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가복음1:32-39 개역개정
-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의 새벽기도
우리 하나님은 처음 것을 귀히 여기십니다. 첫 열매가 그렇고, 첫 태생이 그러하며, 하루의 처음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새벽 시간이 또한 그렇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라고 명하셨고,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또한, 첫아들을 축복의 통로로 세우셨어요. 장자권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에, “내가 너를 도우리라”(시편46:5)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첫 열매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고, 첫 태생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으니, 하루의 첫 시간인 이 새벽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새벽시간은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직 사람이 일을 시작하기 전이에요. 모두가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일하십니까?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합니다. “새벽을 깨우는 자들을 위해 일하시는 시간이다.”
이 사실을 잘 안 다윗은 시편 57편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로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7∼8절)
왜 새벽인가? 다윗은 시편 119편 148절에 고백했어요.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녁에 눈을 떴나이다”(시119:148) 무슨 말씀이겠어요? 새벽에 이슬같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주의 말씀, 영혼의 양식인 ‘만나’를 얻기 위하여, 새벽에 일어나 주를 뵙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이요, 새벽을 깨우는 자는, 특별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왜냐하면 새벽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이요, 새벽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홍해가 갈라졌던 시간이 바로 새벽이라고 했습니다. 새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큰바람을 일으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의 기적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새벽에 시내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새벽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야곱은 새벽에 하나님과 씨름하여 ‘야곱’이라는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인생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이에요. 새벽에 그의 인생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도 새벽 시간이었음을 우리가 압니다. 새벽 그 첫 시간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새벽을 깨우고 향유를 준비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는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첫 사람이 됩니다.
성경은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 예수님을 ‘새벽별’로 표현합니다. 들어 보십시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계22:16)
예수님은 자신을 광명한 ‘새벽 별’ 이라고 말씀하세요. 이 말씀의 뜻은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이라야 주님을 볼 수 있음을 암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하기를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사건도 분명 새벽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새벽을 깨우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인류가 전기문명이 시작되고부터 사람들은 밤 12시가 되어도 잠들 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새벽을 양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말씀 마가복음 1장을 통해 바쁘신 예수님, 사역으로 인해 엄청나게 바쁘신 예수님의 하루를 봅니다. 먼저는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막1:21) 다음에는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막1:22-26) 그 후에는 베드로의 장모가 병들어 누워 있는 집을 방문하여 그를 치유해 주셨습니다.(막1:29-31) 그렇게 하는 중에 저녁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어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고단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성경은 1장 32절에 말씀합니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라고 했어요. 그 때에 어떤 일이 더 남아 있었습니까? 각색 병든 자들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지 33절에 보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고 말씀합니다.(막1:33) 언제 이날 예수님의 사역이 끝이 났을지 기록은 없지만 밤이 맞도록 고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입니다. 35절 말씀이 새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35절 말씀을 다같이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새벽은 사람의 시간이 아니요, 사탄의 시간도 아닙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만나야만 승리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영적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 뛰어난 영적인 인물들은 새벽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많이 들어 본 종교개혁의 기수, 마르틴 루터, 탁월한 신학자 존 칼빈, 전도의 거장, 죤 웨슬리, 또한 중국에서 “믿음선교”의 주창자인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그러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참으로 능력 있는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받기를 원한다면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잘하신 것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벽에는 마귀도 잠자는 시간이다.” 왜 그렇겠습니까?
밤에 이루어지는 향락문화는 밤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즐기자 난리를 치고 시끄럽지만, 세상 어느 곳이라도 새벽에는 죽음 같이 적막합니다. 새벽을 저들의 시간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하루의 첫 시간, 거룩한 시간,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공격하는 마귀를 공격하는 가장 효과적인 시간이 언제가 되겠습니까? 새벽 시간이죠. 그러므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새벽 두 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지는 생활을 한다.”
