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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33] 진리를 전하려면
운영자 2023-02-28 추천 0 댓글 0 조회 613
[성경본문] 욥기32:1-10 개역개정

1.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2.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3.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4.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5.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

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

7.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

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9.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진리를 전하려면

 

욥기 32장에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논쟁을 벌였던 세명의 친구인 엘리바스, 빌닷, 소발과 또 다른 인물로서 그의 이름은 엘리후입니다. 그 이름은 그는 나의 하나님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의 뜻으로 보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왜 그가 등장하는지는 그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1절과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32:11~12)

 

무슨 말이겠어요? 욥과 친구들과의 논쟁을 가만히 들어보니 욥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참 진리를 말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그가 생각한 것입니다. 욥의 잘못은 무엇인가?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32:2) 욥의 주장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 고통을 주시고, 고난 가운데 있는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신다.” 그러한 욥의 자세와 하나님 이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욥의 세친구들의 잘못은 무엇인가? 3절입니다.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32:3) 그처럼 욥의 반대편에 서서, 욥 네가 뭔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려고 벌주시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던 그들이었는데, 욥이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은 지은 죄가 없이 깨끗하다고 주장을 하니,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도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말을 들어보시오.” 하고 엘리후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은 이유를 피력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제일 나이가 어리니 먼저 연장자인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먼저 말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름 예의가 있지요? 그래서 먼저 권면하는 이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영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가 그 세친구와 같이 인간적인 전통과 상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자신의 심령에 주시는 그 지혜로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볼 때 이 엘리후는 예언자요, 하나님의 대언자와 같은 자임을 우리가 감지할 수 있습니다. 8,9,10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32:8~10) 전능자의 숨결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신다고 그가 강조합니다.

 

그가 이제 등장하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연장자에게 우선권을 주었기 때문이요, 이제는 양쪽 다 할 말을 한 것 같으니, 그동안 참았던 자신이 알고 이해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얘기하겠다는 것입니다. 18,19,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32:18~20)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는 표현이에요. 이와 같은 엘리후의 모습은 하나님의 대언자로 등장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말씀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욥기서를 읽고 묵상하면서 이 엘리후의 주장을 통해 좀 더 깊이 고난에 대해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의 주장인 까닭없이 고난이 오겠느냐?” 인과응보만을 내세워 욥을 정죄하려 했던 모습도 아니요, 욥의 주장처럼 고난 중에 하나님이 나를 버려두시고,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신다.”라는 생각도 바른 생각이 아님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엘리후의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욥은 자신이 생각했던 그 고난 중에도 너무 냉정하시다고 여겼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꿉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욥을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그리고 나아가서 고난과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주의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세우십니다.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전도에 본을 보이며, 성도의 믿음을 성장, 성숙하게 하시고, 지친 영혼 돌보게 하십니다. 누구나 다 마음에는 감화를 입은 영적 스승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지요. 청소년 시절, 울적했던 저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주고, 다시금 일어서게 하셨던 전도사님이 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본의 아니게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싸움에 말려들고, 이것은 아닌데, 이것은 바른 모습이 아닌데....., 고민하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제가 다니던 교회 예배당에 들어가서, 혼자 회개하고 기도할 때, 조용히 제 곁에 와서 함께 앉아서 손을 잡고, 침묵으로 기도해 주셨던 전도사님을 잊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게 되니 그분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제 영혼이 살아나는 생명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방황하고 유리하는 저의 학창시절이 더 이상 궤도를 이탈하고 멀어지지 않도록 꽉 붙잡아 주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엘리후는 자신은 사람을 보고, 차별하여 말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21절과 22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32:21~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듯이 또한 복음을 전하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에게나 진실해야 하겠습니다. 헌금을 더 많이 해서, 사회적 위치와 신분이 높아서, 아니면 교회 일에 더 충성스러워서...., 믿는 사람도 사람인지라 치우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평성 그리고 누구를 향해서든지 진실한 모습은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엘리후가 그러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생각과 뜻이 아니라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지혜로 전하며,

둘째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진리를 전하는 자로 서 있습니다.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 여러분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과연 그런 모습으로 목양을 하고 있는지!” 제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해석하고 전함에 있어 내 뜻이 앞서 말씀을 벗어나지는 않는지? 그런가하면 성도들을 내 맘에 맞게 조종하려고 말씀으로가 아닌 내 뜻으로 전하지는 않는지?

가진자 적게 가진자, 많이 배운자 적게 배운자, 차별이 없이, 공평하고 진실하게 대하고 있는지? 시간을 나눔에 있어서 없는 자 보다는 더 있는 자들과 더 시간을 갖고자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런 모습이 있지 않기를 하나님 앞에 다짐하며 기도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은 다 정에 이끌리고, 돈에 이끌리고, 관계에 묶이고, 좋은게 좋은거라는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보다는 진리와 진실을 더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 새벽에도 우리가 기도합니다.

진리를 수호하며 전하게 하시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높이며, 늘 진실하고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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