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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강해-호세아13] 세상에 동화될 것인가, 아니면 구별될 것인가?
운영자 2020-05-07 추천 0 댓글 0 조회 750
[성경본문] 호세아13:1-16 개역개정

1.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2.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3.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4.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7.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8.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9.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 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10.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12.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15. 그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의 근원이 마르며 그의 샘이 마르고 그 쌓아 둔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16. 사마리아가 그들의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며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세상에 동화될 것인가, 아니면 구별될 것인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독교인 전체는 인구의 약28%, 1,340만명입니다. 이 중 개신교는 대한민국 인구의 약 20%인 약 970만 명이고, 천주교는 인구의 약 8%로인, 380만 명입니다. 그러니 10명의 사람이 모인다면 그 중에 두 명 정도가 개신교 기독교인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 속에 있기 때문에,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당연스럽게 여겨지지만, 사회에 나가보게 되면 기독교인은 소수그룹에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는 동양의 심성은 구별된 모습보다는 하나가 된 모습에 더 안정감을 느낍니다. 가령 4명이 함께 식당에 갔을 때에 3명이 짜장면을 시키면 나머지 한 사람은 그냥 묻어갑니다. 그래서 짜장면 시켜요. 극장에 가서도 뭘 볼까? 할 때에 다수를 따르는 경향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같은 영화를 보게 됩니다. 나 혼자 구별되고 특별나게 분리되는 것을 어색해 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인해 오늘날 사회생활에서 믿음을 지켜나가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쉬운 예로 직장생활을 하는 형제들이 동료들과 함께 어울려서 회식을 할 때에 2, 3차까지 가야 하느냐, 아니면 그런 모임을 피하고 그들과 동떨어져서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스럽습니다. 자칫 고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시댁식구들과 어울릴 때도 비슷합니다. 신앙 때문에 담을 쌓아야 하느냐 아니면 그냥 동화되는가?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이 세상을 정죄하면서 할 수 있는 한 세상을 멀리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전도를 위해 교회의 문턱을 낮추어서라도 일단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초청해야 합니까?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은 이미 이러한 상황들을 많이 경험하셨고, 나름 세상에서 신앙인으로써의 줏대를 잃지 않고 믿음을 지키시리라 생각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적대적이지 않고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영역이 분명하리라 생각합니다.

 

제일 어려운 세대는 젊은 세대들,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대학생들과 이어 새로 취업한 신입사원의 때가 많이 어렵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집안에 시집간 새댁도 많이 어려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정답은 여하튼 믿음을 지켜야 한다.” 겠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다.” 어둠속에 빛처럼 구별된 존재요, 소금처럼 그 본래의 맛을 잃지 않는다. 즉 그리스도인은 변질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대수가 아니고 소수일 때에, 자칫 휩쓸러 가기 쉽습니다. 스스로가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으며 고립된 섬과 같이 느껴질 때에 더욱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사회는 좀 낫습니다. 기독교가 20프로가 되니까요. 기독교가 1프로 미만인 선교지에서는 믿는 자로 서서 믿음을 지켜나간다고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아요. 그래서 믿는 사람들끼리만 똘 똘 뭉칩니다. 세상과 고립된 또 하나의 집단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주님이 원하실까요?

 

기독교는 뻗어나가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착한 사람들만을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제자들은 죄악의 도성인 로마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희생당하고 헌신을 하면서도 복음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거대한 세력에 동화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저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강한 믿음과 더불어 세상에서는 사랑으로 선한 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는데요. 방법은 하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니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아니면 무너지기 십상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그리하도록 영적지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격상 믿음의 사람들에게 예배의 자리일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다시금 재충전 받고, 다짐과 결단을 하는 훈련센터의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꼭 그렇게 하는가? 왜냐하면 이 길이 영생을 얻는 복된 길이요, 심령에 평강을 얻는 길이요, 동시에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길이요, 하늘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에서 흔들리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흔들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보니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은 오랫동안 농사를 짓는 일에 훈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광야에서 40년이란 세월을 겪는 동안 농사자체가 낯설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전통적으로 유목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속에 가나안 족속만 아니었습니다. 주변의 이웃나라, 족속들도 하나같이 바알신을 섬겼습니다.

