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욥기 강해 14] 세상에서 고난의 원인의 답을 얻지 못하거든
운영자 2023-01-11 추천 0 댓글 0 조회 272
[성경본문] 욥기13:20-28 개역개정

20.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21.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

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25.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26.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27.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28.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세상에서 고난의 원인의 답을 얻지 못하거든

 

욥은 그 어려운 때, 그에게 위로하고자 찾아온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그리고 나아만 사람 소발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만 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13장에는 전장 12장에서 시작되었던 소발에 대한 욥의 항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난이 왜 닥쳐오는가에 대한 친구들의 견해는 전통과 경험에 근거한 인과응보의 논리에 근거한 것이었어요. “까닭 없는 고난이 있겠느냐? 뭔가를 잘못했으니 그 결과로 고통과 고난이 닥쳐온 것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뒤 돌아 보아 범한 죄를 찾고 하나님 아버지께 회개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그처럼 자녀를 다 잃고, 재산을 다 잃고, 거기에다 견디기 힘든 육신의 질병까지 얻을 만한 큰 죄를 범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당대에 존경받는 의인이었어요. 이웃을 향하여 선한 일을 행하고, 어려운 자들을 물질로 돕고, 억울한 자를 위하여 송사하는 일로도 도와주었던 자타가 공인하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 같는 시련이 왜 왔는가? 그것이 욥의 실존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도 인정하는 인간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장성하고 신앙에 철이 들었을 때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날에, 어떤 죄를 범했을지 모르겠다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로마서 323절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함께 26절 말씀 찾아가 읽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13:26)

 

지금은 전혀 아닌데, 과거 철없던 시절에 행한 어떤 경미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를 심판하시나 보다!” 욥의 고백이에요. 그러나 철든 이후 평생을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게 선하게 산 자신에 그렇게 가혹하게 벌을 주실 하나님은 아니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에요.

 

자신의 고통과 고난을 위로하기 보다는 인과응보의 칼날을 들이대며 회개하라는 친구들의 말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진 욥은 외롭습니다. 괴롭습니다. 세상 어디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욥이 취한 행동은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가 고난의 때에 배워야 할 영적 자세요, 영적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함께 131절과 2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13:1~3) 무슨 뜻이겠어요. 내가 친구들로부터도 위로를 받지 못하는구나! 그러면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내가 하나님께 여쭈리라. 하나님께 하소연하리라

 

그렇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이르렀을 때, 세상이 위로해주지 못할 때 많습니다. 믿었던 사람도 속단하여 판단하고 비난하고 멀리하기까지 하려 합니다. 왜 그렇겠어요? 첫째는, “괜히 나서서 위로하려다 나를 의지하면 어쩌지?” 둘째, “뭔가 죄를 지었기에 저래! 벌을 받는 거야! 그 곁에 있어서 내게 무엇이 유익하겠어~!” 셋째, “내 버려두어야 정신 차릴거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돕다가는 깨닫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니 내가 상관 말아야 해!” 그럴 듯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이 정죄한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말씀하셨어요. 그 여인을 살리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때 양심에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먼저 돌을 내려놓고 제 갈 길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떠났어요. 그때 두려워하고, 후회하며 흐느끼는 여인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다 떠났다. 너를 정죄한 자가 없구나! 나도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참고:8:4~11)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고통받는 자들을 체휼하려 하지 않아요. 그 보다는 전통과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하여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고 정죄합니다. 그럴 때 참 세상이 싫고, 친구에게 실망하고, 고난받은 자의 심경은 더욱 비참해집니다. 오늘 욥의 심경이에요. 그럴 때 그가 어떻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 나의 영혼의 창조주가 되시고, 이 땅에 생명으로 보내신 하나님, 내 인생의 주가 되신 하나님, 내 의지할 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사역할 때, 산속에 있는 부족선교를 위해 같이 동역하던 선교사님 계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다리가 아프다고 그러고 눈이 침침해졌다고 그러고 우기철이 오기 전에 예배당을 완공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여러 번 얘기했어요. 병원에 가보시라고 말씀드렸고 치유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뭐 큰병 아니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병은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 증세였습니다. 급격하게 몸이 안좋아졌습니다. 시력은 희미해졌고, 기력은 떨어졌으며, 눈과 얼굴은 황달현상으로 노랗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후송되었습니다. 간과 신장이 망가졌고, 눈은 망막에 이미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눈이 제일 시급했어요. 수술을 하면 50%, 50%입니다라고 의사선생님이 얘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보기를 원하여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눈을 감은 붕대를 풀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던 것 조차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그 마음이 놀라고, 힘들고 아프고 힘들었을까요?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망가진 장기들로 인해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주치의는 선언했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간도 신장도 너무 망가졌습니다.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포기했어요. 그러니 사형언도를 받은 바와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아직 나이가 40이 안되었습니다. 자녀로 초등학생 아들이 둘입니다.

