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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강해 27] 신앙에 견고하여 끝까지 일관되게
운영자 2025-09-30 추천 0 댓글 0 조회 42
[성경본문] 역대하26:1-9 개역개정

1. 유다 온 백성이 나이가 십육 세 된 웃시야를 세워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2. 아마샤 왕이 그의 열조들의 묘실에 누운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3.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6.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고 가드 성벽과 야브네 성벽과 아스돗 성벽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에 성읍들을 건축하매

7. 하나님이 그를 도우사 블레셋 사람들과 구르바알에 거주하는 아라비아 사람들과 마온 사람들을 치게 하신지라

8.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9.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제공: 대한성서공회

신앙에 견고하여 끝까지 일관되게

 

오늘 역대하 27장은 남 왕국 유다의 제11대 왕인 요담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왕에 오를 때 나이가 이십오 세라고 했어요.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더 일찍 나라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부왕인 웃시야가 나병에 걸려 죽는 날까지 별궁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요담왕은 유다 왕들 가운데 드물게 보는 경건한 왕이었습니다.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선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요담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배우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초지일관의 모습이에요.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같았습니다. 그의 그의 할아버지 왕이나 아버지 왕과는 달랐어요. 처음에는 잘 나가가다 나중에 비참해진 그 모습과는 달리, 초지일관의 신앙으로 왕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통념적인 생각을 넘어서서 비록 윗물이 흐릴지라도 아랫물이 맑을 수 있다라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의 할아버지 왕인 아마샤는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행하였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왕은 처음에는 선지자의 말을 순종하여 용병을 포기하고 전쟁에 나가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적들이 섬기는 우상에 매료되어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모습으로 본다면 믿음 안에 신앙인으로 잘 살아가다가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물질적으로 부유하여 소위 성공하였을 때, 그만 세상에 취하여 신앙을 저버린 모습입니다. 이는 개인의 모습도 그렇지만 단체도 나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나라의 주권을 잃고 내일에 소망이 보이지 않던 일제 강점기에 한국교회는 뜨거운 신앙으로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사 하나님께서 일본제국을 패망하게 하시고 나라의 주권을 찾게 해주셨어요.

 

6.25 전쟁의 폐허더미 위에서 잘 살고자 힘쓰고 애쓸 때,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주를 섬기며 뜨겁게 기도하였습니다. 교회는 성장하였고 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나라는 과거 오천 년의 역사 속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니 마치 자신이 다 이룬 것처럼 여겨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많아지고 세상과 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겉으로는 선진국이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불만지수는 높아가고, 마음은 공허하고, 영적으로는 핍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처음과 나중이 같은 초지일관의 신앙으로 고수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복된 인생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에요.

 

요담의 아버지 웃시야는 농업과 목축업을 일으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무기도 개발하여 강력한 국방력을 갖추었어요. 그러나 나라가 강해지자 교만해져서 자신의 역할인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종교의 수장이 되고자 했습니다. 성전 안에 성소까지 들어가 제사장이 감당해야 할 제사의 역할까지 자신이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그렇게 만류하였지만 화를 내며 제단의 분향을 하려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만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정사를 돌보지 못하고 별궁에 거하며 죽어갔어요. 처음에는 좋았지만 그의 인생의 마지막은 그렇게 불행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의 모습이 좋겠습니까? 처음에는 잘 나가다 나중에 무너지고 망가지는 모습이 좋습니까? 아니면 처음에는 별 볼일 없이 형편없었는데 나중에 훌륭하고 잘 되는 모습이 좋습니까? 네 후자겠지요?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삶의 모습은 초지일관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리고 중간에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반듯하고 잘 된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는 분명 가장 복된 삶을 사는 자일 것입니다.

 

오늘 요담왕이 그러한 인물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연약함을 뛰어넘은 모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역사를 기록한 열왕기 서를 통해서 그러한 그의 모습을 봅니다.

 

요담은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 웃시야의 부국강병 정책을 계속하여 추진하였고, 영적인 면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가 부국강병을 위하여 행한 일들이 345절에 기록되었습니다. 3절에 보니, 성전의 윗 문을 건축하고, 오벨 성벽을 많이 증축하였다고 했어요. 오벨이란 언덕이라는 뜻인데, 예루살렘의 남동쪽에서 동쪽으로 뻗어 있는 언덕이에요. 전략적으로 중요한 그 언덕 위에 성벽을 견고히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 보니 유다 산중에 성읍들을 건축하고, 수풀 가운데 견고한 진영들과 망대를 건축했습니다. 5절에 보니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은과 밀과 보리를 조공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부해지고 강해지게 되었어요. 훌륭한 왕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나라를 잘 다스리고 그의 삶 끝날 까지 초지일관했던 그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것은 바로 여호와 신앙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고수했기 때문이었어요.

 

사람이 잘 되고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안하무인이 됩니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알지요. 그때 영혼의 창조주요, 생명의 소유주요,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똑바로 보지 못하면 결국 타락하고 패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두 번이나 반복되는 요담왕의 신앙을 봅니다. 그 모습은 2절과 6절에 있어요. 2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더니 그리고 6절에는 뭐라고 했습니까? 함께 읽겠습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대하27:6)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다고 했어요.

 

그런데 2절을 가만히 보면 의문을 가질 수 있어요. 기록하기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대하27:2)

 

이와 같은 상황은 요담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라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다라는 것은 같은 시대의 상황을 기록한 열왕기서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어요. 그것은 백성들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은 얼핏보면 성전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만 그것이 아니에요. 아버지 왕 웃시야처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들어가지 말아야 할 성전의 성소에 요담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해야 하는 분향까지 하고자 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아버지 웃시야처럼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능력에 있어서나 영적인 신앙에 있어서 양쪽을 겸비할 수 있었던 요담이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정치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아버지 쪽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니에요. 나라가 강해지게 된 것은 6절의 말씀대로 먼저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 신앙이 가장 우선이요, 기본이요, 기초요, 바탕이 될 때 비로소 형통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담의 신앙을 볼 때, 우리의 초점은 그의 어머니에게로 가야 합니다. 1절에 설명하고 있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요 사독의 딸이더라(대하27:1) 그의 어머니 여루사는 제사장 사독의 딸입니다. 대제사장의 딸로 신앙적인 집안의 분위기에서 자라난 여루사는 남편 왕을 곁에서 보았습니다. 남편 웃시야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의지하며 통치했던 때, 나라가 얼마나 튼튼했는지을 보았어요. 비교하여 왜 나병에 걸렸는지 하나님 앞에서 행해지 말았어야 했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대조적인 모습을 본 어머니 여루사는 분명 아들에게 철저히 훈계하고 권면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가하면 나병으로 곁에서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요담은 아버지와 다르게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하고자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늘 죄를 의식하며 교만을 멀리하려고 조심하였을 것이에요. 이 모습은 우리가 요담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로 인한 결과를 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식하는 모습은 우리가 가슴에 담아야 할 중요한 영적 교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될 때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연약한 지라, 누구나 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과 높은 평가로 인해 초심이 사라질 수 있어요.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알고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지만, 시간이 가면서 자신이 잘나서 잘하여 이룬 것처럼 착각하여, 감사가 사라지고, 교만하여 우쭐해진다면, 이는 바로 패망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초지일관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늘 깨어있을 때 가능합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한 번의 인생, 요담과 같이, 처음이나 중간이나 마지막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는 그 날까지,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앞을 향해 전진해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저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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