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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강해 16] 주의 임재 안에서 힘과 능력을 얻으라
운영자 2025-04-04 추천 0 댓글 0 조회 6

주의 임재 안에서 힘과 능력을 얻으라

 

드디어 하나님의 법궤는 그 법궤를 위해 다윗이 만든 장막 가운데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법궤는 마땅히 놓여져야 할 곳에 놓여진 것이에요. 지난 40여 년간 법궤는 이곳저곳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범람하던 요단강물의 흐름이 법궤를 앞세우고 강물에 발을 대니 멈춰 섰습니다. 그래서 어려움 없이 건너가게 되었어요.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또한 법궤를 앞세우고 성을 돌게 되자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후로 이 법궤는 엘리 제사장과 어린 사무엘이 있었던 성소인 실로에 있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블레셋 군대와의 전쟁 중에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법궤가 도와줄 줄 알았던 것이었죠. 그러나 전쟁에서 패하였어요. 왜 패하였을까요? 법궤 자체에 신비한 능력과 힘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법궤 앞에 선 자들이 누구인가를 보는 것이에요.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죄를 범한 자들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어요.

 

법궤는 이방 나라 블레셋 군사에게 빼앗겼으며, 그 나라가 섬기는 신인 다곤 신전에 안치되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그들이 섬기던 다곤은 가나안 농경신인 바알의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법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둔 다음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다곤이 법궤 앞에 얼굴을 대고 절을 하듯이 엎드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블레셋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우연히 일어난 일로 여기며, 애써 무시했고 다곤 신상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곤의 몸체만 그대로 있고,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틀 전만 해도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이 승리자라고 의기양양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섬기는 신(다곤)이 법궤 앞에 경배하는 모습과 머리와 두 손목이 잘려 희생 제물이 된 장면을 보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그냥 넘어갔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독종의 재앙이 아스돗 사람들에게 내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삼상5:7) 라며 아우성쳤습니다.

 

블레셋 지도자들은 두려워하며 법궤를 가드로 옮기도록 지시했어요. 법궤가 옮겨진 후 가드 성읍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독종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법궤를 에그론으로 옮겼어요. 에그론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독종 탓에 고통하고 신음하면서 죽어 갔어요. 에그론 사람들은 법궤를 원래 처소로 보내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므로 법궤는 다시금 이스라엘 땅인 벧세메스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벧세메스에서는 그 법궤 안을 들여다 본 사람들이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레위 지파 거룩한 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법궤는 이제 기랏여야림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 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20년이 지나게 되었고, 마침내 최종적으로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지면서, 성소를 떠나서 40년의 긴 여정을 마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의 기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의 근원이요, 재앙의 방패막이였지만,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재앙의 화근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이 진리는 마찬가지에요. 바울 사도가 증거한 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세상의 속됨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그것은 절대로 섞일 수가 없어요. 세상의 속됨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함은 세상의 속됨을 정화하여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어요.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주 보혈!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구원을 믿을 때, 주홍같은 죄가 양털같이 희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이제 예루살렘성 안에 있는 성별되어진 장막, 거룩한 장소에 놓이게 되었어요. 그 법궤는 하나님 임재하심의 상징이요, 선택받은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구심체로서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봅니까? 바로 이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교회는 세상에 있으나 거룩한 곳이어야 합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 거룩의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해요. 불교의 절처럼 세상과 결별하여 멀리 산속에 있으면 좋지 않을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빛의 모습으로, 산 위의 숨길 수 없는 동네의 모습으로, 병든 세상을 치유하고, 죄악된 문화를 개혁하는 일에, 보루가 되고 센터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법궤의 도착은 온 이스라엘의 기쁨이 되었어요. 본문 말씀 162절과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이스라엘 무리 중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더라(대상16:2~3)

 

어떤 모습이 연상됩니까? 잔칫날의 모습이죠. 4절에 보니 찬양대가 등장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5절과 6절에 보니,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성가대원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찬송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7절부터 36절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선한 일들을 기억하고, 열거하며, 감사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특별히 어떤 것을 기억하며 감사로 찬양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12절에 보니, 그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을 기억할지어다(대상16:12)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출애굽을 할 때, 이를 허락하지 않는 애굽왕 바로와 그 관원들과 백성에게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시므로 마침내 출애굽하게 하시고, 넘실거리는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셨고, 매일 새벽 내리는 만나로 먹이셨으며, 바위에서 물을 내어 그들이 목마르지 않게 하셨습니다. 범람하는 요단강의 흐름을 멈추게 하셨고,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하시기 위해, 전문 용사들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족속과 가나안 족속을 물리치며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이적이에요.

 

여러분의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주가 함께 하시므로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하셨어요.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불꽃이 여러분을 사르지 못하도록 지키셨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이처럼 기도회에 나와 찬송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며 주의 은총을 덧입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번째12절 후반부에 보니, 그의 법도를 기억할 지어다 그랬어요.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계시로 주신 영생의 도 아니겠습니까?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 아니겠습니까? 불변의 진리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어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또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기준이 불분명하여, 선과 악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이 혼탁한 세상 풍조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확실한 삶의 기준이요, 천국에 가는 나침반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니 그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찬송해야 하겠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대상16:15) 천대 라고 하셨고, 그의 언약이라고 하셨어요. 언약은 약속이에요. 하나님은 약속을 키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주실 것을 약속하셨어요. 그것은 자손과 땅과 민족이었습니다.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다윗에게도 솔로몬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영락없이 지키신 하나님이세요.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 신실하심으로 우리가 찬송으로 불러요.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말씀을 맺습니다.

다윗이 옮겨온 하나님의 법궤는 곧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상징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예배당에서 주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기도하고, 찬송하고, 감사함으로, 필요한 힘과 지혜와 능력과 영력을 얻습니다. 오늘도 세상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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