖에서 적이 오는가, 살피는 곳, 늘 분주하고 사람들이 부딪히는 성내를 벗어나, 성밖의 넓은 들판이 보이는 그러한 한적한 성루 위로 그는 홀로 올라갔어요.
왜 그리로 갔을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는 상심한 마음을 갖고 그래도 해답은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들으려고 그곳에 갔습니다.
그러면 이 성루가 우리에게 영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마이어라고 하는 위대한 성경 주석가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루는 바로 우리의 성소이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에 대해 혼란에 빠지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현명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유혹에 빠지게 될 때, 우리는 그 유혹을 잠잠케 하고, 어려움들을 해결하게 해주는 곳으로 찾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러한 일들을 통해 나타내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는 바로 '성루'에 서야 한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성소이다. ”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성루는 어디입니까? 하박국이 그 어려운 처지에 상한 심령을 안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자 찾아갔던 성루가 어디입니까?
바라옵기는 바로 이 주의 몸 된 교회의 제단이 여러분의 성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 입니다. 주님께서 응답하시는 곳이예요.
새벽에 주님 전에 나와 기도하십시오. 작금에 나에게 불어닥친 이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를 향하신 그분의 뜻을 알기위해, 또한 이 민족에게 불어닥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환난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위해, 주의 몸 된 성전, 성소에 나와 기도하십시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상심한 마음으로 성루에 선 하박국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음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2절에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게 하라.”
하나님은 상심한 하박국에게 미래의 커튼을 열어 보이시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위대하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많은 것들을 보여주세요.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자는 잘 될 것이요,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법대로 살아가지 않은 사람들은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라는 위대하고 확실한 미래의 모습을 약속하세요.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이것을 본 이후에 하박국은 완전히 변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죠. 보세요. 하박국 선지서의 시작은 한 선지자의 불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환희로 변합니다.
3장 17절,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왜 그렇게 변했나요? 한 순간의 근시적인 안목으로 작금의 소망이 없는 세상을 보던 그는,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진행해가시는 전체적인 그림, 곧 되어질 내일의 일까지 미리 보았기 때문이죠.
당장 상황이 변한 것이 아니었어요. 여전히 세상은 불공평하고 전쟁과 기근과 아픔과 질병과 무지 가운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박국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어요. 바로 미래의 그림을 보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그림을 믿음으로 붙잡았어요. 믿음은 항상 미래지향적이죠. 믿음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지금 현재의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소망을, 지금 이 순간, 가슴으로 끌어안는 것이죠.
그때에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2장 4절,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어떻게 산다고 했어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무엇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 선하신 일, 세상을 평정하고, 정의가 하수와 같이 흐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잘되고 복 받고, 그리고 선교와 전도를 통해 마침내 이 땅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그날, 바로 그 영광의 날을 믿음으로 바라다보면서, 오늘의 어려움을 힘차게 이겨나가라! 그것이죠.
저는 하박국 선지서를 읽으면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박국 선지서를 통해 저에게 주시는 영적 멧세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작금의 어려움에 너무 연연하여 좌절하지 말아라. 그것은 지나가는 한 부분에 불과하니 너 인생 전체를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아멘!-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 인생의 한 부분만을 바라보며 쉽게 좌절하고 절망합니까?
또한 역사의 한 부분만을 바라보며 세상 끝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까?
내 인생 태어 날 때부터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니 천국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의 전체를 끌고 가시는 하나님, 이 세상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역사 전체을 디자인하시고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은 잊은 채, 잠시 동안의 현재의 고난에 깊히 잠겨 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박국 선지서를 통해서 인생과 역사의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영적 교훈을 가슴에 담겠습니다. 우리 다같이 한 음성으로 따라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내 인생 전체를 잡고 가신다
세계역사를 잡고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개인의 인생의 역사 전체를 잡고 가십니다. 여기에서 안생 전체란 시간적인 것을 말합니다. 나의 탄생부터 내 인생의 기승전결을 하나님께서 손수 이끌고 가신단 말씀입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살려고 부단히 수고하고 애쓰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작금의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과거 2001년도 해 봄, 조국은 심한 가뭄으로 많이 어려웠었습니다. 그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그해는 농사가 잘 안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 해 여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이 몰아쳤습니다. 모두를 금년은 흉년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그해에 농사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풍년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모두들 의아해 했어요. 농학자들이 결국 그 이유를 밝혀냈습니다. 이유는 이러합니다. 그 여름의 심한 태풍에도 벼가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How? 어떻게? 왜냐하면 봄날에 가뭄으로 인해 벼들은 반사적으로 대응하면서 물이 있는 곳을 찾아 깊게, 깊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깊게 뿌리를 내린 벼들은 그 여름의 태풍에도 의연했던 것이죠. 쓰러지지 않은 것이죠.