성도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새벽에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새벽에 기도하면 꿈이 이루어진다.” 통계적으로 나와 있어요. 밤늦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은 주로 감성적이고, 비관적이며, 불안한 모습이 많은 반면에,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은 이성적이고, 적극적이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새벽을 기도로 호흡하며, 상쾌하게 출발하는 자는 벌써 성공을 예약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네팔에 도착을 한 저는 바로 새벽기도회 할 현지인 교회를 찾았습니다. 찾기가 어려웠어요. 신기한 것은 경건한 라마불교신도들은 새벽 5시면 영락없이 일어나 손으로 흔드는 작은 종을 치며 기도를 합니다. 그 소리에 놀라서 제가 깨곤 했어요. 힌두교도인들은 6시면 집 앞에 있는 작은 사원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며 정성을 드립니다. 그런데 정작 기독교인들만 새벽에 꿀잠을 자는 거에요.
매달 한 번씩 모여 함께 기도하던 인도에서 오신 선교사 중에 한 분이 저에게 말하기를 그렇다면 자신의 교회에 와서 새벽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했죠. 저는 그 선교사님이 함께 기도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게 예배당 열쇠를 주고 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래도 감사했어요. 그러므로 새벽이면 일어나 오토바이를 타고 그 추운 바람을 가르고 그 교회 예배당에서 기도를 혼자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교회에 머지않아 새벽기도회가 시작되게 하시고, 네팔 전교회로 퍼져나가게 하옵소서! 그러기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이 인도선교사님이 새벽에 함께 기도하게 해 주세요!”
한 달인가 지나고 나서, 그날도 저 혼자 기도를 하고 예배당에서 나오는데, 그 선교사님이 저를 보자고 해요.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어요. “함께 기도하자고 그러나?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려나?” 그런데 그의 말은 그게 아니었어요. 저를 너무 실망시켰습니다.
“기도 할 때 너무 큰소리로 하면 안되겠습니다. 옆집에서 새벽에 잠을 잘 수 없다고 컴플레인을 해서, 계속 그러면 우리교회를 경찰에 고발을 하겠다고 해요.” 아~!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다음 날 그 예배당에서 혼자 기도하는데 소리도 조용조용하게 하다 보니, 기도 줄이 안 잡히고, 맥이 없어요. 힘이 없어요. 졸려요. 그래서 “이러려면 집에서 혼자 기도하지!” 생각도 하다가...., 알게 된 정보가 있었는데, 아샤교회라고 하는 한 현지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반가웠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새벽에 그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들어가보니 정말 새벽기도회를 하는거에요. 담임목사님과 교회직원들 한 다섯명이 같이 교회 예배당은 추우니가 사무실에서 석유난로를 피워놓고 함께 기도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네팔 현지교회에서도 새벽기도회를 하는 교회가 있구나!” 감격이 되고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 교회 목사님은 한국의 아세아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공부를 했어요. 그러므로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교회의 전통인 새벽기도회를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것이었어요. 배운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함께 새벽으로 기도하는 중에 몇날이 못되어 성령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시니, “연정아!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이들과 사역을 시작하라!” 새벽마다 기도할 적마다 하나님께서 시그널을 주시는 거에요. 그러므로 결국 그 목사님과 부교역자들 성도들과 함께, 바로 그 교회 예배당에서 리빙스톤 유치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간에는 야간신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새벽기도하던 목사님은 리빙스톤학교의 초대교장이요, 신학교의 초대학장이 되었습니다. 직원 중에 두 사람은 신학교 교수가 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55명으로 시작한 작은 유치원이 8년이 되자 55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또한 신학교도 주간으로 발전하고 기숙사제도의 학교로 현재는 7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종에게, 선교지에서 새벽기도의 응답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더니, 이제는 고국교회로 부르셔서 역사하십니다. 지난 5년간의 시간에도 기도하는 중에 기적과 같은 일들을 이루어오고 계십니다. 질병이 치유함을 받고, 자녀들의 입학과 취업이 이루어지며, 잉태와 출산과 여러 다양한 문제들이 해결함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쁘고 감사한 것은 교회가 안정되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교우 모두가 함께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새벽기도! 오늘 성경본문은 이 새벽기도가 마쳐지자마자 바빠지는 주님의 하루의 스케쥴을 볼수 있습니다.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39절에 보니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온 갈리리에 다시시면서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을 내쫓으시더라”(막1:39)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새벽을 깨우시고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과 함께 간절히 기도하시고 출발하는 이 한 날의 여정이 놀라운 축복의 역사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문제가 해결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여러분에게는 감사와 기쁨과 보람이요, 여러 이웃들에게 등경위의 등불로 빛을 발하는 여러분이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