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신명기5:4-1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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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5.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6.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1계명과 제2계명
지난 시간에는 십계명이 왜 필요했는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저는 ‘행복지침’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많이 사랑하시기에 십계명을 주셨고, 또한 그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십계명을 잘 지키시므로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제일 먼저 주신 첫째 계명은 오직 여호와 한분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렇게 십계명에 하나님 유일신앙을 제일 첫째 자리에 놓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이 넘도록 애굽 땅에서 거하는 동안 그들은 애굽의 많은 신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인들이 섬기는 신들과 그 종교예식, 명절, 축제에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우상숭배에 알게 모르게 젖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라’ 라고 하는 신이 있었으니 하늘의 태양입니다. 이 태양신은 애굽 백성들이 믿는 최고의 신으로 혼돈의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신의 모습은 태양 원반을 머리에 이은 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태양신이 침을 뱉어 신을 창조하고, 눈물을 흘려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혼돈의 바다는 누가 만들었으며, 또 태양은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최고의 신도 태양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일장기에는 태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게브’ 라고 불리는 대지의 신이 있었고, ‘누트’라고 하는 하늘의 여신이 있었습니다. ‘슈’ 라고 하는 공기의 신이 있었고, 가끔 이 신이 팔이 아파서 팔을 구부리게 되면 별이 잘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비와 이슬비의 여신 ‘테프누트’가 있는데, 이 신이 눈물을 흘리면 그게 땅에서는 비로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피조물들이 그들의 신적존재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원시종교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피조물들을 신적존재로 여겨 숭배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참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반면에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의 진리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온 우주 만물의 창조에 대해 언급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정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 이 모든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과 이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에 대해 확실히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경의 말씀을 진리로 믿는 자들이 복된 자인 것이에요.
애굽에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다신교의 환경에 살아가면서 여호와 하나님도 그 여러 신들 중에 한 분이려니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 자신들이 어떤 일로 간청하여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으레 다른 신에게 복을 기원했습니다. “대지에 비를 뿌려 주세요. 그래서 밭에 채소가 잘 자라게 해 주세요.” 이렇게 여러 신을 동시에 함께 섬기는 모습은 신학적 용어로 syncretism, 즉, 혼합주의라고 하는데,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혼합주의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일전에 간증으로 나누었습니다. 네팔에 운영하던 학교 가까이 자동차 정비업소가 있었는데, 학교버스를 자주 고치게 되니 사장님이 제 친구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어요. 어느 날 그가 아침에 저를 부르기에 그가 인도하는 대로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벽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섬기던 신들 사진 맨 마지막에, 어디서 구했는지 예수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자랑스럽게 하는 말이 이제 예수님께도 복을 달라고 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에는 수입이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이게 혼합주의입니다. 복 받기를 원하면 뭐든지 믿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조근 조근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다른 신들은 가짜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른 신들을 함께 믿으면 오히려 재앙이 임하게 된다.”
이 친구가 고민하는 듯, 싶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또 저를 부르는 거에요. 그리고 사무실로 인도하는 거에요. 들어가 보니 벽에 걸려 있었던 다른 신들의 초상화들을 다 치워버렸어요. 하나님께서 참 기뻐하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신학생 중에 한 학생을 그 정비업소에 보내서 그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위한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당시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오랫동안 차량정비업 경험이 있던 한 집사님을 소개하여 친구 되게 했습니다. 잘 통하지요. 같은 차량정비업자니까요. 적극적으로 전도를 하게 되었고, 그 사무실은 예배처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비소 땅을 땅 주인에게 반환하게 될 때에는 자신의 집을 예배처소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사도행전 16장에 빌립보지방에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에 자주옷감 사업가인 루디아가 자신의 집을 예배와 기도처소로 내 놓은 모습처럼 되었습니다. 이 사장형제는 한국에도 다녀갔습니다. 한국의 한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어요. 지금 그의 집에는 여러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참 감사하지요.
