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신명기 강해 34] 常識的(상식적)인 계명 IV
운영자 2021-11-02 추천 0 댓글 0 조회 553
[성경본문] 신명기25:1-4 개역개정

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2.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4.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常識的(상식적)인 계명 IV

 

우리가 매일 새벽 묵상하고 있는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 여리고 땅, 맞은편 모압 평지에 도착했을 때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말씀의 주 내용이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제 너희가 들어가서 정착할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유목문화가 아니다. 농경문화의 땅이다. 또한 그 땅에 사는 가나안 족속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니,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즉 언약과 계명을 꼭 지켜 행해야 하는 것이니라.” 하는 것이에요.

 

신명기라는 이름의 뜻은 다시 명하는 말씀이란 뜻을 갖고 있어요. 그러면 처음에 주셨던 말씀은 어떤 말씀이었을까요? 시내산에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약속의 땅으로 가고자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첫 번째 말씀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먼저 십계명을 주셨어요. 이어 십계명에 근거한 여러 세부적인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때로부터 광야생활 40년이 흐르는 동안, 출애굽을 한 어른 세대는 다 죽었습니다.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어요. 출애굽 당시, 20세 이하의 젊고 어린 세대가 성장하여, 그 세대가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 신세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정착하여 살아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 40년 전에 주셨던 그 말씀으로, 다시금 알려 주는 내용이 바로 오늘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신명기입니다.

 

그래서 신명기를 읽으면, 출애굽기에서 읽었던 내용이 다시금 반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웁니까? 반복입니다. 왜 반복하겠습니까? 잊지 말도록! 가슴 판에 새겨지도록!

 

여러분,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반복교육이에요. “한번 들었으면 됐다!” 아니오. 시간이 가면 천재라도 잊어버립니다. 그러기에 자주 반복해서 듣고 또 듣고, 또한 같은 내용으로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그렇게 공부하는 중에, 말씀이 가슴에 새겨지고, 기억이 되고, 상황, 상황이 부딪혀 올 때에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니, 실천으로 행하게 되는 것이니 복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우리 산돌의 성도들은 말씀교육이 잘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니, 이 혼탁한 세상, 불확실한 세상, 변해가는 세상풍조의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으로 견고히 서서, 오히려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승리로운 인생,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대하는 25장의 말씀에는 먼저 재판과 형벌에 관한 계명을 주십니다. 그 내용이 정식 재판을 통해서 만이 유죄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처벌 종류를 결정할 수 있다하는 내용입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입었을 때에 그 자리에서 보복을 하거나, 또 그러다가 거꾸로 더 당할 수도 있을 어떤 상황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재판정의 심판을 통해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제도에요. 오늘날에는 상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치국가의 재판제도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선교사역을 할 때에 교통사고, 접촉사고 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고 받으면, 차는 멈추고, 양쪽 운전자가 차에서 나오지요. 그 상황에서 우리나라 같으면 누가 이깁니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겨요.^^!

그 때가 1990년대 초였으니 제가 한국에서 여러 번 봤습니다. 큰 소리에 기죽으면 지는 거에요.

 

그런데 필리핀에서 모습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양쪽 운전자가 서로 말이 없습니다. 절대 다투지 않아요. 왜 그렇겠습니까? 첫째, 누구든지 실수 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거지요. 둘째, 누가 잘 못했는지는 다투어서 해결 될 일이 아니라 교통경찰이 판단할 것이라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다리는 거에요.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요. 그 때만 하더라도 모바일 폰이 없었거든요. 공중전화박스 찾아야 하지요. 그러니 앞뒤로 차들이 가지 못하고 마냥 기다려야 합니다. 모발일 폰이 나온 뒤로는 전화하지요. 경찰서로, 보험회사로. 그리고 기다립니다. 뒤에 차가 밀려있어도 차를 옮겨놓지 않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기다려 줍니다.

 

왜 그렇게 하겠어요. 현장을 그대로 유지하게 해서, 경찰이 와서 보고 상황파악하고 사진 찍고 나서야 차를 움직입니다. 제대로 잘잘못을 판단하게 하기 위함이지요. 굉장히 합리적이지요? 필리핀이 일찍이 미국의 식민통치를 40년이나 받았거든요. 그 모습이 전통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렇게 변했습니다. 목소리 크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안되겠지요.

