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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04]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인생
운영자 2020-09-18 추천 0 댓글 0 조회 636
[성경본문] 디모데후서2:11-13 개역개정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인생

 

오늘 말씀의 시작이, 미쁘다 이 말이여!” 로 시작합니다. 미쁘다 란 단어의 뜻은, 헬라어로 피스토스 라고 하는데 그 뜻이 믿을만한’ ‘신뢰할 수 있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믿을 수 있다는 것일까요?

 

첫째, 주와 함께 죽는다. 그러면 살게 될 것이요. 둘째, 성도로써 인내하며 참는다. 그러면 주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다. 셋째, 어떤 경우에라도 주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면 주께서도 우리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께서도 나를 모른다 하실 것이다. 이 세 가지 명제를 약속으로 또한 진리로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본문 이 세 구절을 생각할 때에 어떤 장면이 마음에 떠오르십니까? , 세례받는 장면이 떠 오릅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세례 받을 때에 이 말씀이 선포되고, 세례를 받는 자는, 믿음으로, 아멘으로 주의 약속으로 받아드리던 말씀이었습니다.

 

첫째, 주와 함께 죽었다면, 주와 함께 다시 산다. 죽은 자의 부활을 말씀합니다. 세례의 의미 중 하나죠. 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죄로 죽고 의로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 죄와 함께 나는 죽는 것이요. 그리고 의로 다시금 산다는 것은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새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침례교를 제외하고는 모든 교단이 세례 받을 때에 온 몸을 물속에 침례하지 않고 물을 뿌리므로 세례를 베풉니다. 그런데 제가 사역했던 필리핀과 네팔은 침례를 베풉니다. 물속에 푹 잠기게 하므로 잠깐이기는 하지만 내가 죽는다 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물속에서 몸이 다시 나올 때에는 나는 새생명으로 산다는 느낌을 갖게 되니 유익합니다.

 

필리핀에서 세례식이 있는 날은 축제의 날입니다. 보통 바닷가에서 식을 치룹니다. 해변에는 축하하는 성도들이 모여서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저는 바닷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물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곳에 들어가 있습니다. 파도가 출렁입니다. 세례를 받는 성도가 한 사람 한 사람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에게 말하면서 따라하라고 합니다. 나는 이제 죄와 함께 죽고, 의로, 새생명으로 살아납니다.” 믿습니까? “아멘!”으로 응답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OOO에게 세례 하노라 그러면서 제가 세례 받는 자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누릅니다. 이 때에 세례 받는 자의 양 옆에 서 있는 돕는 성도가 그를 물속에 푹 잠기게 합니다. 그러면 제가 누릅니다. 얼마나 숨이 찰까요? 죽는 것입니다. 얼마동안 누르고 못 나오게 하느냐 하는 것은 제 마음입니다.! 다시금 물 밖으로 나올 때에는 세례받는 성도는 푸우~! 하고 숨을 쉬고, 성도들이 박수를 치고 축하를 합니다. 개인에게 참으로 의미가 있는 순간이요. 평생 잊지 못하는 경험이 됩니다.

 

주와 함께 죽는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에 나의 정욕과 나의 모든 연약한 것들을 못 박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고 추구하는 바입니다. 한번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하겠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둘째,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다. 12절의 말씀입니다. 무엇을 참는 다는 것일까요? 고난을 견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에는 예수 믿는 다는 이유로 인하여 로마제국으로부터 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어제 말씀으로 나누었어요. 사도바울은 로마황제인 네로의 기독교 박해로 인해, 다시금 로마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처음 감금은 행동이 자유로운 가택연금과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사도행전 마지막 장인 28장 마지막 두절에 기록된 것처럼,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28:30,31)

 

그러나 두 번째 갇힐 때에는 감옥안에 갇히고, 그리고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디모데후서 116절에 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29절에 보면, 죄인의 모습으로 사슬에 매여 고난 받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로, 로마에 가면 바울기념 교회 안에 그 당시 감옥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돌바닥에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겨울이 되면 추운 곳입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또한 믿음의 선조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우리 성도 모두가 북한에 억류되었던 임현수 목사님의 석방을 위해서 기도 많이 했었습니다. 억지로 죄목을 씌웠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거의 큰빛교회에서 2대 담임목사로 34년 동안 시무(始務)했어요. 캐나다 시민권 취득 후인 1997년부터는 북한을 150여 차례 이상 드나들며 인도적 대북 지원에 힘썼습니다. 500억원에 가까운 지원을 했다고 했어요. 그런 그를 27개월간, 억류하였다가 20178월에 풀어주었습니다. 북한이 그런 곳이에요. 석방 후, 그분의 간증을 저는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들었습니다.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 갔었다고 했어요. 신체적 연약함 때문이었어요. 듣는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분의 간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지 몰라요.

