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무엘하24:1-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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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
2.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3.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4.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사령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물러나
5.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오른쪽 곧 야셀 맞은쪽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6.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
7.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쪽으로 나와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8. 그들 무리가 국내를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가 대표자입니다. 나를 치소서!
오늘로서 우리는 사무엘하 성경을 마칩니다. 함께 해 주신 성도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말씀하고 있으니, 함께 묵상한 매일 새벽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귀한 영적양식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신약성경으로 돌아가서 바울서신 중의 한 책인 갈라디아서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사무엘하 24장은 이스라엘의 범죄와 전염병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대표자 된 다윗의 철저한 회개와 이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용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배우는 영적교훈이 있으니, 대표자이기 때문에....., 한 나라의 왕으로서, 대통령으로서, 단체의 장으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교회에서는 주의 종으로서, 중직자로서, 구역장으로서, 가져야 할 대표자로서의 책임의식에 관한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인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취했는가를 보면서 우리는 영적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큰 잘못을 했습니다. 그 잘못이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국가 최고 권력자인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반역을 일으켰을 때에, 사무엘하 15장 12절에 말씀합니다. “압살롬에게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졌다” 그리고 압살롬의 난을 평정한 이후에 연이어 일어난 세바의 반역 때에도 “유다를 제외한 온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세바를 따랐다”라고 사무엘하 20장 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을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아직 왕의 자리에서 내려갈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권력에 야심을 갖고 있던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이어 세바가 반역하였습니다. 그럴 때에 백성들은 다윗을 따라야 했어요. 그런데 그러지 아니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어떻게 시작되고 있습니까? 24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삼하24:1) 무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는데 다윗의 마음을 격동시켜서 인구조사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질문이 갖게 됩니다. 첫째, 인구조사가 왜 잘못된 것입니까?
다윗의 인구조사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이 몇 명인가를 알아보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에서 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누구에게 시키는가? 2절에 보니 군사령관 요압장군에게 시킵니다. 다윗의 의도는 군사가 얼마나 되느냐? 전쟁을 치룰 때에 자신의 편에 서서 싸울 수 있는 군사가 얼마나 되는가? 그것을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압이 와서 보고하는 내용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8절과 9절을 읽겠습니다. “그들 무리가 국내를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삼하24:8~9)
칼을 빼는 담대한 자라고 했어요. 전투에 임할 수 있는 병사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지파에 오십만명, 그리고 나머지 열한지파에 팔십만명, 합하여 1백 30만명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굉장하지요?
현재 대한민국의 국방력이 세계 6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병력을 보면 2021년 기준 현역이 53만명입니다. 다윗이 그 1백30만의 병력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를 파악하고 나서야, “아차~! 큰일 났구나! 내가 잘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잘못은 전쟁의 군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어야 했는데....., 마치 자신이 국방의 군주인 것처럼,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3절에 그 인원조사를 반대하는 요압장군의 말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삼하24:3) 요압은 그런 다윗 왕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데 왜 그러십니까?” 반대하는 요압입니다. 요압이 이 때에는 직언을 하는 충성된 신하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강행하였습니다.
둘째, 의문은, 잘못은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했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면 되는데, 왜 다윗을 통해 징계의 수순을 밟으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1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대표자이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나게 된 근본 이유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다윗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나라에 반역이 일어나고 국가적으로 환난에 휩싸이게 된 그 일에서 통수권자인 다윗이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징계의 방편 세 가지를 제시하십니다. 선지자 갓을 보내어 다윗에게 제시하는 세 가지 징계의 모습이 13절에 기록되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삼하24:13)
이 때에 다윗의 선택은 14절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고 대답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자신이 선택할 것이 아니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다는 다윗의 자세였습니다.
제 아들이 중학교 때로 기억합니다. 거짓말을 했어요. 제가 다른 것은 다 참고 용서해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엎드려뻗쳐!” 제가 창고에서 거기에 있는 각목 몽둥이를 들었습니다. 엄마는 알지 못해요. 알았으면 말렸겠지요. “너, 네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에니?” 아들이 울면서 말해요. “잉잉~! 네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러면 몇 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제가 초이스를 주었어요. “한 대? 두 대? 아니면, 세대?” 아들이 잠깐 생각하더니 답하기를 “잉잉~! 한대요.” ! 그 때에 제가 더 화가 났어요. 그 때에 만일, “세대요.” 또는 오늘 다윗처럼, “아빠, 마음대로 때리세요.” 그렇게 말했다면, “그래, 됐다.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라” 이랬을 것 같은데, “한대요.”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화가 나서는, 한 대를 때리기는 했는데, 있는 힘을 다해서 때렸어요.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 사건 이후로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해 갔습니다.
징계의 목적이 그런 것이겠지요.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삼하24:15)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십니다. 그리고 다윗도 통곡을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16절에 보니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중략)”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어떠합니까? “차라리 나를 치소서!”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는 다윗입니다. 1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삼하24:17)
그 모습을 보는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세요.” 이 번제는 죄의 회개요, 화목제는 위로부터 내리시는 용서의 은혜를 바라는 제사입니다. 그 결과가 사무엘하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절, 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삼하24:25)
코로나가 이제 마지막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여전히 병상에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재난에서 누가 제일 먼저 하늘을 향해 용서를 빌어야 하겠습니까? 나라의 대표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면 누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하겠습니까? 대표자이니 담임목사 아니겠습니까? 사업장에 어려움을 겪으면 누가 제일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해야 하겠습니까? 사업주입니다. 그리고 가정에 예기치 않은 일어나서 가족 모두가 힘들면 누가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해야 하겠습니까? 가장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성군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으니, 때로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주시는 징계 앞에 그는 주저하지 아니했습니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늘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를 치소서~!” 이 새벽에 우리의 가슴에 담아야 할 영적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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