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시편 강해 90] 그래도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운영자 2026-02-10 추천 1 댓글 0 조회 26
[성경본문] 시편86:11-17 개역개정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12.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13.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래도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이 시간 우리가 묵상하는 시편 86편은 다시금 다윗이 쓴 기도문입니다. 시편 전체 150편의 시 중에 다윗이 직접 쓴 시가 일흔세 편이 있습니다. 주로 시편 제1권과 2권인 1편부터 72편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시편 3, 86편에 등장하니까 새롭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저는 참 반가웠어요. 성군 다윗은 시를 통해서 그의 감정을 하나님께 고스란히 다 드러냈습니다. 감사와 찬양과 믿음뿐만 아니라 아픔과 탄식과 소원도 하나님께 표명했어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 다윗은 어린 양이었으며, 하나님은 다윗에게 목자셨기 때문이었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희노애락을 경험합니다. 그중에 , 즉 기쁨과 즐거움은 가족을 포함하여 누구와도 나눌 수 있겠지만, 즉 분노와 즉 슬픔은 가족, 부모, 자녀와도 나누기가 쉽지 않아요. 아픔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저 가슴에 담아둘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가슴에 담아두지 아니했어요. 하나님 앞에 다윗은, 그 모습이 마치 엄마 앞에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목자시니까요. 그 모습이 아프면 안아주고, 울면 달래주고, 눈물이 흐르면 닦아주고, 너무 힘들고 지치면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자장가를 불러 재워주시는 친정 어머니, 친정 아버지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윗에게 하나님은 영혼의 창조주시오, 지키시고 돌보시는 목자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러한 믿음이 있습니까? 다윗과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러하신가요? ~! 그러시지요. 그런 믿음이 있으시기에 이 추운 새벽에도 주 앞에 나와 누구에게도 내놓지 못하는 속마음까지....., 자식에게도, 남편이나 아내에게도 말 못 하는 것을 다 주께 아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특권이에요. 언제나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어린양이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11절에 다윗은 어린양으로서 목자이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모르니 내게 길을 가르치소서!” 함께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86:11)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이 말씀에서 주의 는 길 자를 사용하고 있어요. 어린양이 어디로 가야 할지 갈 길을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걸어야 할 길이 있어요. 진리입니다. 그 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면 그 진리에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보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많이 기쁘시겠지요. 그래 알았어~! 얼마든지~! 그 길을 걸을 때 내가 너의 목자가 되어줄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어지는 그의 고백도 마찬가지에요. 1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86:12) 이 고백이 하나님 즐거우시라고 입술로만, 소위 립서비스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어지는 13절에 그럴만한 이유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86:13)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기 때문이에요. 스올은 지옥이에요. 그 지옥에서 구원해내신 하나님! 그러므로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올리겠다는 고백입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로 말하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용서하시고 사랑하사, 내 영혼을 구원하셨으니,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주를 전심으로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를 높이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현재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14절의 내용이에요.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서 그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생명을 취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그러한 이유는 파워게임에서 다윗을 제거하고자 하기 때문이에요.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들은 영적으로 달라요. 그들의 믿음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14절 후반부의 말씀대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그 상황을 대처하는 다윗의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당연히 목자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겠지요? 그런데 그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인지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다. 바로 어린양을 돌보는 목자의 성품을 열거하고 있어요. 1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86:15)

 

그가 믿고 확신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첫째,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세요. 둘째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넷째는 인자가 풍성하시며, 다섯째는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야만 양 떼를 이끌고 보호하고 인도하며, 푸른 초장에서 풀을 뜯게 하시고, 배가 충분히 부르면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지 않겠습니까? 이 모습이 바로 다윗이 바라보는 하나님이세요. 그는 시편 23편에서 고백하기를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라고 찬양했습니다.

 

이어지는 그의 고백에서 하나님은 그러하신 분이시라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16절 초반부에 고백합니다.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로 돌이키사 라고 했어요. 무슨 뜻이겠어요. 그 생명의 위협을 받는 어려움 속에 있는데 목자가 안보이는 거에요.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어디 가셔서 주무시고 계셨나요? 선한 목자신데 그럴 리 없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된 상황일까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다윗이 스스로 딴 길로 간 것입니다.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길을 걷지 않고, 딴청 피우고 다른 길로 갔기에, 어느 지점에서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는데, 정작 목자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둘째, 보고 계시면서도, 양이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그래 네가 한번 네 멋대로 해 봐라 둘의 공통점은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의 용서가 필요하고 은혜가 필요했던 것이에요.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그 어려운 상황에서는 심판이 아니라 용서가 필요하고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어찌하든지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여정이 때로 그러지 않나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값을 치루지 않고 그저 그 크신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서, 그 인자하심에 너무 익숙해져서 함부로 행했을까요? 다윗이 간청합니다.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 여종은 그의 어머니요, 그의 아들은 다윗 자신입니다.

 

저도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철들기 전이였죠. 저의 육신의 모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셨으나, 주를 사랑하고, 전도하여 마을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며, 교회를 섬기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열심이 많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린 제게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분명 하늘나라에서 칭찬을 받으시고 많은 상을 받으시겠다.” 그런데 제가 청소년 시절 방황하고 유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학교에서 학부모 불림을 받았어요. 겁이 많아서 그랬을까요? 창피해서 그랬을까요? 그런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아버지, 저의 어머니를 봐서라도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 어려운 상황에서 저를 좀 도와주세요. 다시는 잘못 행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형님이 학교에 다녀갔고, 저는 퇴학을 면했습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살길을 찾고, 이러 저러한 사람들을 만나도, 전혀 소망이 보이지 아니할 때, 마치 거대한 쑤나미가 밀려와 나를 삼키듯 두려움에 처할 때, 먼저 나를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야 할 길에서 이탈하여 지금 엉뚱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끝이 낭떠러지로 향하는 결코 가서는 아니될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말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서 울어야 합니다. 여기저기 갈 길을 찾겠다고 헤매지 말고, 더 이상 가지도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서, 매애~! 매애~!” 소리를 내어 울어야 합니다. 그래야 목자가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옵니다. 그것이 기도요, 간구요, 회개입니다.

 

성경은 누가복음 154절 이하에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15:4~6) 우리 하나님은 결코 주의 사랑하는 자녀를 버리시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울 때,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오십니다.

 

마지막 절 17절입니다.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86:17) 사람이 이러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요. 기껏 구해주었더니, 벌써 잊었어요. 아이들이 자랄 때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요. 구해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이제는 충성되이 주를 기쁘시게 하며 섬겨야 하는데,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무슨 뜻이겠어요?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풀어주세요.” 그런 뜻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잘못된 것일까요? 염치없는 바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그의 고백처럼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그렇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반기는 아버지의 마음이에요. 이것이 우리에게 가능한 이유는 바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의 연약함과 부족함까지도 다 끌어안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베푸신 그 은혜로 우리는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능력으로, 다시금 일어나, 하늘 찬송을 부르며, 이제는 목자되신 주님과 함께, 딴 길로 가지 말고, 주가 가르쳐주신 길을 따라 걷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시편 강해 91] 시온은 선교를 위한 이 시대의 교회 운영자 2026.02.11 0 26
다음글 [시편 강해 89] 다시는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운영자 2026.01.30 0 52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 FAX : 02-893-6737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28
  • Total269,184
  • rss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