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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2]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곁에 오신 이유
운영자 2019-12-12 추천 3 댓글 0 조회 816
[성경본문] 마태복음2:1-12 개역개정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곁에 오신 이유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에 정작 그의 탄생을 알고 찾아온 사람들은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 이었습니다. 너무 이상합니다. 이스라엘의 율법학자들은 구약성경을 읽고 해석하면서, 여러 부분에서 메시아가 강림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저들은 그 때와 시를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잘 못된 것이었을까요?

 

4절에 보면 헤롯대왕이 질문을 합니다. “어디에서 메시아가 날 것이냐?” 이 헤롯대왕의 질문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메시야가 나올 곳을 이미 구약시대에 미가 선지자에 의한 예언에 근거하여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오시는 때를 알지 못하므로 찾아가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방 나라의 동방박사들을 통해 그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알지 못하였을까하는 궁금함이 마음에 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그렇게 조용히 오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아니했습니다.

 

메시야는 심판주로 오게 될 것이다 라고 여겼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하는 이웃 나라를 심판하시기 위해, 아주 크고 광대한 모습으로 임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400년 전에 말라기를 통해 예언했던 메시야의 모습은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말라기 41절의 말씀입니다.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그런데 막상 그 날에 메시야는 조용히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그 말라기 4장의 심판주로 오신다는 예언의 말씀은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저리로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구름타고 다시 오실 그 날에 대한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2천년에 초림으로 이 땅에 강림하신 예수님은 인류의 심판자가 아니신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조용히, 왕궁에서도 아닌 마굿간에 태어나시는 겸손한 모습으로 오셔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으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죄인은 아니셨으나 죄인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실 유월절 제물인 어린양의 모습으로 오셔야 했어요. 그리고 그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는 세상의 왕족의 신분으로 오셔서, 세상의 왕의 자리에서 권세와 부를 누리며, 세상의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그가 십자가에 제물로 돌아가실 그 사명을 감당하실 수 가 없으셨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둘째,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왜 귀족으로 오시지 아니하시고, 목수의 아들로, 서민의 한 사람으로 오셨을까요? 그 답은 체휼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겸손하신 모습으로, 누추한 자리에 나심으로, 자라나면서도 목수의 아들의 모습이셨기에,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힘없고, 천대받고, 압제당하고, 병들고, 배고픈 자들을 체휼하실 수가 있었어요. 그 모습은 누가가 전한 복음서 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셨다는 이 기쁨의 소식을 천사들이 전합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그 소식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정치를 하는 사두개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였나요? 성 밖 광야에서 양떼를 돌보는 목자들에게 전합니다.

 

