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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강해-호세아12] 세상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운영자 2020-05-06 추천 0 댓글 0 조회 790
[성경본문] 호세아12:1-14 개역개정

1.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7.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9.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10.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11.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12. 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13. 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 받았거늘

14.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세상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세상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상황과 사건에서만 주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큰 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凡事(범사)에 주를 의지해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성경말씀에 기도의 자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오직 모든 일에 라고 분명히 강조하며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니 차를 운전할 때 에는 안전을 위해, 또는 지금 왜 거기를 가고 있는지 그 목적을 위해, 심지어 꽃을 피워야 할 화분에 물을 주면서도, 하나님께 내 맘의 바람을 아뢰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무엇을 하든지 라고 말씀하시며 그 일을 통해 주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쉬운 말로 이렇게 잘 먹었으니, 참 감사하다. 이제 밥값을 해야지 시원한 음료를 마시면서도 ~! 시원하다. 힘이 나네! 하던 일 잘 마무리 해야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야~!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사도바울께서 그 방법을 터득하셨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쉬지 말고 기도하라그랬습니다.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산소를 호흡하듯이, 늘 주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그것이 범사에 주를 의지하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건강도, 가정도, 자녀도, 생업도, 직장도, 교회도, 나라도, 나와 연관되어진 모든 것,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 주는 내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왕이 되십니다. 그러니 주를 의지합니다. 만사를 주께서 인도하시고, 지켜 보호해 주세요. 저는 주를 따르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복이 임합니다. 때로 어려운 때와 역경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 주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셔서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방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그러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요,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하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정착하게 하시고 축복의 통로로 쓰시고자 하시는데 이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주를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 모습은 마치 6살 먹은 어린아이가 서울 대공원이나 에버랜드 같은 놀이동산에서 보기만 해도 너무 좋으니 엄마와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자기 혼자 뛰어가는 모습입니다. 엄마나 아빠가 순서대로 어련히 좋은 것을 재미있고 안전하게 태워줄 터인데, 그 부모의 맘을 몰라요. 자기 혼자 할 수 있을 것처럼 부모 곁을 떠나 뛰어다니다가....., 그러다가 길을 잃어버려요. 부모를 못 찾아와요. 점심때가 되어도 어디서 뭘 먹어야 할지 몰라요. 배가 고파요. 오늘 어린이 날인데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ㅎㅎ~!

 

1절에 뭐라고 기록되었는가 보십시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여기에서 바람을 먹으며그랬는데 마치 사냥 할 때에 덫에 가까이 다가오도록 먹을 것을 놓아 둔 것을 먹은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동풍을 따라가서여기에서 동풍이란 동쪽에 있는 나라인 앗시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말함인데 여러분, 이 동풍은 이스라엘 동쪽 사막 지대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으로서 여름 한때 그 바람이 지나가면 곡식을 다 말려 버립니다. 멸망을 자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초두에 말씀드렸습니다. “범사에 주를 의지하라그런데 인간적인 생각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큰 나라 힘이 센 나라 앗시리아를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모습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니 거짓과 포악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서쪽에 있는 또 하나의 강대국인 애굽에 기름을 보냅니다. 조공이죠.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니 이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겠다 고 경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믿음의 선조 야곱을 언급하십니다. 야곱이 누구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시조와 마찬가지지요. 그의 아들들과 요셉의 아들 둘을 통해 이스라엘 12지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이 나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 이스라엘 아니겠습니까?

 

너의 조상 야곱처럼 행하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야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런 말씀이지요.

 

여러분,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은 어떤 모습입니까? 3절과 4절에 그 모습을 요약하여 말씀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야곱은 욕심이 많습니다. 차남으로 태어난 것을 못 마땅히 여기고 장자권을 차지하고자 배고파 어쩔 줄 몰라 하는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샀다고 하고, 연로하여 눈이 침침한 아버지를 속여 장자에게만 주는 축복기도를 받게 됩니다.

