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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43] 해피엔딩(Happy Ending)과 교훈
운영자 2023-03-17 추천 0 댓글 0 조회 264
[성경본문] 욥기42:1-10 개역개정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

제공: 대한성서공회

해피엔딩(Happy Ending)과 교훈

 

오늘 이 시간으로 우리는 욥기서를 마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직 주변은 어둡고,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있고, 사람들은 곤한 잠에 들어 있는 시간인데도, 나는 기도하리라!”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새벽 미명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일터의 일꾼으로서, 사업장의 사업주로서, 교회의 직분자로서, 장로님으로, 안수집사님으로, 권사님으로, 중직자로서, 또한 구역장님으로, 주일학교 교사로, 교역자로, 각 영역의 기도의 대표자의 모습으로 기도해왔습니다.

 

동시에 욥기를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왔습니다. 우리가 1115일에 욥기를 시작했거든요. 4개월이 지났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책걸이 떡을 먹어요. 가실 때 꼭 예배당 입구에 준비되어 있는 떡을 가져가셔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님 감사합니다.” 기도하시고, 그런데 떡을 제공하시는 분이 극구 공개를 사양하셔서 이름은 말 못해요. 누구인지는 힌트가 있어요. 평생을 하루같이 늘 새벽에 나오시는 성도님 중에 한 분이 섬기셨어요. 감사합니다. 먹을 때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떡처럼 맛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떡처럼 내 영혼의 양식이다.” 아멘입니다.

 

그런데 욥기를 통해 어떤 배움이 있었나요? 깨달음이 있었나요? 그냥 세월만 갔시유? 너무 어려워요? 성경 66권 중에 제일 어려운 책이 있다면 묵시록이라하는 요한계시록, 에스겔, 다니엘서가 그렇고 그리고 지혜서에 있는 이 욥기입니다. 여러 가지 주제가 등장합니다만 가장 큰 주제, 무엇이었습니까?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지혜와 능력을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그를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은 어련히 알아서 책임지시고, 지켜주시고, 복을 주신다.” 이것이 드러나는 주제요. 보이지 않는 주제도 있어요. 그것은 심오합니다. 오늘 욥기서의 마지막 장 42장을 읽고 묵상하는 중에 아시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놀라운 지혜로 그리고 능력으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욥은 할 말을 잊었습니다. 자신이 아는 지혜란 그 창조주시며, 보존주시며, 심판주시며, 구원주시며, 축복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하늘과 땅처럼 너무나 부족하고 작은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너죽이 엎드렸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가 하나님께 대답합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3) 계속 나눴습니다만 광대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이 갖고 있는 지혜의 한계를 욥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당한 고난과 고통에 대하여 잘못된 해석을 했어요. 무엇이었습니까?

 

어떻게 의인이 고난을 당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그럴 수는 없다.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친구들의 주장인, 네가 죄를 이었으니까, 고난과 고통이 왔지 인과응보를 주장하는 친구들의 조언이 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답이 그의 의문을 해소시키지 못했어요. 그러므로 욥은 심지어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럴 수는 없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항변했습니다. 그 자신이 알고 있는 지혜와 지식의 틀 안에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할 자로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의 설명과 책망을 듣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편협했던 생각, 헤아리지 못한 하나님의 그 깊은 섭리와 능력을 깨닫게 되었고, 욥은 자신의 교만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42:6) 회개하는 욥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회개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은 급반전을 이룹니다. 성도 여러분,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하나님)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요일1:9). 우리의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대속의 능력 때문이에요.

그 결과는 주께서 다시 주의 자녀로, 복 있는 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7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42:7)

고난과 고통에 대한 그 친구들의 잘못된 편협한 해석에 일침을 가하십니다. 무엇이었나요? 고난과 고통이 찾아오는 것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 주시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러나 욥은 의인이었어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은, 죄를 범했을 때는 그 말이 맞겠지만, 선하고 의롭게 사는 자에게 고난과 고통은 왜 그런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지 못했어요. 그저 자신들의 입장만 고수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운 영적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기억하십니까? 선하게 사는 사람이 고난 당할 때 함부로 정죄하지 말아라. 그 보다는 체휼하고 위로해라.”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어떤 선하신 뜻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다 헤아릴 수는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어떻게 대하십니까?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42:8)

 

왜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욥에게 가라고 했습니까? 예 번제를 드리라고 그러셨습니다. 번제는 회개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의 깊게 볼 점은 욥에게 가서,” 욥을 통하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본문말씀대로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들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번제를 드리면 안되는 것일까요?

 

지난 2007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밀양에서 살인범은,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면회 온, 아들을 잃은 여주인공에게 하나님은 이미 자신을 용서하셨다고 말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며 자기 마음대로 스스로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진정한 용서는 결코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는 피해자를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오늘 욥처럼, 자신의 마음에 서운함의 못을 박았지만, 제물을 들고 찾아와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니,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욥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다고 9절 말미에 말씀합니다. 이 모습은 우리의 삶에서도 사람 사이에,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와 용서와 화해와 회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내용은 여러분 이미 다 잘 아십니다. 핵심구절은 10절입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42:10) 할렐루야죠? 헤피엔딩입니다. 16절과 17절도 읽겠습니다.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42:16~17) 백사십년을 살았고,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다고 했어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백사십세까지 살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도 이렇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니에요? , 욥이 무병장수의 복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그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 질문: 과거 고난과 고통이 없었을 때의 욥과 이렇게 고난과 고통을 겪은 다음의 욥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똑같이 의인이고, 부자며, 다복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에게 심지어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고난과 고통을 주셨을까요?

 

그 답은 이러합니다. 고난 이전의 욥은 의인에게는 고난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얻게 된 그 행복의 조건들, 많은 재산과 다복한 가정이 그 의인된 삶의 증거라고 여겼습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려 벌었으니 그래서 자부심도 갖고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고난과 고통을 겪고 난 뒤에는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이겠습니까? 내가 잘 나서가 아니구나! 생사화복이 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영혼의 창조주요, 내 삶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로구나!” 그러므로 고난 이후에 욥은 달라졌습니다. 고난 전에 욥은, 의인에게 고난은 하나님이 버리셨다는거야!”에서, 고난 후에 욥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과 은혜가 변치 아니하시니, 나는 믿음으로 주를 의지해야 해!” 그러므로 그의 고백은 옳았습니다. 욥기를 마치면서 그 고백을 우리가 우리의 가슴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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