 

오늘 말씀에 보니 잘못한 사람에게 태형이라는 형벌이 있습니다. 죄의 경중에 따라 매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 40대 이상은 때리지 마라. 왜 그러하겠습니까? 그 이상 때려보니 죽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이 율법에 따라 형벌을 가할 때에, 혹시 숫자를 잘못 세어 40대를 넘게 때릴 수 있을까 하여 40에 하나 감한 태형을 가장 큰 태형으로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하다 맞은 매도 바로 이 39대의 태형이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1124절에 고백을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무슨 죄가 있었겠습니까? 전도하다가 그렇게 어려움을 당한 것입니다.

 

40대일까요?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우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죄인이라도 그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생명을 죄로 인하여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의도적인 살인자와 같은 죄인은 일전에 신명기 19장에서 본 대로 당한대로 갚는다고 하는 동태복수법에 근거하여 사형하게 했습니다만, 그 밖의 죄에 대해서는 생명까지 빼앗지는 않았으니 형벌할 때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생명존중사상이지요. 우리도, 우리 사회도 이러한 율법의 정신을 잘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일하는 자에게 응당한 댓가를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노동력을 갈취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비유로 말씀하고 있어요.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25:4)

 

유대인들의 타작 방법은 추수를 한 다음 곡물을 햇볕에 잘 말리고, 그 곡물 위로, 널판지에 구멍을 많이 뚫고, 그 곳에 날카로운 돌이나 쇠붙이를 박은 후, 그것을 소나 나귀에게 끌고 다니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면 곡물의 껍질이 벗겨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일을 할 때에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고, 일하는 소가 일하면서, 먹을 만큼 먹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모습이 제 각기 다릅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먹어요. 역시 낙천적인 사람들입니다. 먼저 든든히 먹고 나서 일을 해요. 네팔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같은데 일을 하고 나서 먹습니다. 수고하고 땀을 흘렸으니 댓가로 먹는 것입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사역하다가 네팔에서 와서 그 모습을 적용하니까 네팔 사람들은 어색한 거죠. 왜 일하기 전에 먼저 먹냐고요.^^! 분명한 것은 일을 시키면서 일하는 자를 배고프게 하면 안된다.” 그 정신 아니겠습니까?

 

제가 선교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면서 제 아들을 불러 자주 교훈을 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행복하게 일하도록, 특별히 막노동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먹을 것을 잘 챙겨주어라 얼마나 잘 마음에 새겨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선교지는 대부분이 가난한 나라이니, 인건비가 얼마 되지도 않는데...., 현지인이 기독교인이라는 사람의 일을 할 때에, 시키는 자는 믿지 않는 사람과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질을 넉넉히 주지 못하면, 복지라도 챙겨주고, 일이 많지 않아 박봉의 직업이라면, 휴일이라도 더 챙겨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네팔 선교지의 리빙스톤 학교나 신학교의 직원들에게 이 원리를 적용하고자, 아직 네팔학교에 의료보험이 없을 때에, 학교 교직원들 모두에게 의료보험을 들어주었습니다. 또한 년차 휴가제도를 시작했어요. 만일 쓰지 않았으면 년말 정산을 통해 그 부분에 대하여 지급하였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기간에는 감염되지 말라고 면역성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교직원들에게 비타민제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의료보험은 교직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웬만한 병은 병원에 가지고 않지만 큰 병으로 병원에 갈 때에 재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어요. 특별히 코로나 기간에 감염 의심이 되는데 병원에 가지 못하는 네팔 상황에서 여러 교직원들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니 혜택을 입었습니다.

 

저와 아내의 생각은 늘 그랬습니다. “일반 학교 교사의 평균 봉급보다는 더 많이 주자 그래서 행복감을 갖고 일하게 하자.” 그렇게 실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지 않은 문제가 생겼어요. 어떤 교사는 실력은 없는데, 이제는 우리 학교 그만 두고 다른 학교로 갔으면 좋겠는데....., 정작 본인은 학교를 떠날 생각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육시키는 것이지요. 전문기관을 통해 또는 유수한 학교에서 재교육을 받게 합니다.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없지요. 권고사직입니다. 학생들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신명기 254절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응분의 대가로 비유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517절과 18절에 말씀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말씀대로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성도들에게 배나 존경받으실 분이 되시기를 저는 간절히 축복합니다. 또한 말씀과 가르치는 일로 수고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누구겠어요? 교역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하되 뭐라고 했습니까?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수 있도록 교회는 늘 그 필요를 찬찬히 살피고, 물질로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이와 같은 복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서는 일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귀한 역할을 감당하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신명기 강해 35] 주의 백성들 모두를 위한 십일조 운영자 2021.11.03 0 669
다음글 [11월 월초] 추수하게 하소서 운영자 2021.11.01 0 553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77
  • Total202,240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