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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34]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통로
운영자 2023-03-02 추천 0 댓글 0 조회 258
[성경본문] 욥기33:1-18 개역개정

1.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2.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말하는구나

3.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

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5.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7.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8.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9.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10.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11.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12.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13.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통로

 

우리는 욥 앞에 등장한 또 하나의 인물 엘리후를 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그에 대하여 나누면서 그는 마치 예언자요, 하나님의 대언자와 같은 존재라고 말씀드렸어요. 욥은 하나님께 불평이 많습니다. 왜 자신이 당하는 고난 중에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 앞에서 그처럼 비참한 신세가 되게 하시고, 조롱거리가 되게 하시고, 정작 그 뜻은 알려 주시지 않으시는가 하는 것이 더 큰 고난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중에 한 모습은 하나님께서는 엘리후와 같은 주의 종을 욥에게 보내셔서, 주의 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다고 했습니다. 고난 중에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 주의 뜻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와 같은 모습은 저와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친 주일학교 선생님이요, 전도사님이나, 목회자요, 믿음의 선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곁에 이와 같은 좋은 영적 스승이요, 성숙한 영적 선배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엘리후, 그는 욥에게 선한 자입니다. 어찌하든지 욥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고난의 때를 잘 이겨내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 모습은 마치 교역자나 장로님이나 구역장님이 고난과 고통 중에 있는 성도나 구역원을 위해 중보하며 권면하며 격려하며 기도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러면 이 엘리후가 욥에게 주는 사랑의 권면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엘리후는 욥이 의인이요, 죄없는 자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 모습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주장했던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과 분명히 다른 입장에 서 있는 모습이에요. 네 가지로 욥의 무고함을 인정합니다. 8절과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33:8~9)

 

욥의 주장대로 욥은 깨끗하고,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다 라는 것을 엘리후가 인정합니다. 그런데 욥의 그 주장은 맞다라고 인정하지만, 그러나 고난과 고통이 온 뒤, 그 고난에 대한 욥의 해석과 생각과 자세는 하나님 앞에 옳은 모습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네 가지로 욥의 무고함을 인정한 엘리후는 이제 또한 네 가지로 욥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10절과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33:10~11)

 

욥의 잘못된 생각, 첫째, 하나님은 나의 잘못을 찾으신다. 둘째, 자신의 원수로 여기신다. 셋째, 그래서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신다. 넷째, 그래서 나를 감시하신다. 욥이 고난 중에 있다 보니, 그 고통이 너무 힘들다 보니, 그래서 갖게 된 욥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12절에 엘리후가 말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33:12)

 

무슨 말씀이겠어요? 하나님은 그런 몰인정하고 야박하고, 검사나 경찰과 같이 늘 불꽃같은 눈으로만 바라보는 냉정하신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누구를 향하여? 의인을 향하여! 엘리후가 욥에게 말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더 크고 넓고 깊고 높으신 뜻이 있음을 욥, 너는 알지 못하고 있어! 너는 그것을 알아야 해!” 엘리후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연단 받을 때 연단의 과정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있지 않습니까? 열심히 사는데, 바쁜데도 시간을 내어, 교회 일에 봉사를 하고, 없는 돈에 절약하고 헌금을 내고, 어려운 자를 돕고, 어찌하든지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자 충성하는데도....., 그런데도 고난과 시련이 닥쳐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은 야속하기도 하시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사람인지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랬었습니다. 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욥기를 묵상하면서 제가 여러 번 그 경험을 나눴잖아요. 그러시는 하나님이 너무 서운하고 야속해서,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하던 선교사역까지도 손 놓아버리고, 하나님께 뗑깡 부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필리핀에서 함께 사역하던 신용태 선교사님 당뇨로 인해 실명이 되고 간이 완전히 망가지고, 그런가하면 네팔에서는 공산당이 학교에 찾아와 공작금에 지원하라고 겁박하고, 2015년에는 강도 7.8, 이어 6.7 또 다시 7.4의 지진으로 인해, 사용하던 학교 교실 열여섯 개가 부서지고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신앙의 중심, 하나님을 향한 신뢰! 그 기초가 흔들리면 안돼요. 믿음 없는 사람처럼, 이런 하나님이라면 안믿어! 차라리 나를 믿지!” 믿음에서 떨어져서 세상으로 떠나가 버리는 그러므로 고통 속에, 영적으로 피폐한 모습으로 불평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자리에는 그런 성도는 한 사람도 없겠지요. 그래서 이 새벽에도 더욱 바짝 더욱 가까이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엘리후가 지적합니다. ! 너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고통 속에 있는 의인을 향하여, 침묵하시고,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냉정하시고, 야속하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데....,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

 

엘리후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심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알려 주신다. 말씀하신다. 보여주신다.” 어떻게 알려주신다는 것입니까? 13절과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33:13~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는데 문제는 사람이다. 그 알려주심에 관심이 없다!” 라고 엘리후는 주장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15절과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33:15~16) 졸며, 이는 선잠 또는 비몽사몽간에 라고 할 수 있겠지요? 깊이 잘들 때에 꿈을 통해, 또는 밤에 환상으로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야곱이 돌베개를 자고 잘 때,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도 꿈을 꾸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사도요한과 많은 주의 종들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이 신약시대는 어떻습니까?

 

이미 완성되어진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주의 종들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서도 알게 하십니다. 물론 드물기는 하지만 꿈과 환상을 통해서도 알려 주십니다. 때로 우리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만, 그 침묵도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는 한 방편이 되는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문제는 사람이라는 것이에요. 영적으로 예민하지 않아요. 기도하지 않아요, 사모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순전하지 않아요. 세상일로 분주하고 가득한 마음은, 영적인 주파수를 잡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싸인을 보내시는데 초점을 잡지 못하니 흐리게만 보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도 기도하실 때, 영안이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금요기도회 부르짖어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간절히 간구할 때, 하나님의 뜻을 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도 선지자를 보내시고, 심지어는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주를 사랑하고 순종하며 충성하는 자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요.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믿음에 더 성숙하며, 복된 인생으로, 승리하는 인생되게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뭐라 하십니까? 17절과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33:17~18)

 

악한 행실을 버리게 하시고, 교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궁극적으로 그 영혼이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미리 알려 주시고 알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이어 엘리후가 욥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육신적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영적 통찰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말씀합니다.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33:19)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식욕이 사라지고, 그 결과로 21절에는 앙상한 뼈만 남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23절입니다.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33:23)

 

여러분, 너무나 중요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내 스스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거역한 인생은 죄인이에요. 죄인된 자가 자신의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요. 오늘 말씀에는 천사 가운데 한 중보자라고 했어요. 누군가가 경건한 존재가 보증이 되고 중보의 역할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시겠다고 하십니다. 24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33:24) 축복의 말씀입니다.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친히 강림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제물되시고 그 흘리신 물과 피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25절입니다.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33:25) 할렐루야! 욥이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26절 이하 30절까지 축복의 말씀이니, 구원을 감사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집에 가서 읽어보세요. 반복해서 읽어보세요.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축복의 말씀인가~! 시간 상 26절 한 절만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33:26) 아멘!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빛 가운데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복된 인생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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