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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51] 순진무구한 성품
운영자 2024-07-04 추천 1 댓글 0 조회 102
[성경본문] 창세기37:1-11 개역개정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순진무구한 성품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제 우리는 야곱의 시대를 마치고 또 한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대하게 됩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가장 사랑받는 사람 중에 하나인 요셉이에요.

 

요셉은 야곱의 두 번째 아내인 라헬의 소생입니다. 라헬은 아들을 둘을 낳았는데 첫 번째가 요셉이요, 두 번째 아들은 베냐민입니다. 라헬은 이 베냐민을 낳으면서 난산을 하였어요. 베냐민을 낳고 라헬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 산고 가운데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슬픔의 아들이에요. 아들을 낳고 죽어가는 엄마의 슬픔이 그 이름에 배어 있습니다. 마음이 짠하지요. 그런데 야곱은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로 하지 않고 베냐민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내 기쁨의 아들입니다.

 

이 베냐민의 형인 요셉, 그 이름의 뜻은 더하실 것임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헬은 언니인 레아와 비하여 자녀가 귀했지요. 그래서 요셉을 낳으면서도 또 다시 아들을 고대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름이 그랬어요. 그리고 그 이름에 담겨진 소원대로 라헬은 베냐민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자녀에게 주는 이름들은 베냐민이든 요셉이든 부모의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들도 이름이 뜻이 있을 것입니다. 적용을 한다면 먼저 그 이름의 선한 뜻을 발견하십시오. 세상에 나쁜 이름은 없습니다. 부모님이 얼마나 고심하면서 그 이름을 지었겠습니까? 그러니 나는 이름처럼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힘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 주십니다.

 

예를 들어 제 이름에는 바를 자가 있습니다. 그러니 바르게 살아야 하는데 꼭 그러지는 못해요. 때로 좌충우돌하고 넘어집니다. 제 아내의 이름은 금래입니다. 그 뜻이 비단 자에 올 , 금은 부를 상징하고, 래 자는 앞으로 올 것이니까 제 아내는 부를 불러 온다 그러니 이런 사람과 함께 사는 것 만으로도 나는 부유한 자가 된다그러니 내가 잘 되면 아내 덕분입니다. 그러니 늘 감사하며 살아야하지요.

 

요셉의 성품을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은 아주 순진무구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지도 않고 가식도 없고 요령도 부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술수와는 상관이 없는 그런 착하고 순진한 성품의 소유자였어요. 또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라헬의 언니인 레아가 일곱 아들을 낳고서야 라헬이 요셉을 얻었으니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또한 이는 야곱도 마찬가지지요. 그렇게 사랑하는 라헬이 첫 아들이니 더욱 더 사랑스러웠겠지요. 사랑 속에 어려움 없이 천진난만 그리고 순진무구한 모습이 그의 성품의 색깔이었습니다.

 

그 순진한 모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이 열일곱 살이라고 했습니다. 형들과 함께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형들이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을 행했습니다. 그러니 과실이라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그 안 좋은 모습을 본 요셉이, 득달같이 아버지인 야곱에게 가서 말합니다. 형들의 입장에서 보면..... 감춰야 할 얘기를 고자질 한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이 일로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기 시작합니다.

 

상상을 해 봅니다. 요셉의 이와 같은 순진한 성품은 왜 형들이 자기를 미워하는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아버지에게는 잘하는 것이지요.

 

요셉의 이 순진무구한 성품이 또 드러납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어요. 얘기 않해도 될 꿈 얘기를 요셉은 그저 자연스럽게 얘기합니다. 6절과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37:6~7)

 

~! 이 꿈이 어떤 내용인 줄을 요셉은 몰랐어요. 그런데 눈치 빠른 형들이 먼저 이해합니다. 형들이 그 꿈 얘기를 듣고 해석을 해요.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37:8)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요셉, 그래서 채색옷을 입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당시에 채색옷이란 고관대작, 왕족의 신분, 아주 부자들만이 입는 옷이에요. 오늘날로 말하면 뭐 밍크코트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형들이 질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꿈 얘기를 합니다. 뿐만 인가요? 보통 그런 상황이면 ~! 형들이 이런 꿈을 싫어하는 구나~!” 눈치가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하쟎아요?

 

그런데 요셉은 눈치가 없어요. 또 꿈 얘기를 형들에게 합니다. 그때에는 아버지도 곁에 있었어요.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37:9)

 

그 꿈 얘기를 듣고 이제는 형들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아버지인 야곱도 그러한 순진무구한 요셉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러므로 꾸짖었다고 했어요. 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37:10)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지요. 꿈을 꾸고 싶어서 꾸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러면 그 내 꿈이 꾸어집니까? 그렇지 않아요.

 

저는 어린 시절 열한 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서울로 올라와서 큰형 밑에서 클 때 때로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기 전에 어머니와 함께 했던 많은 추억들을 생각했어요. 가급적 좋고 행복했던 추억들...., 왜요? 꿈속에서라도 뵙고 싶어서....그런데 안 나타나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실망이 컸어요. ~! 안되는구나~!

 

여러분 같은 꿈을 두 번 꾸신 적이 있습니까? 참 드문 일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사롭지는 않겠지요. 요셉이 두 번 같은 꿈을 꿉니다. ~! 이 꿈이 예사롭지가 않구나~! 누가 감지합니까? 예 아버지인 야곱이 감지합니다.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37:11)

 

영적으로 훨씬 앞서가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의 그 꿈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꿈이지요. 미래에 요셉이 어떠한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셉은 단순하고 순진했습니다. 그처럼 꾀가 많았던 그의 아버지 야곱과는 너무 달랐어요. 뿐만 아니라 순종도 잘했습니다. 순진하니까 순종도 잘 하겠지요. 어느날 아버지가 형들에게 다녀오라고 요셉을 세겜으로 보냅니다. 그 거리가 무려 70킬로나 됩니다. 며칠을 걸어가야 합니다. 열 일곱살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두말없이 순종합니다.

 

세겜에 가니까 형들이 없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형들이 도단까지 풀을 찾아 내려간거에요. 그러니 세겜에서 형들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요셉의 모습이 나옵니다. 웬만하면 너무 힘드니까 그냥 돌아올 수도 있을 법 하잖아요? 그런데 그럴 수 없지요. 도단이라는 지역까지 가서 형들을 만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쓰시는 믿음의 거장들을 만나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순수한지 모릅니다. 순진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자신의 꾀에 넘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이리로 저리로 돌리지 않아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문과 달리 대화를 하다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발견합니다. 어쩜 저렇게 단순할까!” 예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제자들이 그러지 않았나요? 나를 따르라! 하시니 즉각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한평생 한결같은 모습으로 영성의 길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아간 믿음의 거장들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순수하지 않으면 순진하지 않으면 그래서 복잡하고 잔꾀를 부리고 권모술수로 일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주 자주 변합니다. 말을 바꿉니다. 그 끝이 투명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방법이 영적인 일에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그런데 왜 어른들은 왜 자주 변하고 왜 바뀝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내 방법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또 잡았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합니다. 이 순수한 성품의 소유자,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결코 놓지 않았어요. 평생에 그 꿈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요셉! 그 순수함에 하나님께서 기름으로 부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너무 약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꾀를 부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너무 약은 자, 꾀가 많은 자는 결코 강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의 순수함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어린아이가 같은 믿음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나를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셔서 믿음대로 되는 역사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이 새벽에 우리의 기도 제목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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