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호세아1: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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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어둠과 빛, 절망과 소망
오늘부터 소선지서 열 두권 중에 다섯 번째 책인 호세아서를 시작합니다. 호세아서를 들어가기 전에 먼저, 소선지서가 뭔지, 복습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 가장 부강했던 때는 다윗왕의 통치 40년, 그리고 솔로몬왕의 통치 40년 이렇게 80년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의 후기, 이스라엘이 최고의 부에 달했을 때에, 솔로몬 왕은 주변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면서, 전쟁을 피하고자 하여, 평화정책을 씁니다. 그 정책의 일안으로 주변 족속 왕들의 공주들을 자신의 아내로 삼는 것이었어요.
수 많은 주변 족속들의 공주들이 부인으로 들어오면서 저들의 섬기던 이방종교가 따라 들어왔습니다. 거룩해야 할 성전 안에 저들의 가지고 들어온 우상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실 일이었어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십계명에 제 1계명으로 그처럼 강조했던 부분 아니었겠어요?
또한 그렇게 주변나라들과 외교가 활발하니 언제고 예루살렘 성안에는 이웃나라 사신들이 많이들 거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을 대접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매일 매일 먹어야 할 음식이 엄청나게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있는 남쪽 유다지방은 강수량이 적어 토양이 척박합니다. 먹을 곡식과 채소가 많이 나지 않아요. 그러니 모든 곡식과 채소를 강수량이 많고 비옥한 땅인 북쪽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방에서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러니 북쪽에 사는 주민들이 점점 불만이 쌓여져 갔습니다. 그야말로 열심히 농사짓고, 가축들을 키워서 솔로몬 왕과 외국 사신들을 위한 음식제공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그러니 솔로몬 왕이 죽은 뒤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아버지 왕처럼 그러지 말기를 바랬어요. 그러나 아들인 르호보암은 계속해서 아버지 왕 때의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니 북쪽 백성들에게 노역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남쪽의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가 하나가 되어 반기를 들었어요.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주전 931년에 나라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그래서 북쪽 나라는 여로보암이 왕이 되고 나라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어요. 남쪽 나라는 솔로몬의 아들의 혈통을 이어 르호보암이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유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불행한 역사죠.
북왕국 이스라엘은 더 비옥한 땅이요, 지파는 열 개지파요, 모든 면에서 남왕국 유다보다 월등히 잘 살 수 있었어요. 유다왕국은 유다지파와 협력하는 베냐민 지파 두 지파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옥한 땅에 함께 거주하는 본토민인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가나안 족속의 종교와 문화와 삶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저들의 신인 바알신과 아스다롯신도 섬겼습니다. 혼합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혈통으로 이어지는 가족, 그리고 주업, 씨족 공동체, 그리고 민족과 나라겠지만, 이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입니다. 이 정신세계의 으뜸의 자리에 뭐가 있을까요? 예, 신앙이요. 종교입니다. 이 믿고 따르는 종교가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이끌고 갑니다.
다윗 왕 시대에는 왕이 얼마나 믿음이 좋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아니었겠습니까? 모든 백성이 여호와 신앙으로 하나가 되고 주의 율례를 따르게 되니 나라가 부강하고 잘 될 수 밖에 없어요.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에요. 가장이 예수를 잘 믿으면, 어머니가 신앙이 똑 바로 서게 되면, 자녀들이 그 신앙의 영향을 받습니다. 신앙이 하나가 되고, 성경의 말씀들을 잘 지켜가니, 형통합니다. 행복합니다. 믿음의 가문으로 서 나갑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최고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신앙으로 자라나는 것이요. 결혼 할 때에 믿음의 가문의 자녀들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만일에 하나 배우자가 신앙이 없다면 함께 묻어가든지 아니면 영적으로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때부터 가정선교가 시작되는 거에요. 쉽지 않아요. 그러나 사명으로 감당해야 하니 영적전투로 소진할 수 있습니다.
남왕국 유다에 비해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더 그러했습니다. 영적으로 가나안 족속의 문화와 종교와 혼합되게 되니 그냥 세상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전투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묻혀버리고 섞여 버리게 된 것입니다. 저들을 선택하여 자녀들로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이 아픕니까?
