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85:1-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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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다시는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사람은 원치 아니해도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강한 것 같아서 선줄로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방심하기 때문이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민감하지 아니하면, 긴장하지 아니하면, 한 순간에 실족할 수 있습니다. 왜 믿음의 사람이 그렇게 무너질까요? 그것은 마치 암세포처럼 사람의 심령에서 죽지 않고 끈질기게 남아 있는 죄성이 다시금 기승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설명하기를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과 더불어 싸운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7장 15절입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7:15) 마치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어, 선과 악간에 전투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바라볼 때, 탄식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이 혼돈스러운 모습이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에요.
그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압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에요. 바로 ‘죄성’입니다. 로마서 7장 17절에 그의 고백입니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7) “네 속에 거하는 죄니라!” 자신도 자신을 어쩌지를 못해요. 무엇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까? 그 지독하고 끈질긴 죄성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길 수는 없는 건가요? 이기지요. 이기지요.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이 경험과 깨달음으로 진리로 선포합니다. “영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이 말씀에서 영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 심령에 충만히 임하실 때, 그러므로 죄를 책망하시고, 지배하시고, 다스리실 때, 순종하는 자는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그러므로 주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도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 심령 깊은 곳에 내주하십니다. 임마누엘로 동행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자칫 성령을 근심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언제 성령께서 근심하실까요? 성령님께 내 권한을 주지 아니할 때입니다. 내가 내 욕심에 이끌려 성경이 지적하는 소위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에 마음을 빼앗기고, 급기야 자기 마음대로, 자유의지를 사용하되 욕심에 끌려 행할 때, 그 모습은 이미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입니다. 그러한 모습에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기도하는 자의 심령에 감동을 주십니다. 선한 일을 할 때는 기뻐하시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지을 때는 탄식하시며 책망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선한 양심으로 성화를 이루어가고,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아니하면, 즉 주권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고, 자기가 주인되어 자기 욕심대로 행하게 됩니다. 죄성이 기승을 부리는 거에요. 그때 근심하시는 성령께서 책망하시고 지적하십니다. 양심을 찌르시는 거에요. 그때 그 특정한 죄를 자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돌이키지 아니하면, 근심하시며, “그래, 너 한번 그렇게 해 봐라! 그 결과가 어떤지 네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성령의 근심은, 믿음의 사람을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하나님의 뜻 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탄식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백성이 그런 모습이라면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징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생자가 아니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가던 잘못된 길을 돌이키도록, 지팡이와 막대기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회초리를 드시는 것이에요. 그리로 가다가는 영영 멸망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오늘 시편 85편은 언뜻 볼 때 기쁨과 환희가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1절과 2절 말씀에,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시85:1~2)
그러나 왜 그들이 포로가 되었겠습니까? 잘못했으니까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타향살이 70년 만에 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청종하고 지켜 행하라! 그것이 복된 길이다!”라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강조하셨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욕심대로, 세상에 눈이 어두워 살았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였어요.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혀 갈 때, 발에는 차꼬가 채워졌고, 손목은 쇠사슬에 묶여 그 멀고 뜨거운 광야 길에 끌려갈 때, 그야말로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땅에 거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며, 범한 죄를 깨닫고, 뉘우치며, 철저히,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어떻게 하셨어요? 3절 말씀입니다.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시85:3) 돌아오게 하셨어요. 다시금 성전예배가 시작이 되고 나라는 재건되기 시작했습니다.
9절 이하 12절까지의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크고 귀하고 놀라운지 그 내용을 읽을 때에 참 기쁘기 한량이 없습니다. 천천히 읽으며 가슴에 담겠습니다.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시85:9~13) 할렐루야!
그 모습은 회복이요, 성장이요, 번영이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리를 따르는 자에게 이러한 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는 자가 잊지 말고 꼭 가슴에 담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시85:8)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그럴 때 회개는 진정한 회개인 것이에요. 같은 죄를 범치 아니할 때, 용서는 회복으로 회복은 번영의 역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은 용서하십니다. 그 지은 죄를 심판하려고 돌을 집어 들고 던지려는 군중에게 말씀하셨어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그때 양심에 깊은 찔림을 받은 군중은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요8:9)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요8:10~11)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8:11) 예수님의 용서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같은 죄를 다시는 짓지 말라 언급하신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왕이기에 가진 권세로 백전백승을 하니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고 교만해져 있을 때, 그가 사탄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고 크게 실족합니다. 십계명 중에서 이웃의 소유를 탐하는 죄와 간음 죄와 살인 죄를 범합니다. 이를 꾸짖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듣게 되었을 때 자신이 무슨 죄를 범하였는지를 그는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침상이 눈물로 젖도록 철저히 회개하고 통회자복하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때,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징계하시며, 아들의 생명을 취하셨어요. 그 회개와 용서 이후로 그는 같은 죄를 결코 범하지 아니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번성하였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민족은 그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우리가 그래야 하겠습니다. 그러시므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용서하심 나아가 회복하심과 번영을 체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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