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으로 양보할 것과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
교회/성도가 국가 권세/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사랑으로 도와야 할 일이 있고, 신앙으로 양보하지 못할 것이 있다. 세상은 언제고 교회가 먼저 세상을 이해하고 협력하며 때로 양보해주기를 바라며 그것이 예수님의 신앙의 계보를 이어가는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다. 작금에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
그런가하면 어떤 믿음의 사람들 중에도 무조건적으로 국가권세에 협력하고, 또한 세상을 끌어안고 양보하고 희생하자는 지론을 내세우는 자도 있다. 과연 그래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실천인가? 기꺼이 양보할 것이 있고, 죽음으로라도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이 시대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1)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성전에서 하지 말아야 할 환전소 운영과 제물 시장을 보시고는 만민이 기도하는 거룩한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상인들을 쫒아내셨다. 이 사건이 또 하나의 계기가 되어 예수님은 유대인의 최고회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대제사장이 의장)의 결의로 체포당하시고, 십자가에 처형당해 죽으셨다.
* 질문: 왜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 정치,종교 최고기관의 권위에 반기를 드셨는가?
2)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다가 산헤드린 공회에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과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모인 상황에서 경고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다. 그때에 제자들(베드로와 요한)은 대응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응수하였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다.
* 질문: 왜 제자들은 당시 유대인 정치, 종교 최고기관의 권위에 반기를 들었는가?
3)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고 표적을 행하니 산헤드린 공회는 백성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스데반 집사를 잡아들인다. 그 공회 뜰에서 재판을 받던 스데반은 저들을 향해 외쳤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행7:51,52,53) 결국 그는 그곳에 모인 자들에 의해 성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 질문: 왜 스데반은 당시 유대인 정치,종교 최고기관의 권위와 그곳에 모인 백성들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였는가? 왜 양보하지 않았을까?
4) 마르틴 루터와 쯔빙글리 여러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교회 최고의 권위자인 로마 천주교의 비성경적 해석과 행위에 대하여 반기를 들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유럽종교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개신교회가 태동하게 되었다.
*질문: 종교개혁자들은 왜 로마천주교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였는가?
5) 일제강점기 시대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한국은 일본제국으로부터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로 강요당하게 된다. 이에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본 목사들과 교인들이 이를 거부한다. 결국 박해 속에 감옥에 갇히고 순교자가 발생하게 된다. 이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라고 여겼던 목사들은 교인들을 독려하니 교인들은 신사참배를 국민의례정도로 여기고 따르게 된다.
세월이 흘러 1992년 6월 18일 열린 템플턴 상 시상식 감사예배에서 한경직 목사는 “일제 때 신사참배를 했는데 그 죄를 제대로 참회하지 않았다”면서 “일생의 짐이었는데 우상숭배의 죄를 이제야 참회한다”며 눈물을 흘려 좌중을 숙연케 했다.
그 이듬해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3·1절을 기념해 신사참배에 대한 죄책 고백선언문을 발표했다. “교단 소속 인사들이 친일적인 언행을 하고 신사참배를 한 것과 가난한 이웃, 가정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들을 고백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같은 해 9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도 정기총회에서 신사참배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기장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강압에 못 이겨 교회가 마땅히 지켜야 할 신앙의 정절과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신사참배에 가담했다”면서 “부당한 일제의 강압에 신앙으로 맞서지 못하고 머리 숙였던 부끄러운 죄를 통절한 마음으로 회개한다”고 선포했다.
* 질문: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여겨, 한국을 합방한 일본정부의 권세에 협력하여 신사참배를 한 것이 잘 한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항명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에 갇히고 순교한 것이 하나님 앞에 옳았던 것인가?
기독교인으로써 세상 권력과 국민들의 필요를 보고, 사랑과 희생으로 끌어안고 가야 할 일이 있고,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신앙의 절개도 분명히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신앙적 판단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임한다. 그러나 세상 권력의 요구와 명령에 의해 순종하거나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다.
2020. 3. 25. 산돌의 목양실에서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