쉽게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러한 것입니다. 내 자녀가 남의 아버지나 남의 어머니에게 가서 “아버지~! 어머니~!”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볼 때에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깜짝 놀라고, 분노하고, 돌이키려 백방으로 노력하겠지요? 그래도 안 돌아오면 둘 중에 하나에요. 포기하던지, 아니면 돌아올 그날을 기다리며, 인고의 날들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내십니다. 이들이 바로 선지자입니다. 저들을 돌이키기 위해서 말씀으로 전하고, 저들 마음에 찔림을 주고, 돌아오지 않으면 미래에 어떤 변이 일어날 것인지 경고합니다. 어찌하든지 깨닫고, 돌이키도록, 생생한 언어로, 또는 행위로, 또는 기적과 이사로도 보여줍니다. 엘리야처럼, 기도할 때에 제단위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도 하시고, 삼년동안 비가 안 내리게도 하시고, 또 기도하니 폭우로 내리게도 하십니다.
저들을 일컬어 선지자, 또는 선견자, 또는 대언자 또는 주의 종 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리고 남왕국 유다를 위하여 그리고 이방민족을 위하여 세 곳으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아모스, 호세아, 미가 선지자입니다. 남왕국 유다를 위해서는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학개, 요엘, 스가랴, 스바냐, 에스겔, 말라기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이방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부르시고 보낸 선지자 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오바댜, 요나, 나훔, 하박국 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타국으로 보냄을 받은 선교사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선지자들은 주로 잘못을 꾸짖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했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땅에 기존 우상신앙을 믿는 자들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무시당하고 멸시 당할 수도 있습니다. 배척당하고 쫓김을 받을 수 도 있습니다. 왕이 완전히 우상편에 서 있으면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그 삶이 때로 너무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보내심을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고, 결국 영적으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 선지자들 중에 한 사람인 호세아를 대합니다. 주전 750년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770년 전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저 팔레스틴, 이스라엘 땅에 선 주의 종, 호세아를 만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성경 속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먼저 우리가 호세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사람의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남왕국 유다왕국의 왕들이에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시야 모두가 유다 왕들 입니다. 먼저 유다왕국 왕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두 왕국 중에 유다 왕국이 정통성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모두가 다 혈통적으로 다윗과 솔로몬의 후손들입니다. 그 후손들 중에서 예수님이 오실 것입니다.
두 번째 그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 왕의 이름이 나옵니다.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입니다. 여로보암 왕의 때는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부유한 때였습니다. 남왕국은 솔로몬의 때라 한다면 북왕국은 바로 이 여로보암 왕 때에 부를 이루었습니다.
문제는 영적으로 그 타락도가 어느 때보다 심했습니다. 잘 사는데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소수의 권력있는 정치가들과 경제적 부호들은 서로 긴밀하게 유착한 가운데 불법을 행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재산을 겁탈하고 착취했습니다.(암2:10,15;5:7~9) 부당하게 번 돈으로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을 사들이며 날마나 술과 노래와 비싼 음식을 동반한 채 향연을 벌이는 향락적인 삶에 빠져 있었습니다.(암6:3~6)
특별히 향락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이 섬기는 신인 바알과 아스다롯의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이었습니다. 여호와 신앙밖에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향락주의였습니다. 그 문화코드가 술과 음행이었습니다. 바알 신전에서도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만연하니 서서히 늪에 빠지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가 과거보다 잘 살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세끼 못먹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과거보다 더 피폐합니다.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불만지수는 높아갑니다. 우울증과 자살률이 높아갑니다.
하나님을 떠나니 영적으로 충족이 안됩니다. 영적인 존재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니 그 영적인 갈급함으로 인해 안정이 없습니다.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면 되는데 그러기에는 세상이 너무 좋아보입니다.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까? 그 영적인 갈급함을 세상의 향략으로 채우고자 합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성적타락은 극에 치닫고 있습니다. 금번에 N번방, 박사방 사건은 세상의 경종을 울립니다. 주범인 조주빈은 이제 나이가 25세 밖에 안됩니다. 완전히 바닥에 떨어진 이 시대의 도덕성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박사방 가입으로 인해 밝혀지게 될 것을 두려워한 한 청년이 그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자살했습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를 누가 어떻게 정상으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도덕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법이 보장할까요? 어느정도는 가능하겠지요. 법을 두려워하겠지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병을 법이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법망을 피해서 숨어서 일들이 벌어집니다.
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구습을 끊어버릴 힘이 필요한데, 정신이 따라주지를 못합니다. 어디에서, 누가 줄 수 있습니까?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끊어낼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죄성을 끊어낼 수가 없어요. 법이 끊어내지 못합니다. 사단의 힘을 이길 수가 없어요. 오직 십자가의 보혈,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실 때에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 향락주의로 타락한 시대에 부름 받은 호세아 선지자, 어떻게 사역을 감당할까요? 내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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