우리가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 해 봄날의 심각한 가뭄은 오히려 그해에 태풍을 이기는 힘의 요인이 되었어요. 그 심각한 가뭄이 없었다면 그해 여름의 태풍으로 인해 정말 흉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이 그러합니다. 작금의 나의 어려움이, 해가 된다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광의 미래로 가는 한 과정이라는 것이죠.
우리를 향하신 뜻은 하나님의 뜻은 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지만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주님 안에만 거하면 오늘의 아픔이 내일에는 반드시 기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음으로 붙잡고 오늘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 교회 역사를 잡고 가신다.
저는 여러 교회 중에 하나인 보편적인 교회로써 산돌중앙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산돌중앙교회 한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선교 때문에 세워진 교회 아닙니까? 선교중심의 교회는 무엇을 말합니까?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일을 주목표로 삼는 것이죠. 교회의 전체적인 사역의 초점이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Centrifugal, 원심력적인 교회, 교회 안에 응축된 힘이 교회 밖으로 터져 나가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는 예배와 교육과 봉사와 구제와 교제의 목적이 선교로 연결되어지는 교회입니다. 전파중심의 교회입니다. 그 힘 가지고 복음이 필요한 이웃을 향해서, 세계를 향해서...., 그곳이 한국이든 네팔이든 중국이든 이집트이든 상관이 없이 복음이 없는 곳에 복음을 심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교회가 되는 것, 그 그림이 바로 우리 교회의 설립자와 성도들이 본 비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민족, 내일은 세계로 라는 초창기의 슬로건은 산돌중앙교회의 특유의 색깔을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천구 시흥동 108-47번지, 우리교회가 세워져 있는 지역은 그렇게 부유한 사람들이 성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마을은 아닌 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선교라고 하는 우리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비젼을 끌어안고 38년이란 세월을 하루같이 보내왔어요. 뒤돌아보면 감동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기도합니다.
“주여~! 주께서 우리 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로 세우기를 원하시면 건강의 복을 허락하시고 또한 물질의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성도들의 십일조가 늘어나게 하소서~!”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잘 먹고, 잘살고 호례호식 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확장하는 일에 물질이 필요하니까 “주여~! 우리 교회의 성도들을 더 크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8월은 여전히 덥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단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사역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하러 갈 일터가 있음은 일하시라 함입니다.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경작을 하면 수확의 기쁨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어제도 이 무더위에 화평이 수련회 마지막 밤, 학생도 교사도 모두들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저의 말씀의 주제는 “기죽지 말자!” 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관점으로 날 업신여기고 무시해도 괜챦다. 다윗이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가 형제들 중에 다윗을 제일로 몰라주었습니다. 그러니 사무엘이 왕에게 부을 기름을 가지고 왔는데 다윗만 빼 놓았습니다. 형제들이 또 그러했습니다. 전쟁터에 음식을 가져왔더니 장형 엘리압이 하는 말이 “이 악한 녀석아 너는 양을 치지 않고 전쟁 구경하러 왔느냐?” 하고 다윗을 무시했습니다. 사울이 “너는 골리앗과 싸우기에는 너무 어려~!” 무시했고, 나중에 골리앗 장군도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기 때문임을 체험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목자가 되시고, 방패가 되시고, 창이 되시고, 바위가 되시고, 뿔이 되시고, 창이 되시고, 보호하시는 날개가 되심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 달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작금의 어려움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성소에서 기도하므로 밝고 빛나는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미래의 계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화와를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삶의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계획하신 그 아름다운 전체의 그림을 가슴에 끌어안고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이 그림이 이 8월을 시작하는 이 이른 아침에 저와 여러분의 가슴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감동으로 출렁일 수 있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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