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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26] 예수님의 죽으심
운영자 2020-02-14 추천 1 댓글 0 조회 863
[성경본문] 마태복음26:1-16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의 죽으심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26장은 예수님에게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보게 하는 장입니다. 마태는 이 상황을 기록하면서 75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그 내용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어요. 그 시작은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팔리우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절은 그 예수님을 모른다고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는 모습으로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시간대 별로 살펴보며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예언

이제 바야흐로 인류 구속을 위한 예수의 대속 죽음이 실행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죽음의 그림자는 점점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의 대속죽음의 그림자를 선명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예수 자신의 예언에 의해서였습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자신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친히 예언하심으로 대속 죽음의 막이 열렸던 것입니다.

 

2)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계획

예수님의 예언과 때를 같이하여 한편에서는 그 예언을 이루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작업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하는 불의의 모임이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의 뜻에 순종해서가 아니라 예수를 거스르려고 모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예수님의 예언을 이루는 행위가 되었던 것입니다.

 

3) 한 여인의 향유 부음

예수님의 죽음이 정말로 가까웠다는 사실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예수가 계실 때에 한 여인이 나아와 죽은 자에게 향유를 붓는 예식을 예수께 행했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위를 보시면서 통찰력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드린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예수님의 죽음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삼백 데나리온의 값비싼 향유를 부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의 품삯에 해당되니 약 10개월간의 월급을 합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정말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께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 여인과 같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끝까지 섬기는 모습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죽음의 준비를 하십니다.

1) 최후의 만찬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거스를 수 없는 성부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고 그 섭리에 순종하기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준비의 첫 행로는 최후의 만찬을 열어,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또한 죽음의 의미를 알려주시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찬 예식을 베푸셨습니다.

 

우리 함께 26절부터 28절까지 읽겠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참으로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우리의 영 죽을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스스로가 그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찬송가 가사대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로 먹물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은혜 인 것입니다.

2) 겟세마네 기도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행하신 두 번째 일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는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시면서도 마지막까지 성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1) 하나님과 교통하셨으며 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확증하였고 3) 하나님의 권능이 온전히 펼쳐지기를 위해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뢰하는 철저한 준비를 행하신 것입니다. 이 기도와 연관하여 우리가 지키고 따라야 할 주님의 권면을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264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여기에서 시험이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살려고 하는 시험을 말합니다. 세상의 풍조가 유혹합니다.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 언제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럴 때에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합니다. 기도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3) 아버지의 뜻에 대한 순종

예수님은 기도 가운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것을 결심하고 고백합니다. 39절 후반부의 말씀입니다. 39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기도하시므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살다보면 분명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줄 알면서도, 당장은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정말 순종하기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마음에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또 행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순종을 통해 전화위복의 역사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죽고자 하시니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 뿐만 아니라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처럼 어려워도 순종하는 자에게 그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오직 경험해 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제자가 배반할 때에도, 제사장과 장로들이 무력으로 자신을 잡으려 할 때에도, 자신을 잡아 거짓 증거로 사형을 언도할 때에도, 불법 집회를 열어 자신을 정죄할 때에도, 자기의 권능을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온전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저들을 물리치시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얼마나 자기의 대속 사역에 충실하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이 취한태도는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께 닥쳐온 죽음 앞에 당황해 하였습니다. 두려워하였어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었는데 막상 일어나고 보니 자신들의 살길을 찾았습니다.

 

1) 배반

예수께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류 구속의 대사역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바치려는 순간에 그의 제자들은 그의 반대편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모습은 배반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의 스승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질 것을 예상하고는 자기 스승을 버리고 당시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편에 섰습니다. 그는 스승을 팔므로 써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추구했습니다.

 

2) 도망

예수께서 대속 죽음을 위해 순종의 길을 걸어갈 때에 가룟 유다 이외의 제자들이 보인 태도는 도망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룟 유다와 같이 적극적이고 배은망덕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비열한 태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이와 같이 인류 대속이라는 대사건 앞에서도 자기 생명을 위해서 도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3) 부인

베드로는 예수가 잡히는 순간에는 도망하였으나, 한편으로 마음 한 구석에 양심의 가책이 있어, 사건의 결말을 보고자 몰래 예수의 뒤를 쫓았습니다. 죽기까지 예수를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의 모습이 너무 초라합니다. 58절에 보니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했으면 함께 갔어야 했습니다. 고난이 있다고 멀찍이 예수를 따라 가면 안됩니다. 늘 가까이 주와 동행해야 합니다.

 

최근의 소식입니다. 시흥사거리에서 가까운 곳에 한 교회가 있습니다. 성도가 한 400여명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요. 그런데 상가 건물에 있으니 교회 건축을 하고자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결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몇 장로님은 반대했습니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때이니 하더라도 나중에 하자그런데 목사님도 그리고 대다수의 성도도 언제해도 할 일이니 추진하자 고 했습니다. 공동의회로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흥대교 건너 광명시 밤일마을 쪽으로 정작 땅을 사고 건축을 시작하게 되자, 반대편에 있었던 장로님들이 교회를 떠나고, 그 모습에 성도들도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임할 재정적 부담을 끌어안고 싶지 않으니 교회를 떠나는 것이에요. 여러분, 평생에 교회를 짓는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요? 그 일에 동참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일이겠습니까? 믿음으로 기도하고 연합하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든지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필리핀에서 그리고 네팔에서 크고 작은 교회를 수도 없이 지었습니다. 마지막 교회 건축은 카투만두 한인교회 건축위원장으로써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수억원을 드려 건평 300평의 3층 예배당을 잘 지었습니다. 교회 성도들의 70프로 이상이 선교사 가정입니다. 돈이 어디 있어요. ,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내가 재정적으로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다른 교회로 피해요? 성전건축을 통해 복 주실 하나님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래요. 이런 분들이 우리교회로 오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받아 주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저는 성지 순례를 통해 겟세마네 동산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곳에는 2천년이 넘는 올리브 나무들이 지금도 고목의 모습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두시고 기도하셨던 주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그 곳에서 보이는 한 교회의 첨탑위에는 십자가 대신 닭의 모습이 걸려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 했을 때에 울었던 닭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영생의 복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결론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인이심에도 불구하고 인류 구속의 큰 뜻을 위해 성부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시기까지 행하였습니다. 하물며 피조물 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달아 하나님께 의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독생자 아들을 제물로 주신 그 깊으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신 성자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우리를 예수 믿게 만드시고 그 사랑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오늘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섬길 수 있게 하신 성령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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