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에베소서2:13-2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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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한 성령 안에서 천국시민이 되어
우리 모두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예수님의 피로 멀리 있던 이방인들,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 누구겠습니까? 오늘 성경에는 에베소 교회 교우들이요, 과거의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과 가까운 존재가 되니, 이 땅에서는 누구와 가까워졌다는 것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이 서로 가까워졌다는 말씀이에요.
어떻게 이방인들이 선택받은 민족처럼 그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 14절 말씀이 그 말씀이에요. 함께 읽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성전에서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을 나누는 그 두껍고 높은 담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허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애물을 허시고 하나로 만드셔서 둘 다 차별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다는 것이에요.
15절에 보니 “법조문으로 된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 사랑을 표현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요, 자랑이 되고, 타민족을 향하여 교만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에요. 16절의 말씀을 풀어서 전합니다.
“이제 그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해도 다는 못 지킨다. 마음속의 숨겨진 죄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니 너희 율법으로는 안된다. 이제는 너희도 십자가에서 이룬 예수의 보혈의 공로와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너희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다 똑같이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로 피로 구원받은 자는 피차 간에 원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둘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차별도 없습니다. 민족적 경계를 넘어선 것이에요. 19절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제 더 이상 외인이 아니다. 나그네도 아니다. 오직 성도들과 같은 하늘나라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 권속은 가족이란 뜻이에요. 하늘나라 가족인 것입니다.
사회적 신분이 달라도, 남녀노소, 빈부격차, 많이 배운자, 적게 배운자 할 것 없이....., 예수 안에 한 가족으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계속해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대 주제에요.
20절로 마지막 절까지 이 교회의 지어져가는 모습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 민족이 과거에 에베소 지방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이방인들 이었어요. 2,000년 전에 시작된 이 기쁨이 소식이 우리 민족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수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수님 오시고, 그로부터 1,500년이 지난 다음에야 한반도에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이 사람들의 심령에 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주교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594년(선조 27) 포르투갈 신부인 세스페데스(Sespedes)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종군신부로 입국한 그는 이후 많은 선교 활동을 하였습니다. 북경의 선교본부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면서 천주교 서적을 수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양문물을 받기를 꺼려했던 조선은 반대를 하고, 박해를 하였으니 1801년(순조1)의 신유박해(辛酉迫害), 1839년(헌종5)의 을해교난(乙亥敎難), 1864년(고종1)의 병오교난(丙午敎難)과 같은 많은 박해로 많은 천주교 신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개신교 선교역사는 1865년 9월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가 성경을 전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에 제너럴 셔먼호 배에, 더 많은 성경책을 가지고 토마스 선교사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드리지 아니하는 조선의 정책에 의해, 배는 불에 탔고, 토마스 선교사님은, 대동강변에서 참수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처럼, 모든 이방인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나라와 백성들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고, 권속으로 만드시기 위한 이 사랑의 역사는 결코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선교의 역사입니다. 박해를 뚫고 증거되었어요. 새롭게 복음이 전해지는 곳은 언제나 영적전투의 모습이 있었어요. 여러 선교사들이 박해를 당하고 죽었습니다. 바로 그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이에요. 오늘 14절에 말씀하신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신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절 22절 말씀처럼 계속해서 원수의 관계는 화목의 관계가 되고, 주의 몸 된 교회가 이 땅에 세워져 나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기독교 대학의 명문인 휘튼 대학 출신이며 에콰도르 선교를 위해 헌신한 짐 엘리엇이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선교를 위해서 생애를 바치기로 작정했어요. 학교를 졸업한 후 1952년 봄, 에콰도르에 도착한 짐 엘리엇은 특별히 와오라니 (waorani)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는데, 이 부족은 ‘아우카’ 라는, ‘야만인’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외부인들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고, 아주 호전적인 부족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외부인들이 여러 차례 그 마을에 들어가려하다가, 그들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복음도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짐 엘리엇은 에콰도르에서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이 부족선교를 함께 할 네 명의 친구들을 모았습니다. 약 세달 동안 경비행기를 이용하여 선물꾸러미를 이 아우카 부족에게 투하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많이 친해졌습니다. 비행기가 오면 그들은 손을 흔들고 투하하는 선물들을 잘 받아 갔습니다. 그리고 1956년 1월 8일 드디어, 이 다 섯명의 젊은 선교사들은, 아우카 부족민들과 직접 접촉하려고, 마을에서 가까운 강가에 경비행기를 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 가슴 아픈 것이었으니 창을 든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아서, 다섯명 모두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때에 짐 엘리엇의 나이는 28세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또 한 어린 딸을 남겨두고 그렇게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당시 미국의 유명한 잡지였던, ‘Life'지는 장장, 열 페지에 달하는 기사로 이 사건을 다루면서 헤드라인을 이렇게 올렸습니다. “What a unnecessary waste!"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 그렇죠?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답할 것입니다. ”그들은 젊은 생애를 허망하게 낭비했다고..“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순교 이전에 짐 엘리엇의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었던 그의 신앙고백에서, “낭비였는가?”에 대한 그 대답이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이러한 그의 신앙고백이 적혀있었습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 not keep to gain what he can not lose." “잃어서는 안 될 것을 얻기 위하여, 어차피 간직할 수 없는 것을 나눠주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잃어서는 아니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잠시 있다가 없어질 이 땅의 것들, 내 시간, 나의 달란트, 내 물질, 나의 생명을 나눠주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나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고자 각오했던 것입니다.
사납기로 악명 높았던 아우카 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불살랐던 짐 엘리엇, 그의 시신이 동료의 시신들과 함께 쿠레라이 강변에서 발견되었을 때, 무지막지하게 창에 찔린 그들의 몸에는 권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권총으로 자기를 방어하면서 창을 들고 달려오는 자들을 향하여 본능적으로라도 총을 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급박한 상황이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본능적으로라도!................그러나 그들은 저들을 향해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우카 족을 사랑함으로써, 자기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이 스토리가 여기에서 마쳐지지 않습니다. 남편, 짐 엘리엇을 순교자로 하늘나라에 보낸 지, 그로부터 2년 후, 1958년 9월, 그의 아래 엘리자베스 역시, 목숨을 걸고 남편이 이루지 못한 그 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린 딸 밸러리(Valerie)와 함께 아우카 부족을 찾아들어 갔습니다. 그때 경비행기 조종사였던 네이트 세인트의 누나인 레이첼 세인트도 이 일에 합류하게 됩니다. 남편이 죽은 이후, 2년 동안 원주민 언어를 배우며 선교를 준비하고 들어갔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슬픔에 잠겨 있을 틈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알게 되었어요. 사나운 아우카 부족도 여자들은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우카 부족들이 마침내 그 여자들이 누구인가를 결국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죽인 그 다섯 명의 선교사들의 부인이며, 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을 죽인 장본인 중에 대장격인 자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나를 죽이라, 복수하라!” 그는 진지하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죽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자베스와 네이트에게 그들은 살인자요, 원수였습니다. 남편을 죽인 원수, 동생을 죽인 원수, 아빠를 죽인 원수!
오늘 14절에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또한 성경 로마서 5장 10절은 말씀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 여자 선교사들은 예수의 사랑으로 저들을 용서하였습니다. 그 사랑은 바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 십자가의 사랑”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 그처럼 사납기도 유명했던 아우카 부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의 복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몸 된 교회가 그 땅에도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너무 감사하지요. 우리가 이렇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드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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