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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92]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이소서!
운영자 2026-02-12 추천 0 댓글 0 조회 17
[성경본문] 시편88:1-9 개역개정

1.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3.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4.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5.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6.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7.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셀라)

8.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이소서!

 

오늘 시편 88편은 구구절절 읽은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시편의 여러 탄식시 중에서 시편 88편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아픔과 절망 중에 신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 고통이 심한지 그 표현이 5절에는 자신은 시체들 가운데 던져진 존재요, 4절에 보니 그러므로 그 시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고, 5절에 보니 무덤에 누운 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8절에 보니 그 무덤에 갇혀서 나오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는 처지에 있다고 슬퍼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이 어떤 연유로 인해 닥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이 없는데도 당하는 억울한 고난인지? 그 고통이 육신의 질병 때문인지, 원수들의 조롱과 핍박 때문인지, 또는 부자나 권력자의 횡포 때문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시편 88편 본문 위의 명시된 표제를 보니, 고라 자손의 찬송 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이라고 했어요. 에스라인 헤만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활동한 레위 지파의 찬양 사역자였습니다. 아삽, 여두둔과 함께 다윗 왕 시절 성전 예배 찬양 규범을 만들었고, 핵심 찬양 인도자로 활동했으며, 솔로몬 시대에는 지혜로 유명했던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예언자였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자로, 성경은 그를 '왕의 선견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난과 슬픔의 때, 에스라인 헤만은 그 아픔과 시련과 고통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고 믿었습니다. 6절과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88:6~7) 행위 주체가 하나님이세요. 말씀에서 주께서,” 또는 주의 노가,” 또는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고 표명합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회초리를 드시고 아주 엄격하게 고강도의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럴 때가 있습니다. 예상치 않은 사고가 나고, 또는 육신의 질병이 찾아오고, 사업이 가라앉거나, 자녀에게 어려움이 임할 때, 하여 가슴이 철렁 가라앉고, 하늘이 캄캄해질 때..., ? 그런 고난이 일어나는지 남들은 몰라요. 그런데 본인은 압니다. 그처럼 착하고 선한 사람이 왜 저런 고난을 당하나?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정작 본인은 알아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양심의 영역에,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양심을 찔러 깨닫게 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그 상황에서 좌절하거나 절망하여 그야말로 나는 틀렸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어! 나는 이 정도 밖에 안돼!” 포기하는 모습, 그러면 사탄이 기뻐합니다. 지켜야 할 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기고 마는 거예요. 그러지 말라고 찬송으로 부르쟎아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왜 그렇겠습니까? 성령님의 꾸짖음은 죄인을 정죄하여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에요.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러므로 철저히 회개하게 하시며, 예수님을 더 잘 믿으며,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도우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징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그 모습이 지은 죄 때문이든 아니면, 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한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든,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생각과 자세는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지은 죄를 생각나게 하시고 책망하시거든 당연히 회개해야 하지요. 철저히 눈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지은 죄가 생각이 나지 않거든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욥과 같이 사탄이 믿음을 달아보려고 시험을 하는 것이니, 더욱 기도하며 인내하며 적의 진지를 훼파하며 이겨나갈 것이요, , 하나님께서 연단의 과정으로 주시는 것이라면,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의 주실 축복을 믿음의 눈으로 미리 바라보며, 찬송 부르며 기도해야 합니다.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극도의 절망과 두려움에 처한 에스라인 헤만이 바로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배워야 할 영적교훈이에요. 1절과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88:1~2) 주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그 얼굴을 들어 그에게 비추실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88:9)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밤이 되어도 잠을 잘 수가 없으니, 하나님 앞에 철야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그 간절한 기도를 과연 들어주실까요? 13절이에요.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88:13) 밤새 철야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니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처럼 간절한 간청의 기도가 주님 앞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마침내 응답하신다는 소망과 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리고보면 기도의 올바는 자세는 간절함입니다. 길게 기도하든 짧게 기도하든 간절함이 없는 기도는 기도라 할 수 없어요. 간절한 모습은 부르짖는 기도가 될 수 있고, 애통하며 기도하게 되며, 새벽기도로, 철야기도로, 금식기도로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두 번째로 배우는 영적 교훈입니다.

그것은 기도할 때 솔직하게 다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자신의 답답한 심령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다 떨어놓고 있습니다. 10절에 뭐라고 하나님께 아룁니까?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88:10)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이 상황에서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하소연이에요. 내가 죽은 다음에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송하겠습니까?” 그런 뜻이에요.

 

11절도 같은 내용이에요.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88:11) 무슨 뜻이겠어요? 죽은 다음에 어떻게 주의 인자하심을 선포하며, 멸망 당한 후에 어떻게 주의 성실하심을 선포할 수 있겠나이까?” 하소연 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구할 것을 못 구해서 울며불며 떼를 쓰는 모습이에요. 하나님 앞에서는 그래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어제 나눈 것처럼 목자와 양과의 관계가 설정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과 어린양인 다윗과의 관계가 그러했습니다. 너무 잘 알기에 믿는 거에요. 솔직하게 다 표현하는 거에요. 그 모습은 엄마 앞에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감출 것이 없어요. 왜 그렇겠어요? 엄마는 벌써 다 아니까요. 엄마보다 자녀를 더 잘 아는 자는 세상에 없어요. 숨긴다고 감춰지지가 않아요.

 

아기가 배고파서 울면, 엄마는 결국 젖을 준다는 것을 아가는 믿는 거예요. 믿기 때문에 우는 거예요. 언제까지 울어요? 줄 때까지 울어요. 고아원에서 크는 아이들은 별로 울음이 없어요. 시간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식사 시간, 운동시간, 쉬는 시간, 씻는 시간, 잠자는 시간 등 함께 공동생활을 해야 하니, 나 혼자 개인적으로 불편함과 원하는 것에 대하여 떼를 쓸 수가 없어요. 고아원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되요. “울어도 소용이 없구나! 떼를 써도 소용이 없구나!”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렇지 아니해요. 울며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요,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또한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어린아이와 같아라!”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 어린아이의 어떤 면일까요? 엄마와 아빠를 전적으로 믿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왜 그렇게 믿겠습니까? 자신은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습니다. 그 믿음은, 나는 무능하기에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다 하신다.!” 그 믿음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로 이 새벽에도 기도하게 하는 근거요, 그 믿음이 주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이유입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다 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솔직하게 다 아뢰시기 바랍니다. 정오의 빛과 같은 하나님의 눈앞에 드러나지 않을 것도 없고, 감출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한 부분들도, 나의 슬픔과 아픔도, 두려움과 불안도, 걱정도 답답함도....,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고 컨트롤하지 못하는 성격적인 부분과 정서적인 부분까지도, 다 십자가에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연약한 부분까지 해결하시기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죄 사함만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아니에요. 나의 무능과 연약함과 모난 성품과 단점들 다 끌어안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새벽에 기도하실 때, 오늘 시편 88편의 기자처럼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두손을 들고 기도하고, 응답받기 까지 기도하시고,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솔직하게 감추는 것 없이 다 내어 놓고, 들어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기도하시므로 응답 받으시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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