 

그때 30대 중반의 저와 아내는 그 일로 인해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나님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너무 가혹하시지 않습니까? 선교사님은 사명감당하다가 그렇다손치더라도 아직 어린 아이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그 선교사님 사모님이 가까운 저희에게 부탁을 하는거에요. “이제 다시는 필리핀 사역지로 돌아 갈 수 없으니 집안의 가재도구를 다 팔아서 이 어려운 상황에 조금이라도 물질적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아내가 그 집안의 가구와 집기들 물건들을 이웃 사람들에게 팔 때 마음에는 계속 눈물이 흘렀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선교를 감당했는데 도대체 하나님 왜 그러세요?” “이러시려면 저 사역 안합니다.” 제가 사역을 감당할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두 달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영적인 Depression, 동료선교사의 그 모습에 제 마음에는 좌절감, 우울감이 떠나지 않고 사역에 대한 열정은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졌습니다.

선교사님 내외는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사도 포기했는데 세상에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하나님 밖에 없어요. 오늘 욥의 마음이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제가 선교사님 돌아가시기 전에 뵈려고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계신 태백기도원에 찾아갔어요. 가서 뵈니 반가움보다는 그 뼈에 가죽을 입혀놓은 듯한 앙상하고 초췌한 그 모습에 눈물부터 쏟아졌습니다. 배만 복수로 차올라서 남산만 했습니다. 우는 저에게 그가 말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함께 사역하다가 제가 실수로라도 잘못했던 일들이 있으면 용서 해 주세요.” “무슨 용서할 것이 있습니까? 늘 잘해 주셨는데.....!”

 

그 죽음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는 모습에 저도 포기했습니다. 이별을 하고 떠나야 하는 저에게 그가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저도 그것이 마지막이라 생각했어요. 그때 저는 30대 중반의 여전히 젊고 영적으로 미숙했던 때라,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헤아릴 영적 분별력이 부족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처럼 죽음을 준비하던 그를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간기능의 회복이 시작되었고, 얼굴에는 다시 생기가 돌아왔습니다. 신장은 투석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온 몸의 기능이 빠르게 회복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지요. 입맛도 돌아오고, 그가 몰라볼 정도로 건강해졌을 때, 그의 집으로 방문한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시각장애인의 나라에 선교사로 파송 받았습니다. 이번에 그 라이센스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모님과 더불어 선교사님은 소외당하고 삶이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화 사역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그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했습니다. 정말 선교사역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숫자가 점점 늘어서 집안이 좁았습니다. 그러므로 가까운 곳에 있는 한 교회가 시각장애인 사역을 마음껏 이루어갈 수 있도록 교회의 공간을 제공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통화로 시작된 사역은 전국의 수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전해졌고, 그가 전하는 복음으로, 위로와 권면으로 많은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소망 중에 살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15년 사역을 감당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현재 사모님은 여전히 시각장애인 사역으로 분주하시고, 그의 두 아들은 그 어려운 고난의 때를 잘 극복하고,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 뜻을 이어, 큰 아들은 해외 선교사로 동생은 국내 목회자가 되어, 형을 지원하며 오늘도 열심히 주의 나라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 곁에서 고난을 당할 때, 나의 경험과 전통에 얽매여 선입견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기 전에, 격려하고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그 상황가운데 역사하시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믿으며, 잠잠히 주를 바라보며 소망과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욥기 강해 15] 인생의 허무에서 믿음과 소망으로 운영자 2023.01.12 0 250
다음글 [신년축복특새 06] 가지로 붙어 있으려면 운영자 2023.01.07 1 248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34
  • Total201,523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