 

저들이 추수 후에 행하는 축제의 모습은 신전에서 행해졌으며, 그 내용은 비윤리적인 술취함과 음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불신사회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여호와 신앙 때문에 모든 주변 나라들과 관계를 끊고 적대적으로 살것인가? 그러므로 적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함께 어우러지고, 평화협정을 맺고,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런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무조건 고립되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어느 정도의 동맹이나 협력관계는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양보할 수 없는 것임을 언약을 통해 분명히 하셨습니다. 저들의 신을 따르라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하셨어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축복의 근원이 되심을 알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신앙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동화되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 결별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능력의 사람, 축복의 사람으로 서서, 보란 듯이 잘되어야 합니다. 우선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지혜도 주시고, 건강도 주셔서, 물질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복을 주셔서, 세상을 사랑으로 대하니,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 아멘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오늘 13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대세적인 종교 문화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동화될 것이냐 아니면 구별되어야 할 것이냐 그 상관관계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잘못을 범합니다. 이방종교문화에 동화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잘 되게 해주셨어요.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시고, 땅을 차지하게 해 주시고, 젖고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사랑으로 인도하신 하나님만을 섬겨야 했는데, 그 사랑을 잊어요. 세상이 좋아 보입니다. 유혹에 넘어갑니다. 결국 그 세상문화의 주체인 바알신을 섬깁니다. 결국 멸망을 자초합니다.

 

1절 말씀부터 16절 끝 절까지 그러한 잘못된 모습을 선지자는 낱낱이 지적하며 드러내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1절 한절이 13장 전체의 서론이자 13장 전체의 내용을 한 절에 축약시켰습니다. 그처럼 잘 나가던 에브라임 지파가, 이스라엘이 왜 멸망하게 되었는가? 그 원인과 결과가 나타납니다.

 

자기를 높이더니 이어지는 말씀이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영적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더니 그와 같은 높은 위치에 올려 주신 하나님을 뒷전에 두고, 자신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모습입니다. 교만입니다.

 

정말 주의해야 할 것, 바로 교만입니다. 우리가 사업이 잘 되어 물질의 복을 받고, 자녀가 하는 일이 잘 되고, 사회적 신분이 상승되어 권세의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그런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꾸만 우쭐해 지는 것입니다.

남들이 높여 줍니다. 존경한다고 합니다. 굽신, 굽신 합니다. 대접을 받는 것,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내 건강, 내 은사, 내 지혜, 내 환경, 여건, 조건, 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단 하루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어요. 잘 될수록....., 한 음성으로 따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그 은혜를 알아 감사하며 주신 축복, 물질, 건강, 하나님 나라 위해 써야지요. 전도를 위해, 선교를 위해, 구제를 위해,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 일에...., 그런데 어디에 씁니까?

 

자기를 위하여 썼다.” 그것이 멸망으로 가는 첩경임을 오늘 말씀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1절과 연결됩니다. 주어는 에브라임이에요.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누구를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고....., 복 주시고 번성케 하신 하나님을 위하여가 아니고...., 이것이 우상입니다.

 

어느새 자신이, 높임을 받아야 하실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양한 즐거움을 누립니다. 누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음식, 누릴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감사함으로,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살피면서...., 그러니 신앙생활 잘 하면서...., 그래야 하는데 이미 교만함으로 그리고 Self-centered Life style, 자기중심의 삶은, 그 신앙의 정도도 그 모습일 뿐입니다. 2절의 후반부에 보면, 그들은 말하기를 송아지와 입을 맞출것이라 하도다. 은으로 부어 만든 우상인 송아지에 입을 맞추겠다.

 

이 표현은 신앙생활이 하나의 유희처럼 되어버린 모습입니다. 쉽게, 쉽게, 그 바탕에는 내 마음대로” “내 방식대로” “나는 신앙생활 한다 고 하는 교만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유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모습을 기뻐하시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과의 타협이 아니라, 동화가 아니라 구별이라고 초두에 말씀드렸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켜기 위하여 영적 파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동화가 아니라 구별된 모습으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거꾸로 물들이는 존재로, 주의 복음으로, 십자가 사랑으로 물들이는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어야 합니다.

 

이 축복의 역사가 이 새벽에도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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