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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20] 소자를 실족케 하지 말라
운영자 2020-01-31 추천 1 댓글 0 조회 692
[성경본문] 마태복음18:1-14 개역개정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소자를 실족케 하지 말라

 

예수님을 영적인 스승으로, 구세주로 그리고 장차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메시야로 믿고 따랐던 열두 제자들은 앞으로 시작될 천국,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과연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오늘 본문 181절을 이해하려면 먼저 마가복음 933, 34절을 보면 도움이 됩니다. 거기에는 지위를 놓고 서로 논쟁을 벌이는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1,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라고 질문했을 때에 저들의 이 질문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의 천국이 아닌, 이 땅 가운데에서 정치적으로 회복되어질 이스라엘 땅에서, 자신들이 차지할 위치를 생각하며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은 수차례에 걸친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에 관한 교훈과 설교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천국, Kingdom of Heaven)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었어요.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메시야 성, 즉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해방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제자들이 말하고 있는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지상의 이스라엘 나라이고, 자신들이 그 나라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인지를 알고자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가?'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미래적 천국이었어요.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이루어질 그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나라, 하나님을 창조주로 여기고, 우리 인간은 피조물로써 겸손을 중심으로 하는 나라였습니다.

 

1.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의미

이제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부릅니다.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는 이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천국에 가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 뒤, 누가 더 크냐에 대해 다투었으나, 예수께서는 그처럼 크고자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답하신 것입니다.

 

1) 어린아이는 순수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

예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순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원죄의 영향이 있어, 아기들에게도 악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보편적으로 어른에 비하면 아이들은 천진난만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엔 고의적인 악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식이나 꾸밈이 없어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 역시 순수해야 합니다. 외식적인 기도, 위선적인 삶, 형식적인 사랑은 그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순수함을 원하시며, 진실한 마음을 바라십니다.

 

2) 어린아이는 부모를 신뢰합니다.(전적인 신뢰)

어린아이는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은 전적인 신뢰를 요구하십니다. 믿음은 부분적인 신뢰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에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3)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합니다.(전적인 의지)

아이들은 힘도 없고 몸도 작고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기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철저하게 부모를 믿고 부모를 의존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주 되신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여호와 의뢰(125: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않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 의뢰하는 자에게 복이 있음(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2. 화를 면하기 위하여

1) 이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자들, 즉 누군가를 의지할 수 밖에 없고, 아주 순수하여 쉽게 믿고 따르는 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흔히 사람들은 가진 것 없고, 권력도 없으며,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익을 가져다 주지도 못할뿐더러, 권세도, 힘도 없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하대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결코 하찮은 죄가 아니라는 것을 본문을 통해 교훈해 줍니다.

 

실로 모든 인간은 저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에 있어서는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모든 다른 인간을 평등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 소자에게 한 것이 주께 한 것(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2) 범죄하게 하는 것을 과감하게 완전히 제거해야함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찮게 보이는 사람을 하찮게 여기지 말 것을 교훈하셨을 뿐만 아니라 만일 어떤 것이 그러한 죄를 범하게 만들거든 그것을 과감하고도 완전하게 제거해 버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것까지 교훈해 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예수께서는 어떠한 인간일지라도, 그 인간 자체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으므로, 모든 인간은 가진 것과 관계없이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실천: 1) 인정(인애) 2) 어려운 자는 지혜롭게 도와야 합니다. 3)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진정으로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필요. (조건없는 도움)

 

3. 용서에 관하여

1) 용서의 대상은 모든 사람

베드로가 예수께 잘못을 행한 형제에게 어느 정도까지 용서를 베풀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예를 들어 답하셨습니다. 그 예에서 나타나는 용서의 대상은 한 사람이 대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이 말하는 빛이란 죄를 말하는데, 인간은 하나님께만 아니라 모든 타인에 대해서도 상호 범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의 대상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2) 용서의 이유

일만 달란트 빚진 자.

본 비유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만 달란트란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고대의 역사가에 의하면 유대 정부의 일 년 총 예산이 일천 달란트를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었어요. 일만 달란트는 6천만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오만 원으로 잡고 계산하면, 일만 달란트는 삼조 원입니다. 그러므로 종 된 신분으로서 일만 달란트나 되는 고액의 돈을 빚지고 있었다는 상황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에요.

누가 그만한 액수의 돈을 빌려 주겠습니까? 그리고 그 종이 무슨 일로 그만한 돈이 필요했겠어요. 그러니 이 비유는 그 종이 이미 갚을 능력이 없을 만큼의 빚을 지고 있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빚은 일만 달란트 보다 더 큽니다. 인간은 그 빚을 같을 능력이 없어요. 다른 이들을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용서해 주어도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빚을 갚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예에서 나타나는 것 중,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기자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어 있어 영원한 사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을 때 우리 죄를 도말시켜 주셨습니다(참조, 5:8). 따라서 모든 죄의 근본을 용서받은 우리가 사소한 죄를 짓는 형제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사하여 준 것같이(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용서 없이 용서 없음(6:37):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 용서의 한계

예수께서는 일흔 번의 일곱 번이라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490번을 용서하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용서에 한계를 두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니 온전한 용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 중심으로 용서해야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결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구원은 값없이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값없음은 은혜의 측면에서 언급되는 것입니다.

구원에는 은혜의 측면과 아울러 열매의 측면이 있습니다.

열매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구원에 합당한 행실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에서 교훈하는 행실은, 겸손과 인간 존중, 용서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그러한 행실의 열매를 충실히 맺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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