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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27]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랑
운영자 2020-02-18 추천 1 댓글 0 조회 770
[성경본문] 마태복음27:11-26 개역개정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랑

 

지난 시간에 묵상했던 26장에서는 그처럼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도 막상 예수님이 잡히시게 되니, 유다는 배반하고, 제자들은 도망치고, 그나마 멀찌감치 잡혀가시는 예수의 뒤를 쫓았던 베드로는 나는 예수와 상관이 없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그리고 밖에 나가서는 심히 통곡했던 베드로의 그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어서 오늘 27장은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던 사건임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총독으로 부임한 빌라도 총독의 법정에서 일어난 일임을 보여줍니다. 그 생생한 묘사를 통해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키 위해 죽으신 참 구주이심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본장은 유다의 처참한 죽음을 묘사함으로써 배반자의 말로가 어떠한 것인가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7장의 상황들을 순서대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가룟 유다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그는 회개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으며 원치 않게 죄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으며, 나아가 그를 부인한 베드로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의 실수와 범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아넘긴 유다는 그 죄를 회개할 만한 은혜와 긍휼을 입지 못했습니다. 그가 지은 죄는 너무 나도 엄청난 것이었기에 그는 회개치 못하는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용서함 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첫째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성경 마가복음 329절에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3:29) 그리스도께서 귀신들을 쫓아낸 것은 성령의 역사로 하신 일이었는데 서기관들은 말을 하기를 예수가 귀신을 쫓아낸 것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었다라고 했어요. 이들의 말과 생각은 용서함 받지 못할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돌이킬 수 없는 배교가 그 모습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64절에서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그랬고 또한 가룟유다의 모습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귀신의 힘을 입어 역사한다고 도무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힘과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전도사역을 감당했었으나 자신의 세상적인 야심을 이루지 못하자 예수님을 은 삼십에 넘긴 것입니다.

 

그는 또한 동료에게 까지 버림을 받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고 후회하는 가운데, 자기 죄를 돌이키고자, 공범자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범자들은 오히려 그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그를 외면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 죄악의 공범자들로부터도 버림받는 처참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자기 죄를 후회하나 회개할 수도 없고, 인위적으로나마 죄를 돌이키고자 하였으나 공범자들마저 외면하자, 가룟 유다가 취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행동은 자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목을 매어 자기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죄는 너무나도 컸기에 그는 창자가 터져 죽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며(1:18), 영원한 형벌의 화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26:24). 어쩌면 세상 역사 속에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너무나 대조적인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가 없으신 것은 제사장과 장로들이 스스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를 찾지 못하자 거짓 증인을 세워 누명을 씌우고 정죄한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전장인 2659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죄없으신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께 죄가 없었다는 두번째 증거는 유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납니다. 유다는 대제사장과 장도들이 거짓 증인을 세워 예수를 죽이려는 것을 보고서야, 자기의 죄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는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았다는 것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고백했어요. 이 모습은 예수가 참으로 무죄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인류 가운데 가장 악한 자의 한 사람이, 예수와 가장 가깝게 있던 한 사람이, 예수의 무죄를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증거가 있습니다. 빌라도의 증언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고소해 왔을 때에 예수가 무죄하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그의 무죄를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2313절로 16절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13.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이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것은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53장에 이미 예언된 일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가 참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인생길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루에 10분만이라도 십자가를 묵상할 수 있으면 우리는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사랑으로 인해 다시금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하여 로마군인들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75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준 십자가를 묵상하고 오늘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 은혜라는 말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면,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2절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 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달리신 십자가가 기독교 신앙의 전부라는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우리들은 십자가를 바라 볼 때에, 첫째로, 우리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바로 우리가 달렸어야 했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신 그곳에 예수님께서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부활절 칸타타 중에 증인들의 고백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중에 바라바의 고백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 이하 26절에 나오는 바라바입니다. 바라바는 흉악한 범죄자였어요. 그래서 십자가의 처형을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자, 예수를 풀어줄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를 따라서 군중들에게 묻습니다. 바라바를 놓아주랴? 예수를 놓아 주랴?” 빌라도는 군중들이 당연히 바라바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할 줄 알았습니다. 바라바는 당대의 흉악범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중들은 바라바를 놓아 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바라바는 얼떨결에 놓임을 받았어요. 바라바는 군중들에게 떠밀려 골고다 언덕으로 갑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는 예수를 바라보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대체 저 사람이 누구요? 저 사람은 무슨 큰 죄를 진 것이요?” 그러자 옆에 있는 사람이 대답합니다. 나도 저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잘 모르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저 사람은 당신이 달렸어야 할 바로 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요.”

 

우리들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저 곳에 내가 달렸어야 했었는데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보다도 훨씬 더 심한 영원한 형벌을 받았어야 했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십자가는 우리들을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한복음 15:13)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최고의 죄목에 해당되는 십자가의 형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극진히 사랑하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에서 부부는 사랑의 상징으로 반지를 교환합니다. 반지를 교환할 때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These rings are the outward visible sign of the inward and invisible love. (이 반지는 내적이고 보이지 않는 사랑을 외적으로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한 사랑의 상징입니다.)” 그리고는 그 사랑의 상징인 반지들을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저도 결혼한 이후로 이렇게 결혼반지를 늘 손에 끼고 있습니다. 반지를 볼 때면 이것이 사랑의 증표야!”하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무한한 사랑이 가장 구체적인 상징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부가 반지를 볼 때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듯이, 우리들은 십자가를 바라 볼 때마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시며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무죄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으로 구원받았으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삶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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