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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03]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證據(증거)
운영자 2022-03-09 추천 0 댓글 0 조회 646
[성경본문] 갈라디아서2:11-21 개역개정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證據(증거)

 

과거에 제가 자랄 때의 예배당은 마루로 만들어진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당 안에 들어오면 으레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 후에 가부좌의 자세로 고쳐 앉아서 말씀을 들었고, 말씀을 마치고, 기도를 할 때면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니 가장 겸손한 자세는 무릎을 꿇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문화 속에 전통이 된 것이니 어른 앞에서 세배를 할 때에나, 어른이 조언을 줄때에는 무릎을 꿇고 겸손한 자세로 경청하는 것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예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장의자이든 개인의자이든 의자에 앉지, 마루에 앉아 예배드리는 교회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일도 없어졌어요. 그런데 만일, 한 경건한 장로님이 타임머쉰을 타고 50년 전에서 지금 시대로 날아와 지금의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말할까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데, 교만하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있느냐?” 하면서 장의자를 치우고 마루로 바꾸자고 한다면 이를 수용하고 행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무릎을 꿇고 안 꿇고는 구원하고 상관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이 장로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예의도 없는 교만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어떻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기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날, 안디옥에서 사도바울은 사도베드로와 함께 또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안디옥에 멀리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가 보낸 형제들이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순간 사도베드로가 당황했습니다. 그들이 당도하기 전에 식사하던 그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이유는 야고보가 보낸 예루살렘에서 온 자들에게 자신이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식사를 하던 그 이방인들은 개종하여 기독교인이 되었으나,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 기독교인들처럼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이면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할례를 받았으며, 또한 그들의 전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과는 한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은 조상들이 지켜온 전통을 깨는 모습이며, 함께 식사를 하면 자신들의 거룩함이, 함께 자리한 이방인들에 의해 오염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베드로의 모습을 본 안디옥에 사는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초대교회 지도자인 바나바도 베드로의 행동대로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도바울은 과거 자신이 참여했었던 예루살렘에서 총회를 통해 결의했던 내용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들 앞에서 이방인 전도에 대해 보고하기를 복음을 전할 때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예수를 믿게 되었고, 세례를 베풀 때에 위로부터 성령이 임하였으니, 할례를 받지 않아도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청원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 총회에서는 할례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모든 교회 지도자들이 결의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자가 바로 사도 베드로였습니다.

 

그가 그 문제로 일어나서 강조하여 말씀하기를,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15:7~11)

하여,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일에 멍에와 같은 할례받는 일은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보수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온다고 하니, 그들 앞에서 자신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얼른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서, 사도바울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사도베드로의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2:14)

 

이 말씀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라고 했는데 게바바로 베드로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바위라는 뜻을 가진 헬라식 단어이고, 게바는 같은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이방인들이 율법대로 할례 받지 않았다고 해서 차별대우 하는 것인가?” 왜 이방인들을 하등한 신앙인으로 취급하느냐? 똑같이 구원받은 자들 아닌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 됨을 부인하는가?” 그런 뜻으로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다시금 이신칭의라 하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 다시금 확실히 천명합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2:16)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을 얻는다는 것일까요? 20절 말씀으로 알 수 있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구원받음에 있어서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해 죽을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 자신을 버리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라는 것을 진리로 믿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나의 모든 죄도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죄 때문에, 그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물로 죽으셨기 때문에, 내 죄도 용서함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셋째,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니, 내 생명, 내 삶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매 순간마다, 내 영혼의 주인되신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도입니다. 그 모든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때문에 구원이 임하였음을 내가 믿음으로 받을 때에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에 있어서 선한행위는 무엇입니까? 대충 살아도 되는가? 구원전선 이상이 없는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것이 선행입니다.(2:10참조)

구원받은 자는 그 심령에 예수님이 주인되시니, 죄를 범하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요. 죽은 양심이 이제는 선한양심이 되었으니, 그런 죄된 행위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할까 말까 마음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죄는 그 마음에 얼씬도 못합니다.

어림도 없지! 그건 아니지!” 바로 결정하고 결심하여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나아가서 그 심령에 예수님이 주인되시니, 선한 일을 행하면 그 심령이 너무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도, 말씀을 들을 때에도 마찬가지에요. 선한 일을 할 때에도 심령이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사는 모습이 달라요. 구원받은 자는 주인되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으로 늘 충일합니다. 이 모습을 가리켜 오늘 본문에 말씀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x2)

 

그런데 목사님, 저는 때때로 넘어지고 깨지고 그럽니다. 그건 뭔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어요. 구원받은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니라.”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너희를 사랑하는 나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하므로 날마다 聖化(성화)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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