여러분, 이 혼합주의가 우리나라라고 없습니까? 왜 없겠어요. 있어요. 예수 믿으면서도 대충 믿는 사람들 중에, 뒤로 몰래 용하다는 점쟁이 찾아가고, 신문을 보면 운수대통,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고, 운이 좋게 나오면 허허허 기분이 좋아 웃고, 로또복권도 사고, 안 좋게 나오면 괜히 아침부터 기분이 찜찜한 사람들이 있어요. 다 혼합주의의 일면들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 당연 끊어야 하지요. 여호와 하나님만을 창조주로, 그리고 예수님만을 구세주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의 근원이 한분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계명을 함께 읽겠습니다. 8절과 9절 중반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상이란 말은 어떤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신처럼 여긴다는 뜻이지요.
제1계명이 제2계명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1계명이 ‘경배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제2계명은 ‘경배의 형식’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경배의 형식의 문제에요.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기는데 자신이 믿는 그 하나님을 형상화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더 확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약속의 징표를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 형체를 보면서 마음에 확신을 더 가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세요.
이 말씀은 우리 하나님은 크고 광대하시고 말로 형용하기도 어렵지만, 더욱이 형상으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요한복음 4장 2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 때문에 어떻게 그려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인간이 상상 속에서 그림으로 또는 형체로 만들게 되면,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우신 속성이 축소되는 것입니다. 그 그림이나 형상의 틀 안에 생각을 가두게 되는 것이에요.
생각해 보십시오. 성모 마리아는 만들 수 있어요. 사람의 모습, 여자, 정결한 여인의 모습, 충분히 상상히 되요. 그래서 그 형상을 만들어요. 그런데 그 형상을 신적인 모습으로 섬기면 이건 큰 잘못입니다.
과거에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일본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난 상에 매료되었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는 자는 잡혀가요. 사형을 당해요. 가지고 있는 이 십자가상의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의 형상,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해요? 신성화 된 것이에요. 그러니 버릴 수는 없지요. 감춰야 해요. 그래서 그들 중에는 부처상 속 안에 이 십자가 예수님 상을 넣고서는 그 앞에서 부처님을 섬기는 것처럼 합장을 하지만 그 속안에 있는 예수님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뭔가 이상하지요? 이 모습은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와는 다른 것입니다. 형상, 그림, 성물, 너무 의미를 많이 부과하다가 기독교의 진리의 본질이 희석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형화된 형체로, 형상으로는, 하나님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베트남 전쟁 중에 불교를 믿는 한 청년이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급하게 도망을 가서 숨은 곳이 성당 안이었습니다. 어두운 성당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눈이 그 어두움에 적응이 되고 보니, 강대상 뒤로 큰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 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보는 그 모습이고 보니 이 청년이 깜짝 놀랐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사람은 십자가에 양손에 못이 박히고 그리고 발에도 못이 박히고 너무나 처참하고 끔찍한 사형수의 모습인 것이에요.
그 때에 불교를 믿는 그 청년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아 이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이냐? 전생에 얼마나 지은 죄가 많기에 이생에서 저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벌을 받고 있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틀 안에서 세상을 보고, 또한 형상을 보고 자기의 기준으로 해석을 합니다.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 여러분, 하나님은 형상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형상으로 축소되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는 말아야 합니다. 어떤 짐승의 모습이나 사람의 모습을 형체로 만들 수 있어요. 예술적 차원에서 말입니다. 그것은 괜챦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신처럼 또는 그것에 어떤 신통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1계명, 하나님만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섬겨야 할 다른 신은 없습니다.
제2계명, 우상을 만들지도 마시고, 섬기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행여나 부적 같은 거 몸에 지니지도 마시고, 물론 이 자리에 그런 분은 한 분도 안 계신 줄 압니다. 이웃들 중에,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잘못된 것임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또한 나아가서 물질이나 어떤 특정 인물에 목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게 다 우상의 모습입니다. 특정 인물에 목매여.... 어떤 자의 모습입니까? 이단의 교주에 목매인 사람들의 모습이지요. 기도의 능력이 있다하여, 특정 사람을 신처럼 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는 너무 비참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주로 믿으시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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