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영성, 목회자 영성
금번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선교사들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국내 목회자들하고 영성이 다르다. 한 마디로 무모하기 그지없다. 앞 뒤 좌 우 가리지 않는다. 나처럼 다시금 고국에 들어와 목회하는 동료 선교사도 다 똑같다. 예배드리다 죽으면 순교한다는 마음이다. 이런 저돌적인 영적야성 때문에 선교지에 죽으러 갔다. 그런데 안 죽었다. 홍수, 화산폭발, 지진, 공산당의 위협, 테러리스트의 위협, 풍토병에 걸려 병상에 누웠던 날들...., 그런데 살려주신 하나님, 그러니 두려움을 상실했다.
그런데 고국에서 편안한 일상 중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습이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다. 그런 영적 야성 때문에 선교지에서는 열매가 맺혀져 갔다. 그러는 중에 순교한 자도 있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선교사도 있다. 그런 동료 또는 선배 선교사들에게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현실적응에 미안한 마음도 인다.
그런데 목회는 다르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된다. 선교사는 호랑이처럼 고독한 존재로 서 있다. 죽으면 나 한 사람 순교를 생각한다. 가족을 생각하면 몸을 사릴 것이다. 가족도 둘째다.
그런데 목회자는 내가 내가 아니라 성도를 보호해야 하며 성도의 삶과 질병에도 심적안정에도 저들의 안전과 저들의 가족 자녀들까지 생각해야 하는.....그야말로 양무리를 지키고 보호하며 돌봐야 하는 목자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크게 다가온다.
내가 내가 아니라 양들을 위한 나라는 생각을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강도 7.8, 이어 6.4. 그리고 다시 7.4의 본진과 여진을 경험할때에 하룻밤에도 땅이 여러번 흔들리니 일층에서 선잠을 자던 아내와 자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집 밖으로 뛰쳐 나가는데 나는 이층 방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가 여진이 지나가고나면 또 누워 잤다. 아예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주민들도 있는데 나는 단 한번도 밖으로 뛰어 나간 적이 없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공포의 시간에 함께 뛰어 나갔어야 했다. 그게 체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나만을 생각했던 행동은 아내와 딸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고 나는 미움을 받게 되었다. 눈높이를 모르는 나의 행동은 나만의 나였던 것이었다.
목회자는 성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문제는 그 천차만별의 심적상태를 다 헤아릴 수 없으니...., 그 평균 수준을 알아서 그리고 본인들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온라인 예배로, 그리고 동시에 예배당 예배로 드릴 수 있도록 함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 모습이 모두를 위한 체휼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선교사의 순교적 영성에서 목회자의 목양적 영성으로 나를 포기하고 내려오는 체휼임을 새롭게 깨닫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하늘을 볼때마다 주님께는 죄송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2020.3. 10. 종식이 언제인지 모르는 지루한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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