 

이 모습은 흔히 오늘날 성공에 Feel이 꽂혀 그야말로 온갖 수단방법을 다하여 애쓰고 고생하며 추구하는 인간의 자화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향한 다른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 열심을 보고 복을 주시기는 주시는데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에,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하심과 거리가 멀어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인간형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손보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이른바 연단의 과정, 훈련의 과정이 그에게 불어 닥칩니다. 마치 커다란 돌을 깨뜨리고 다듬고 갈아내고 연마하여 아름다운 대리석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겪게 합니다.

 

야곱의 거짓말보다 단수가 높은 삼촌 라반에게 몇 번 속임을 당합니다. 아내를 얻을 때에도 라헬이 아니라 레아로 속게 되고, 그러니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7년을 더 일하기로 합니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수고하였으나 손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어요. 삼촌 라반이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아니했습니다. 그러한 날들이 20년입니다. 뿐만 아니었어요. 이제는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되돌아 오는 길에, 워낙 호전적인 성격의 형인 에서가 야곱과 야곱의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상황에서 살아나고자 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 넙죽이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는 일, 그 이외에 더 이상, 방법이 없어요. 아무리 머리가 좋고, 약고, 결국 외삼촌 라반까지 이겨낸 야곱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꾀가 통하지 않습니다. 회개의 기도 눈물의 기도,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하여 가족은 먼저 강 건너편으로 보내고 홀로 남아, 경야하며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밤을 새워 기도합니다. 이 밤에 야곱은 다시 태어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야곱의 경우를 생각나게 하면서, 하나님을 떠나서 행했던 그 모든 것, 의지하던 그 모든 것, 이웃나라 힘을 의지하고, 세상의 물질과 우상신, 그 의지하던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이제는 제발 하나님께 돌이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왜 저들이 죄를 범하고도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고, 고집 피우며 끝까지 버티고자 합니까? 그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잘 감추고 있으니 됐다.” 7절과 8절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8.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약은 것 같으나 어리석습니다. 사람의 눈은 속여요. 법망은 피해가요. 오늘날에서 감추고 또 감추고, 그러다가 발각되서 창피를 당하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6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주님 앞에 다시금 돌아와 잘못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그 보혈로 인해, 용서해 주십니다. 그렇게 용서함 받은 우리는 거듭난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라고 했습니까? 6절 말씀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라고 했어요.

 

인애와 정의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인애는 히브리어로 헷세드라고 했어요. 어려울 때에 체휼하여 사랑으로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 정의를 지키라고 했어요. 히브리 성경어로 미쉬파트라고 하는데 법률적인 용어입니다. 거룩한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그랬습니다. 범사에 주를 의지하는 자세임을 초두에 말씀드렸어요.

성도 여러분, 인애와 정의우리가 이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에 늘 얻는 영적 교훈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더욱 깊이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죄는 묵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의 성품과 정면 위배되는 죄는 냉정하게 대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러니 모든 인간들의 온갖 죄악들이 예수님에게로 전가되었고 심판이 행해졌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공의 오늘 성경의 정의입니다. 우리가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인애, 헤쎄드, 사랑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 다 끌어안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있습니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살리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랑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뭔가 큰 죄를 범했습니다. 죄는 악이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이 필요합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로 맞습니다. 39대의 곤장을 맞아요. 40대를 맞으면 죽기 때문에 사십에 하나 감한 매입니다. 엉덩이가 피로 물들 것입니다. 그 고통과 통증은 말로 형용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체벌을 받은 후에는 치료가 시작됩니다. 사랑의 치료입니다. 살리는 치료입니다. 그러므로 다시금 건강하게 회복됩니다.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 사람의 모습이 됩니다. 이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못난 자녀지만 끝까지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 정의와 인애가 함께 있는 곳입니다. 그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수록 우리의 죄가 떠오르고 그 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수록 용서하시고 살리시는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립니다. 새롭게 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죄를 멀리하는 정의로운 모습으로,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자를 사랑하는 인애의 모습으로,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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