누가복음 28절에서 11절에 말씀합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자들에게, 삶이 힘들고 어렵고 소외받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체휼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그렇게 조용히 겸손히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체휼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의 발로에서 이루어집니다. 왕궁 안에 편하게 살고 있는 왕이 배고프고 힘든, 추운 겨울에 연료비가 없어, 춥게 자는 백성을 어떻게 체휼할 수 있겠습니까? 직접 찾아가서 보지 않고서는, 그 추운 방에 함께 누워 보지 않고서는 체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선교사로 목회자로 사역 감당하는 것 중에 이 체휼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교지에서는 24년간 가난한 자들 속에 있으니, 먹을 것이 없는 성도를 보면, 어떻게 나눠 먹을까 그 일로 체휼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에 학교 교사가 출산을 했는데 나라는 인도와 분쟁을 하여 가스수입이 안돼요. 가스통을 살 수가 없어요. 석유도 못사요. 거의 전쟁 수준이죠. 거기에다 전기는 18시간 이상 나가죠. 물을 데워 아기도 씻겨야 하고, 따스한 물을 마셔야 하는데, 밥을 지어야 하는데 가스가 없어요. 밖에 땔감을 위해 나무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때에 저희 집에는 월동 준비로 사다 놓은 가스통이 여분으로 하나 더 있었어요. 줄 수 있어요? 쉽지 않아요. 언제 국경이 열리고 인도에서 가스가 수입될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교사는 출산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어서 더 이상 우리 학교 교사가 아니에요. 그런데 주었어요. 어떻게 가능합니까? 체휼이 되면 가능해요. 불쌍히 여기면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곁에서 보니 그 느낌이 오는 거에요. 이 체휼의 마음, 바로 이 낮고 낮은 땅에 친히 몸을 입고 강림하셔서, 삶이 힘들고, 병으로 누운 자들 곁에 찾아오신 주님의 마음이죠. 이 교사가 아기를 키우고 아기가 세 살이 되니, 아이를 리빙스톤 학교 유치원 영아반에 입학시키고, 본인은 다시금 교사로 돌아와서 현재 훌륭한 유치원 주임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들어와 보니 목회의 현장은 대부분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 체휼은 주로 육신의 질고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보면서 갖게 됩니다. 지난 4년 동안 여러 성도님들, 암병으로, 폐질환으로 또 어떤 분은 길링바레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으로 절망의 그림자,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지금도 암병으로 췌장에서 간으로 전이되어 암 3,4기로 판정된 한 성도의 가족이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오늘도 병원심방 가야하는데요. 그런가하면 간질환으로 인해 검사로만 한 달 반 병원에 계신 교우가 있어요. 오늘 병명이 나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 마음에 체휼이 없으면,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체휼하는 마음없이 기도하면 역사가 안 나타납니다. 그러니 심방을 합니다. 가서 봐야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에 측은지심(惻隱之心),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고, 비로소 체휼의 마음에 다다르게 되면, 기도 중에 눈물이 쏟아집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도 이 아프고 힘든 성도들을 생각하니 기도회 중에 많이 울었습니다. 체휼이 임하면 진정한 기도가 나오고, 주께서 그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니, 병마가 물러갑니다. 체험으로 아는 것이에요.

 

우리가 어떻게 이 체휼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곁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바쁘다고, 사역으로 바쁘다고, 사람을 놓아버리면, 거기에 체휼은 없고,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찔한 것은 체휼의 마음이 없으면 목자의 영성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일로는 바쁜데 그 일로 자신의 야망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니, 그 종말은 그저 삯군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성탄에 주시는 귀하고 귀한 영적 교훈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생각하는 것은 왜 유대백성이 아닌, 이방인인 동방의 지혜자들에게, 별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그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것은 더 이상 유대인들만의 구세주로서가 아닌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야로써만이 아닌 모든 민족 모든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으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웃 나라들에게도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인들은 이웃족속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만했습니다. 선민이라고 이기주의적이었어요. 그 가운데 예수님이 오신 것은 그 한계선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온 우주만물을 회복하시는 일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의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 사역을 위임하십니다. 유언처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우리가 그 구원받은 자의 반열에 섰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 민족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순교자의 피 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마침내 그 은혜의 복음의 여러분에게도 저에게도 임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처럼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면서 선민들만 아니라 이방인이었던 우리도 품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이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20대 젊은 나이에 이 사랑에 감격하여 자주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갚는 일은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민족에게 가서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30세 되던 해에 필리핀의 미전도 종족에게 들어갔습니다.

 

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저는 복음과 상관이 없이 산속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타 종족이 개종하여 예수 믿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집단으로 한 마을 전체가 자신들이 믿고 섬기던 아뽀 마말야리 신으로부터 돌아서서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일도 경험하였습니다.

 

저들은 미전도종족에서 전도종족이 되었고 저는 또 다시 복음화률이 1% 미만인 나라를 찾아서 네팔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16년이 흐르는 동안 국민전체 인구 중, 0.8%대의 기독교는 3.5%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매년 10%의 성장률을 보이며 교회는 가파른 성장곡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을 구하시는 구원의 역사는 세상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는 먼저 구원받는 큰 복을 받게 되었고, 이제는 선교하는 교회, 산돌중앙교회의 성도로써, 이 복음전파의 사명에 참여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크신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에게가 아니라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에게 별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을 보이시고 인도하신 것은, 모든 민족에게 관심을 갖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성탄에 주시는 영적 교훈으로 무장을 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실천하셔서, 크신 복으로 승리하시는 복된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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