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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 12]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운영자 2021-08-10 추천 0 댓글 0 조회 797
[성경본문] 빌립보서4:10-23 개역개정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오늘로서 우리는 빌립보서를 마칩니다. 4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열한 번에 걸쳐서 묵상해왔어요. 오늘이 마지막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귀한 깨달음과 은혜의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마지막 시간 나누길 원하는 말씀의 제목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백한대로,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세상을 초월한 하늘의 사람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백합니다. 12절이에요.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방인을 위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그로써는 복음 전도의 현장에서 실제로 부에 처하기도 했었고, 빈에 처하기고 했었습니다. 배부름을 경험했으며 또한 배고픔도 경험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사역할 때에는 두란노서원에서 2년이 넘도록 영적스승으로서 존경받으며 가르쳤으며, 병마와 귀신을 물리쳤으니 많은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그는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해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가이사랴에서는 벨릭스 총독의 아내의 초청을 받아 총독과 그의 아내에게도 복음을 전했으며,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열나흘간의 유라굴로 태풍에 생명의 위협을 격고, 가까스로 멜리데 섬에 상륙해서는 그 섬에서 가장 높은 보블리오의 초청을 받아 열병과 이질에 걸려 있는 그의 부친을 안수하여 고쳐주게 되니, 사흘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 섬의 병자들을 고쳐주므로 석달동안 후한 대접을 받고, 배를 타고 출발할 때에는 필요한 모든 쓸 것을 공급받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부에 처해보셨습니까? 또한 빈에 처하신 적도 있었습니까? 어느 성도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업이 부도가 나고 집도 가구도 다 차압을 당하고, 그저 겨우 부부가 용신할 수 있는 작은 방 한 칸으로 옮겨 살게 되고, 빚더미에 올라선 분도 계세요.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시금 일으켜 세우시는 은혜를 주셔서, 회복이 되고, 부에 처하는 복 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 자신을 돌이켜보면 빈에 처할 때는, 필리핀 선교지에서 돈은 필요한데, 돈이 없어서, 제 아내에게 여러 번, 잘 사는 이웃에게서 돈을 빌려오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후에는 그야말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인데, 그 상황을 안 산속에 살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 매일 아침 먹을 것을 가져다 준 적도 있었어요. 우리가 저들을 돕고 살았으니, 받은바 은혜를 갚고자 했던 것이지요. 주로 산 계곡에서 가재를 잡아서 삶아서 양념을 해서 가져다주었는데 받을 때에는 가슴이 뭉클했고, 먹을 때에는 목이 메어 눈물짓곤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살다보면 누구나 다, 인생의 어려운 때를 경험하지요.

그런데 그 어려움 속에서도 주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시금 일으켜 세우십니다. 어려운 때에도 생명이 보존되었기에 감사하며, 하늘 찬송을 부를 수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빈이 아닌 부에 처하게 해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여기에서 自足(자족)이란 단어는 헬라어로는 아우타르케스 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 뜻이 만족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사도 바울은 이 만족이란 말을 서신서에서 세 번 사용하였어요. 그런데 그의 만족은 삶이 평화로운 때에만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존경받는 자로 대접받으며, 부에 처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 빈에 처할 때도 있었어요. 감옥에 갇힌 때도 있었어요. 돌에 맞고, 태장으로 맞아서 거반 죽을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다양한 상황가운데서 그는 만족하는 비결을 체득하였다고 했어요. 그의 영성이 부럽지 않습니까? 이 능력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우리가 오늘 말씀에서 꼭 배워야 할 영적 진리가 있습니다. 그가 말씀하는 자족(만족)이란, 상황이 만족할 만한 상황이 되어서 만족이 아니라, 그 모든 어려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만족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처능력은 어느 한순간 그런 능력을 체득하게 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라고 했어요. 여기에서 배웠노니 라는 단어는 학습되었다라는 말이에요. 시간을 거치고, 여러 번의 어려운 상황이 올 때마다 그 상황을 대처하는 중에 학습되고, 체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웠노니 이 말을 영어로 보면 "I have learned" 라고 했어요. 문법적으로 현재완료형입니다. 어느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경험하고 배워왔다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이러한 능력을 이 시대의 말로, ‘Coping Ability,’ '역경대처능력'이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 역경대처능력이 사도바울의 자족의 Essence, 즉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이 대처능력이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반복되는 역경 속에서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마침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영적 실력자로 키웠다는 결론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역경이 없으면 그 대처능력은 자라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결국 역경 속에서만이, 그 역경을 뚫고 나갈 때에 비로소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그 체험이 많아질 수록, 우리는 하늘로부터 주시는 만족과 여유를 갖게 된 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기업가인 존 세드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러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다.” “A ship in harbor is safe, but this i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역경대처능력에 대해서 인문학의 연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과거에는 성공의 자질로 IQ가 강조되었습니다. 지능지수죠. 머리가 똑똑해야 한다. 이후에 그것만 가지고서는 안된다. 해서 소위 EQ라고 하는, 감성지수가 성공의 자질이다. 공감과 소통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 오늘 우리가 사도바울로부터 배우는 성공의 자질이 있으니 이를, 소위 ‘AQ’(Adversity Quotient) 라고 하는, ‘역경지수라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역경대처능력지수겠죠. 역경지수가 높아야 성공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폴스톨즈 박사는 이 역경대처능력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왔다고 발표했어요. AQ란 압박하는 스트레스에 생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수준을 말합니다. 어떤 역경에도 냉철한 현실인식과 합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끝까지 도전해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을 재는 척도라고 했어요.

