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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87]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운영자 2026-01-27 추천 0 댓글 0 조회 10
[성경본문] 시편83:1-8 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2.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3. 그들이 주의 백성을 치려 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께서 숨기신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4. 말하기를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5.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6.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7.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

8. 앗수르도 그들과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 (셀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시편 83편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때는 주전 850년경, 남왕국 유다에는 선왕인 여호사밧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을 때였어요. 남 유다왕국을 정복하기 위해 인접한 족속들이 연합하여 큰 연합군을 형성하였습니다. 그 민족들은 6절이하 8절에 소개되고 있어요. 에돔과 북왕국 이스라엘과 모압과 하갑인과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과 블레셋이었습니다. 그 큰 규모의 연합군이 함께 대대적인 공격을 하려고, 예루살렘 성을 에워 쌓습니다. 군사의 규모로 볼 때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말 것이었어요.

 

이 어려운 상황과 엄습하는 두려움 가운데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83:1~2)

 

하나님께서 과연 침묵하실까요? 그 상황에서 잠잠하시거나 조용하실까요? 아니면 이 전쟁에 친히 개입하셔서 그 연합적군을 물리치실까요?

 

이 시편 기자의 외침처럼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잠잠하시거나 조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 시대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응답이 없으신 거에요. 환난 중에 여러 날 기도하고 애원하며 간청하지만, 하나님은 어디 머나먼 곳에 가 계시고 이 일에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오시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출현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상황들이 나옵니다. 욥이 그처럼 환난과 고난을 당할 때 그 기간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정설에 의하면 7년이라고 했습니다. 7년간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 그 어려움 속에서 욥은 생각합니다.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임하였는지? 왜 하필 나인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연단으로 주시는 환난이라면, 언제 끝날 것인지? 많은 의문이 일었지만, 7년 동안 소통이 아닌 불통으로 그렇게 7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때,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은 그 홍수가 끝나는 날이 언제인지 모른 채 그 답답한 방주안에서 수 많은 동물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비는 40일 주야로 내렸지만 그러나 온 세상을 덮은 물이 하감하여 밖으로 나와 땅에 발을 디디기까지는 전체 375일이란 날을 방주 안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수고하는 노아에게 음성으로나 꿈에서라도 나타나시지 않으셨어요. 세상 표현으로 연락이 두절 된 상태요, 침묵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자! 나사렛이 병들었습니다. 안타까움에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속히 오셔서 오라버니를 낫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대하여 바랐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바로 오지 아니하세요. 성경에 보니 요한복음 116절에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라고 했어요. 그 사이에 나사로는 죽게 되었고, 죽고나서 무덤에 있는지 나흘이 지났음에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는 사이 마리아와 마르다는 얼마나 혼돈스러웠을까요? 그처럼 오라버니 나사로를 위하시고 사랑하셨는데 정작 그 어려운 죽어가는 상황에 왜 안오시는 것인지?

 

한 장면을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침묵의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죄인 아닌 죄인의 모습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성부 하나님은 그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성자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시고 시작된 잡혀가시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지 출현하지 아니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실 때도, 옷 벗김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다 받으시고,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하나님은 어디에도 안 보이십니다. 예수께서 부르짖으셨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래도 응답이 없으셨어요. 십자가에서 죽어 차가운 돌무덤에 계셨을 때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허락하신 삶을 살면서,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닥치고, 때론 짐작했던 일이 터지고,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지? 그렇게 간절히 울부짖으며 간청을 하고 기도를 해도, 침묵하시니, 너무 멀리 가 계신 것처럼 느껴지실 때.... 여러분은 없으셨나요?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나 봐~!” 어떤 사람은 의심이 솟구쳐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없으셔! 존재하신다면 이렇게 나를 비참한 상황에 내 버려두실 수는 없으시지~!” 의심하며 망연자실할 때가 있습니다.

 

욥은 왜 그렇게 하셨나요? 욥의 믿음을 아신 하나님께서 사탄이 아무리 시험을 해도 그 믿음 변치 않음을 보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동시에 모든 고난이 죄를 많이 지어서가 아니라는 것도 보이셨어요. 하나님은 그리고 그분의 역사는 사람의 지식으로 헤아릴 수 없는 영역에 있음도 알게 하셨으며, 욥의 고백대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 더욱 믿음이 굳건해졌으며 7년 이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되 자녀도 재물도 건강도 고난 이전보다 갑절이나 더 하셨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375일간의 방주의 수고를 마치고 그 심판 이후, 이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아니하리라 무지개의 언약 가운데 새 역사의 출발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죽은 나사로는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늦게 오신 것이었어요. 주검의 냄새가 나는 그때를 기다려 그를 부활시키시므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그 능력을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와 백성들의 믿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의 침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양 제물로 대속을 이루시도록 그 사랑과 용서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사명 다 감당케 하셨고, 그래서 아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금 부활케 하심으로, 그 놀라우신 인류 구원의 뜻을 철저히 이루시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멀리 가 계신 것이 아니라, 쟈카르의 하나님 여전히 곁에 계셔서 바라보시며 생각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과 자녀가 고난을 당할 때, 필요에 따라 즉각적으로 출현하시고 해결하시지만, 그렇지 않으실 때에도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즉각적인 응답도 응답이다. 둘째, 기다리게 하심도 응답이다. 셋째, 응답 없음도 응답이다. 세 번째 응답은 너무 매정한가요? 당장은 몰라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사람으로서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절규의 응답은 예수님의 죽음이었습니다. 응답 없음이 하나님의 응답이었음을 우리가 압니다. 구원의 이루심이요, 이어 부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부활합니다.

 

응답 없음의 결과를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면 알게 됩니다. 어떻게 그 응답 없으심이, 또는 하나님의 막으심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지를..., 깨닫고 아는 날이 옵니다. 그날을 맞이하는 자는 믿음이 더욱 성숙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간증하는 인생이요, 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며 경외할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예루살렘은 연합군으로 형성된 적으로 완전히 에워쌈을 당하고, 멸망과 절망의 먹장구름이 그 성 위에, 사람들의 마음을 덮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그 적들이 자중지란에 빠지게 하시고 그들 스스로 무너지게 하셔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막으시고 여호사밧 왕과 백성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역대하 20장에 나타납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대하20:21~22) 아멘! 이어지는 말씀이,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대하20:23)

 

그 나라의 존폐위기를 극복한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다윗의 길을 따른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처럼 대규모 적군이 침공했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였으며, 하나님은 노래하는 자들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는 중에 기적적인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그러했습니다. 우상숭배를 제거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여,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성읍을 견고히 하고 국방을 튼튼히 했으며, 공정한 재판 제도를 확립하여 국가를 안정시켰던 왕이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평소에 우리가 똑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건강 주실 때, 주를 섬기고 충성하며, 물질 있을 때 선교를 하고, 어려운 자를 돕고, 내게 사명 주실 때, 순종함으로 최선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아쉬움도 후회도 없습니다. 언제가 다다를 천국 문에서 수고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주인의 잔치에 참여할 지어다!”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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