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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강해-호세아06] 고난이 닥쳐 올 때에는
운영자 2020-04-21 추천 0 댓글 0 조회 923
[성경본문] 호세아5:8-15 개역개정

8.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9.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10.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11.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13.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호세아6:1-6 개역개정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고난이 닥쳐 올 때에는

 

우리가 계속해서 소선지서를 읽으며 묵상해 나가고 있습니다. 소선지서를 읽을 때에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평안하십니까? 그 보다는 에고 무섭다~! 어쩌면 좋노~!” 이런 생각을 떨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도 독자들의 마음에는 두 가지 주제가 계속 마음에 여운으로 남을 것입니다. 첫째, “무서우신 하나님이시네! 죄를 보실 때 마다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계속해서 심판하신다고 말씀 하시네~!” 매장마다 하나님의 심판얘기가 안 나오는 장이 없으니, 그런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어째 그리, 이스라엘은 왕도, 그렇고 백성들도 그렇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죄 범하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는가?”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매 장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하는 죄 얘기가 나오지 않는 장이 없어요.

 

그러니 꼭 지은 죄들을 낱낱이 열거하는 통에 그 모습에 우리의 모습이 비춰져 한편으로 찔림도 받고 회개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말 엄격하신 하나님이시네~! 무서우신 하나님이시네~!”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선지서를 통해 우리가 가슴에 담아야 할 주제는 사실 세 번째 주제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잘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죄의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그 죄목들이 낱낱이 열거됩니다. 그러니 심판당할 것이다 경고도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결코 멧세지가 멈추지 않아요. 왜 그렇게 지적하시고 경고하시는가? 그 최종적인 목적은 잘 되어야 해~! 잘 살아야 해~! 복 있는 자의 삶으로 살아야 해.” 행복한 삶으로 살기를 바라고 또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선지서에는 면면히 배어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늘 마음에 두고 염두에 두고 선지서를 읽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서의 주제는 사랑 많으신 하나님,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이제는 돌이키고 돌아와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행복하게 살아라 가 주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린다면 요한1416절에 명시된 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 안에 거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호세아서 5장은 6장과 연결되어 한 멧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죄, 특별히 오늘은 에브라임의 이름을 계속해서 언급하면서 저들의 죄를 지적합니다. 에브라임이 누구겠습니까? 요셉의 둘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므낫세죠. 그런데 야곱이 임종하기 전 이 두명의 손주들에게 축복을 하는데 오른손을 므낫세가 아니라 이 에브라임에게 얹습니다. 이 모습은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이 더 흥왕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48:20) 왜 그랬을까요? 야곱이 이삭의 둘째 아들이라서, 그렇게 장자권을 에서에게서 빼앗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야곱도 두 손주 중에 첫째가 아닌 둘째를 편애했을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한 지파로 자리매김을 하였는데 북쪽에 산지이기는 하지만 포도농사가 잘 되는 좋은 땅을 차지합니다. 이곳을 나중에 사마리아 땅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성읍들이 이 지역에 있어요. 실로, 벧엘, 미스바와 같은 곳이죠. 그러니 에브라임은 북왕국의 대표 지파가 되고 남왕국 유다지파와 라이벌 지파가 됩니다.(왕상11:26이하)

 

오늘 그 이름이 자꾸 언급되는 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표지파자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했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런데 잘 살게 되니 그 마음 중심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향락주의가 판을 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크게 세 가지 죄악을 지적합니다.

 

첫째, 우상숭배의 죄악입니다. 53, 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자신의 남편 호세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고멜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우상숭배로 연결되는 것은 바알신을 섬기는 신전에서 공적으로 음란을 인정하고, 그러한 죄악 된 문화의 산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향락주의의 제일 앞선에 음란이 있습니다. 향락주의의 뒷 배후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습니다. 결국 향락에 취해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7절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이 말씀에서 새 달이 그들의 기업을 망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는데 새 달이란, New Moon Feasts, 이방신을 섬기는 새 달의 축제날에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향락주의가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주범이 됩니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니, 간통법도 없어졌어요. 성적으로 경계를 늦추고, 방종할 수밖에 없는 향락주의의 결과물입니다. 어디까지 발전합니까? 이제 25세 밖에 안된 청년 조주빈에 의해서, 박사방이니 n번방이니 그 내용이 치를 떨게 합니다. 그런데 향락주의, 향락주의 사실이면서도, 듣기 싫은 거에요. 그러므로 향락주의라는 성경적 표현을 바꾸어서 세속주의 라는 말로 대치되었습니다. 속임수죠. 경계를 헤이하게 합니다.

 

두 번째 죄악은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입니다. 서로 형제지간에도 불구하고 북왕국과 남왕국이 국경을 더 차지하고자 전쟁을 일으킵니다.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기브아와 라마는 각각 유다와 이스라엘의 국경에 위치한 전진 기지입니다. 에브라임이 북쪽 나라인 수리아와 전쟁을 하는 사이에 유다는 그 틈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와 국경을 넓힙니다. 그것이 10절 말씀입니다. 유다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같이 부으리라 전쟁은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꼭 꼭대기에 있는 정치적 권력에 욕심이 있는 야심가에 의해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셋째, 종교적 타락입니다. 6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제사장의 무리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하여 강도떼처럼 세겜길에서 살인하고 사악을 행하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장들은 때로는 하나님을, 때로는 바알 우상을 섬기는 혼합주의적 제사장들로써 영적으로 백성들을 인도하는 잘못된 제사장들입니다. 살인하였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은 살인했다가는 큰일 나지요. 그러니 영적으로 혼미하게 하는 이단들의 행위가 어떠합니까? 금전적인 수입을 위해 교묘하게 성경을 풀어 가르칩니다. 두려움을 조장하여 순종하게 만듭니다. 144천명에 들어가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열심과 순종을 강조하더니 신도가 20만에 이르게 되었어요.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합니까? 그 중에서 144천명을 선발하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해와야 한다. 둘째는 아예 의무로 헌금액수를 정하고 그것을 드려서 열심을 보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야만이 144천명에 선발되어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어디에서 기인합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니, 이 시대의 우상은 향락주의와 인본주의가 뒤섞인 세속주의라고 했습니다. 그 뒷배 후에는 보이지 않는 공중권세 잡은 사단이 역사합니다. 최종목표는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이요, 그 결과는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입니다. 2의 사망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2의 사망은 육체적인 죽음 이후에 그 영혼이 지옥불에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0절 그대로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성도여러분, 선지자는 아픈 마음으로 외칩니다. 실제 나타나는 사회적 도덕적 영적 현상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511절 말씀이에요.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의 죄악을 낱낱이 밝히시고 심판을 경고하게 하십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사랑하시기 때문에” “제발 돌이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복 있는 자의 삶으로 살도록때로는 경고하시고 때로는 회초리로 치시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이 61절로 3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아멘~!

 

축복의 말씀이지요. 그러니 돌이켜라 하시는 경고의 말씀이지요. 그러니 정확합니다. 우리에게 국가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사업장에서 또는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환란이 닥쳐오게 되면 우리는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의 나팔을 부시는 구나~! 나를 사랑하셔서 돌이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구나~!”

 

고난 받을 때에도 구할 줄 모르면 더 이상 소망은 없는 것입니다. 515절의 말씀이 이러합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이 나라와 이 민족이 그리고 주를 떠난 자들이 환란 중에 다시금 주를 찾을 수 있도록,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사함을 입고, 그러므로 공중권세 잡은 자의 사슬을 끊어내고,

주의 사랑 안에서 다시금 복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중보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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