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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19]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운영자 2020-01-29 추천 1 댓글 0 조회 768
[성경본문] 마태복음17:1-8 개역개정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어느 조직에서나 그 조직의 중심이 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2 제자들 중에서도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더 가까이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실 때에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에도,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기 전날 밤 기도하실 때에도, 그리고 오늘 변화산에서도 예수께서는 이 세 제자들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 세 제자를 더욱 특별히 가까이 하시고 훈련을 시키셨는가 하고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그 속마음을 헤아릴 수 없으나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저들은 초대교회의 기초를 다지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자들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함께 지내는 동안 그 가능성을 보시고 특별 훈련을 시키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직선적이고 성질이 급하여 실패가 많았으나 반면에 그는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권능과 행동의 사람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형제간 이었는데요,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인물이었기 때문에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하여 사도들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로서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 그리고 요한계시록 등을 기록한 심오한 진리의 해설자요 사랑의 사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믿음과 권능의 사람으로, 야고보는 탁월한 교회 행정가로 또 요한은 심오한 신학자로 예수의 유업을 승계한 위대한 사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말씀, 2절에 보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또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산의 사건은 예수님이 메시야 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영광 중에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것은 장차 죽음에서 부활하실 예수님의 영광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에요.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구약시대에 예언하신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가 증명하고 또 선지자들의 대표인 엘리야 선지자가 출현해서 증거하는 것이었어요.

 

이 모습을 바라보던 베드로는 놀라움에 휩싸였어요. 얼마나 놀랐을까요? 더욱이 그처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존경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고 예수님은 영광의 모습으로 변했으니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거예요. 그때에 베드로가 외칩니다.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베드로는 그 영광 중에 더 머물고 싶었어요. 그곳에서 좀 더 오랫동안 거하면서 그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상황 속에 거하기를 원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오랫동안 거하지 아니했습니다. 다시금 산 아래로 내려 오셨어요. 왜냐하면 세상에는 할 일이 많았습니다. 유리하는 백성들, 많은 병자들이 고통 속에 있었어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상황에서 오래 거하시지 아니했습니다. 그 변화산에서 오래 머물지 아니하셨어요.

 

베드로의 모습과 상대적으로 다르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받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함을 입기 위해 특별한 장소에서 예를 들어 기도원과 같은 또는 수도원과 같은 곳에서 긴 세월을 보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처음 의도는 선한 것이었어요.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묵상하고 또 기도하고 .... 그러는 가운데 신비한 영적 체험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방언도 하고 환상도 보고 온몸에 떨림으로 임하는 신비한 체험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거기에 계속 거하고자 하는 것이었어요. 그 높은 산에서 신비하고 황홀한 상황에 처한 베드로가 말했던 것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그와 대조적인 죄악이 많은 세상, 아픔과 슬픔이 많은 세상,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그런 세상이 싫었던 것이었어요. 그러니 세상과 결별하고 싶었어요. 오늘날 이단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든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말씀에 현혹되어 말씀이 좋다고 그런 상황이 좋다고.... 심지어는 자기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도 만나주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그 영광의 순간, 베드로는 초박 셋을 짓고 그곳에 그 상황에 오래 머물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세상으로 내려가신다는 것입니다. 병든 세상을 고치시고, 소망을 주시기 위해 바리새인들의 음모로 인한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내려가신 거에요. 여기에 귀한 교훈이 있어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예수의 제자라면 우리도 주님과 같이 세상으로 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예배를 통해 또는 활동을 통해 기쁨을 회복했다면 이제는 믿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세상으로 가야만 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둠을 밝히는 빛의 모습으로 죄 악된 세상, 부패된 세상을 방지하는 소금의 모습으로 침투해가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합니다.

특별히 오늘 교회설립 40주년 기념행사로 통일민 목회자 부부 수련회를 갖습니다. 저녁에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간증을 듣고 기도회의 시간을 갖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할 수 있어요.

 

세상의 시름과 근심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기도가운데 찬양가운데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군사로 다시금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하시고자 하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다시금 산 아래로 내려 오셨을 때에 어려움에 처한 남은 제자들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이 예수께 나아가 꿇어 엎드려 간청하는 것이었어요.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그 다음 16절의 말씀이 뭐에요?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그의 제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제어하고 쫓는 권세를 주셨는데도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대답은, 17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리고 오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특히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 계셨어요. 또한 그처럼 많은 병자를 고치셨지만 여전히 불신에 차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 마음이 아프셨어요.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 아니하는 저들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참으시기가 어려우셨어요.

 

그리고서는 그를 이리로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예수께서 그 귀신을 꾸짖으셨어요. 그러자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로부터 낫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조용히 나아와 묻습니다. 19,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에 예수님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연이어 말씀하세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계신 믿음은 얼마나 깊은 뜻을 담고 있는지 우리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신비함과 그 능력 많음, 병이 낫고, 병자를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그 믿음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이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 믿음은 우리의 노력으로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집니다. 선물이란 내가 갖고자 해서 언제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선물은 주고자하는 자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몇 가지 이 믿음을 얻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그 단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은사는 성령충만 할 때에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원하실 때에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자에게 주십니다.

또한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물론 주님 앞에 간구한다고 누구에게나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기도하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 가능성 자체도 포기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취할 자세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바람직한 자세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저에게도 믿음을 주셔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새벽에도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믿음 주셔서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이 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기도하실 때에 주께서 은총을 베푸시사 성령충만케 하셔서 믿음이 생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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