 

오늘의 12절의 말씀대로 참으면 또한 주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그대로입니다. 예수 믿은 이유로 인해 내가 당하는 고난과 손해와 모멸감도 참고 견디면 주께서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사회 분위기가 이상하죠? 교회가 마치 공공의 적이 된 느낌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정책을 돕고자하는 방송과 언론이 지나치게 교회를 부정적으로 보도하였어요. 우리교회가 예배드린다고 20명이상이 모였다고 이웃이 구청에 민원고발을 했어요. 세 번이나 확인하려고 우리교회에 다녀갔어요. 뭐 잘못한 거 없지요. 잘 지키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구나!” 대사회적으로 국민적으로 민족적으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처지에 놓였구나! 과거에 조선시대에 그랬었습니다. 기독교는 서양종교로써 조선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사상을 가르친다하여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였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 함대가 양화나루(楊花津)까지 올라왔다가 돌아갔어요.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이 양화나루 옆의 봉우리인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게 하여 1만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목베임을 당해 죽었습니다. 한강물이 피로 변했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후 아시는 대로,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선교사들에 의해 병원과 학교와 교회가 세워지고, 미션스쿨을 통해 교육을 받은 기독교 학생들은 우리 민족의 민족적 지도자가 되어 3.1독립운동의 주체가 되었고 이 일에 온 교회가 희생을 각오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민족종교로 받아드려지게 되었고 세상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공공의 적이 비로소 민족의 소망이요, 어둠이 가득한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세상에 마치 공공의 적이 된 것 같은 기독교가 그 위상을 회복하고, 이 나라에 소망이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 하겠다. 예수사랑으로 헌신을 해야 하겠구나! 요즈음 제가 갖는 생각입니다. 이 일로 자성하며 회개하며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다시금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이 말을 뒤집어 설명하면,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를 부인하지 않으면, 주께서도 우리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가 아니겠습니까?

 

이 구절에서 부인하다란 단어는 성경원어로 알레오마이 라고 하는데 그 뜻이 거절하다’ ‘거부하다’ ‘단절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내 삶의 영역에서 주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자리에는 그런 분이 없으시겠습니다만은....., 쉽게 표현하면 이러한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에서는 주를 높이며 찬양하며 사모하며, 나의 구세주로,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시는데, 그러나 예배당을 떠나고 세상에 있을 때에는, 그리고 일을 감당할 때에도 주님이 내 곁에 계시다 라고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언제 그렇겠습니까?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기어이 가고,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시키지 말아야 할 일을 시킬 때에......, 주님은 안중에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내가 주인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주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과거에 한 목사님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또 존귀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니, 길을 걸으면서도 좋은 길은 남겨두고, 주님께서 걸으시라고, 그리고 자신은 질척거리는 길을 택해 걸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릴적 주일학교 시절에 설교 중에 들었어요.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논두렁길을 걸을 때에는 어떻게 걷지?! 주를 높이고자하는 마음이 그렇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네가 나를 부인하면, 나도 너를 부인하리라 라고 하는 말씀은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씀입니까?

네가 운전을 할 때에 사고의 위험에 처해있을 때에 내가 네 곁에 있지 아니하리라.” “네가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고 내려놓아야 할 때에 나는 네 곁에 있지 아니하리라.” “네가 사업이 가라앉고 부도로 내 몰릴 때에,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써, 또한 회사의 대표로써, 나락처럼 추락하고, 절망감이 너를 에워쌀 때에, 나는 네 곁에 있지 아니하리라.”

네가 대입시험으로 취업시험으로 밤잠을 줄여가면서 공부를 하고 힘썼지만, 시험 볼 때에, 면접을 할 때에, 나는 네 곁에 있지 아니하리라

 

이처럼 어려울 때에만 주를 찾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상정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달라야 해요.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권면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항상을 강조하고 평소를 강조하고 지금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3)

 

그러나 이 새벽에도 기도하고, 다짐하기를 오늘도 주님은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나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모든 현장에서, 생업에 바쁜 가운데에서도...., 주님은 나의 주인이시오, 왕이십니다. 제가 주님을 섬깁니다. 순종하며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그럴 때에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형통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이 복 있는 자의 모습으로 이 한 날도 살아가시고, 승리하시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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