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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강해 33] 고난 중에 회개와 참된 변화
운영자 2025-10-17 추천 0 댓글 0 조회 37
[성경본문] 역대하33:9-13 개역개정

9.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고난 중에 회개와 참된 변화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열두 살의 나이로 유다의 왕위에 오른 므낫세는 너무나 어리고 철부지여서 그랬었을까요? 훌륭했었던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의 신앙을 본받지 않고, 도리어 반대가 되어 우상숭배를 비롯한 모든 악을 행하였습니다.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의 선한 행실을 버렸어요. 도리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행실을 쫓았습니다(2). 그의 아버지가 여러 성읍에서 깨뜨린 우상을 다시 만들어 그것을 섬겼던 것입니다.

 

므낫세가 저지른 악한 일을 나열해 보면, 첫째, 부친이 헐어 버린 산당을 세우고 거기에서 우상에게 경배하였습니다. 둘째, 여호와의 전에 우상을 위해 단을 쌓았습니다. 셋째, 사람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넷째,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였습니다. 다섯째, 자기가 직접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전에 세웠습니다. 여섯째, 유다 백성들을 유혹하여 우상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므낫세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극히 거룩한 곳인 성전에서까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니 그의 나라와 백성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 히스기야 왕 때의 선한 통치와 므낫세의 악한 통치의 결과는 분명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다른 모습을 비교해 보면, 첫째로 히스기야 왕과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곧 회개하였고(대하32:26) 그 결과 그들은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습니다. 전장인 3229절에 보니,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대하32:29) 또한 모든 일이 형통(대하32:30)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국력은 심히도 강하여서, 강국 앗수르까지도 그들을 넘보지 못하고 태평성대를 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처럼 싫어하는 우상 숭배를 한 결과 앗수르가 유다를 쳐서 므낫세 왕이 포로로 끌려가는 환난을 당하였어요. 백성들은 목자 잃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내용이 10절과 11절에 기록되었어요.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대하33:10~11)

 

이러한 복과 화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한 것과 악을 행한 것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오랫동안 직분을 받아 일해 온 것에 행여나 우쭐하거나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오랜 신앙 경력과 업적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오히려 나를 망가뜨리는 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면 징계와 연단이 임할 것입니다. 육신의 질고나 예상치 못한 사고, 또는 사업이 기울고 가정에 관계가 깨어지고 우환이 임할 수 있습니다. 돌이키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대로 방치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회초리를 드시는 거에요. 살리는 역사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의 복과 지킴을 기대했던 므낫세가 앗시리아에 사로잡히고 쇠사슬로 결박되어 바벨론에 끌려가게 되자, 비로서 깨닫는 거에요. 우상을 섬길 것이 아니었구나! 나도 나라도 지켜주지 못할 헛것을 경배했구나!” 아버지 히스기야 왕때의 풍요롭던 시대와 너무나 다른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그야말로 후회막급입니다. 그 비참한 처지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였는지, 또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죄인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어요. .

 

므낫세가 회개합니다. 철저히 돌이킵니다. 마음을 찢고 그 몸에 재를 뿌리며 통회하며 회개합니다. 회개로 인해 그는 다시금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 임한 것이에요. 회개에 대하여 좀 더 알아봅니다.

 

첫째, 회개는 하나님이 누군신가를 발견함으로 비롯됩니다.

므낫세는 그가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잡혀가기 전까지, 그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우상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들에게 경배하였어요. 그러므로 그의 그 신념을 전 유다에 반영시키기 위해, 백성들에게까지 우상 숭배를 강요했던 것이었어요. 무지몽매했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아버지 왕이 그토록 전심으로 경외하며 섬겼던 하나님이 므낫세에게는 안중에도 없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늘에 나는 것으로나, 땅에 기는 것으로나, 바다에 사는 어떤 형태의 형상으로도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했으니, 답답했던 므낫세였습니다. 만져지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없고, 불확실한 내일에 대해 알고 싶어도 당장 답을 들을 수 없으니 답답합니다.

 

반면에 우상은 어떠합니까? 보입니다. 만져집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니,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박수를 신임하였다고 했어요. 박수는 무당이죠.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말해 줍니다. 그것이 맞는다? 그것은 둘째치고, 답답한 내일을 당장 알려준다고 하는 것이 매력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에 점집을 찾아가는 사람이 없을까요?

다섯 명 중에 한 명이 점집을 찾아가고 사주를 본다고 했어요. 그러면 왜 찾아가는 걸까? 무속을 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마음에 평안을 갖는다는 거에요. 그런데 기독교를 왜 믿느냐고 물어보면 마음에 평안을 준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목적이 똑같아요. 무속하고 종교를 갖는 이유가 똑같아요.

 

그런데 또 하나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즉시성이 있다는 거에요. 무속은 바로 해답을 줘요. 그런데 기독교는 바로 해답을 안 주는 것처럼 보여요. 해답을 들으려면, 먼저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예수님을 믿고, 주인으로 영접하고,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야 하고, 믿는 자의 심령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를 드려야 하고.... 등등!

 

그런데 무속은 그런 거 없어요. 바로 답이 나와요. 보통 한국인들 성격이 급하쟎아요? 그러니까 무속인에게 찾아가는 것이 그 해답이 맞든 틀리든 간에 즉각적인 답을 주니까 거기에 빠져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므낫세는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우상을 섬기고, 어렴풋이나마 점을 쳐서 미래를 말해 주는 신접한 자들을 더욱 신뢰하였어요. 그러나 그게 다 헛것임을 앗시리아에 사로 잡혀서 쇠사슬로 묶여 포로의 신세가 되고 보니 비로서 깨닫는 거에요. 헛거였구나!” “아버지가 맞았고 믿음의 선조들이 맞았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켜보호해주셨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구나!” 그에게 대각성이 오게 된 것입니다.

 

12절과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대하33:12~13)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크나큰 시행착오로 환난과 고난과 비참한 상태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전능자이심을 발견할 것이 아니라, 미리 알고 깨닫고 믿어서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쉼과 안식을 얻으며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회개한 자는 지난날의 삶을 깨끗이 청산합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한 후 그의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까지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온갖 우상을 만들어 그들에게 절하고 점쟁이들의 말대로 믿고 따랐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발견한 이상 옛날 그대로의 삶을 지속할 수 없었어요. 그러므로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의지로 삼아 왔던 우상들을 모두 깨뜨리고 제단들을 모두 부수어 버렸습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제단들을 다 성 밖에 던지고(대하33:15) 우상! 이제 그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고 더 이상의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하나의 조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은 죄악된 삶을 깨끗이 청산합니다. 가짜로 회개한 자들은 끊어내지를 못해요. 그래서 그 삶이 진흙탕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구습을 과감히 내버리고, 끊어내고, 돌이키고,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마치 회개한 바울 사도가 이전의 자기 삶을 배설물로 여겼듯이 말입니다.

 

셋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함께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령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대하33:16)

므낫세는 모든 것을 청산한 후 곧바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더렵혀진 여호와의 단을 깨끗하게 하고 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행했던 것처럼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린 것입니다. 그 모습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교제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장면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성전은 어떠합니까? 눈에 보이지 않아 대충 어지럽혀놓아도 되는 것입니까? 혹여나 습기차고 어두워 곰팡이가 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그 문을 노크하십니다. 문을 여는자! 그 어둠을 뚫고 들어가는, 정오에 빛보다 더 강한 빛이 그 심령을 비추어, 어둠을 몰아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그 모습이 회개의 완성입니다. 그 열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여호와를 섬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생명을 얻게 하시되 더욱 더 풍성히 얻게 하시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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