 

물병의 물을 보고 '반밖에'를 보는 사람과 '반이나'를 인지하는 사람은 분명 역경에 대처하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폴스톨즈 박사는 어려움에 대응하는 유형을 등반에 비유했어요. 퀴터(Quitter), 캠퍼(Camper), 클라이머(Climber) 세 가지의 모습으로 분류했습니다.

 

'퀴터'는 역경지수가 낮은 이들로 산에 오르다 힘들면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갑니다. 전혀 극복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안 돼 있는 유형이에요. 이 코로나 시대의 모습에 비교해 볼 수 있겠지요. 감염되면 큰일 나!” “가게 문 닫어!” “교회 문 닫어!” “나가면 안 돼! ”일하면 안 돼!” 포기하는 자세입니다.

 

'캠퍼'는 장애물을 만나면 피하거나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오르기를 멈추고 머뭅니다. 적당히 안주하겠다는 자세에요. 보통 조직의 80% 정도가 이 캠퍼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남들이 하는 만큼 하는 모습이에요. 어쩔 수 없다. 이 정도로만 유지하면 돼. 다들 그렇게 하쟎아!”

 

마지막으로 스트레스가 생기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정복하려고 하는 클라이머가 있다고 했습니다. 글자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중간에 멈춰있지 않고, 고지를 향해 올라가기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기꺼이 즐기는 부류의 사람입니다. 불리한 환경을 통해 자신을 더욱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성취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코로나 때에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모두를 말하는 위기의 때를 오히려 성공의 기회로 여기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사도바울이나 시편23편의 다윗이나 역경의 상황에서 고백하는 것이 똑같습니다. 대처 능력은 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것은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이니,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두려움이 없는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확신에 차서 외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나는 연약하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절의 말씀이죠. 무슨 말씀입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자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4:13) 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힘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결국 그의 자족, 그의 만족의 비결이 되었던 것입니다.

 

유럽을 복음화 하겠다는 불타는 사도 바울의 비젼은 그가 사는 목적이 되었으며, 그러기에 그는 포기하지 아니했으며, 그렇게 도전할 적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어요. 그러므로 그의 역경대처능력지수는 세월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습니다. 그것이 그가 빈과 부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Rejoice! 기뻐하라! 기뻐하라! 주안에서 기뻐하라!”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역경대처능력을 어떻게 계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자족하는 마음, 만족하는 삶으로 살 수 있을 텐데요. 과학적 데이터에 의하면 여러 번 경험하면서 늘어간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배워간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이 닥쳐 올 때에 우리 믿음의 사람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를 의지하며 간구할 때에 위로부터 개인에게 주시는 지혜와 능력과 영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은, 환경, 상황, 여건까지 주장하시고, 좋은 사람, 필요한 사람까지도 붙이셔서 결국 승리케 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어려운 때에도 믿음의 사람은 긍정적입니다. 대처 능력을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기 때문이에요.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빌립보서를 마무리하면서 저는 기도합니다.

이 어려운 때에도 주님 주시는 평강과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시기를 축복합니다. 불안과 상심한 마음을 다 물리쳐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하늘 찬송을 부르며, 뚜벅 뚜벅 전진해 나가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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