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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1]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운영자 2019-12-11 추천 3 댓글 0 조회 928
[성경본문] 마태복음1:17-25 개역개정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구약시대의 맨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 기록이후, 40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기간을 암흑기 또는 침묵기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한 계시를 멈추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그 침묵시대 이후에 나타 날 크고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삼위의 한 분이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서, 메시아로써 이 땅에 보내십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저 천국에서 이 낮고 낮은 땅위에 보내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위해서 온 세상 우주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어요.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다양한 무생물과 생명체들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시면서, 엿새 동안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어요.

 

그런데 그 아름다운 창조물을 시기하는 자가 있었어요. 태초 이전부터 존재한 영적 창조세계에 있었던 천사 중의 하나가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교만으로 인해 타락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어둠의 세계 속에 있었는데, 이 영적 존재의 이름은 사탄이었습니다. 사탄은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계를 보자 질투심이 불같이 타 올라서 창조의 세계에 흠집을 내고자 악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창조물인 아담과 하와에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는 거짓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금하신 선악과를 따서 먹게 하므로, 하나님의 중요한 명령을 거역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불순종은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한 것이었어요. 그 죄에 대한 결과로 이 세상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죄는 죄를 범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세계를 오염시켰던 것이었어요. 그 죄의 결과는 아주 비참하고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이 엉뚱하고 잘못된 모습으로, 어그러진 모습으로, 발전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첫 인간의 후손인 장남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살인자가 됩니다.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이후로 후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거부하고, 자기의 욕심대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바벨이란 지역에 높은 탑을 쌓기로 하고,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인간들, 그러나 인간들은 창조 시에 육체와 더불어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언제고 영적으로 갈급함을 느꼈습니다. 그 영적인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저들은 죄악을 범하면서도, 영적인 만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어요. 그런데 죄악으로 마음의 눈이 먼 저들은, 하나님과 비슷한 영적 존재물로, 그 자리를 대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좀 이상하게 생긴 바위나 나무와 같은 자연물을 숭배하는가 하면, 힘이 센 동물들로 그 하나님이 자리를 대치하고는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하였어요. 이와 같은 모습은 세상의 다양한 종교들로 발전하였습니다. 도교나 힌두교나 불교나 천도교나 모든 무속신앙이 바로 그런 연유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영적인 목마름을 채울 수가 없어요. 영생이 보장이 되지를 않아요. 아무리 간절히 빌고 정성을 빌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영혼과 핏속에 흐르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이는 이 모두가 다 영적인 목마름만 부채질하는 부질없는 짓일 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보시다, 보시다, 그리고 참기를 반복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신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들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친히 만드신 이 세상을 포기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에요. 그 분이 친히 만드신 것이기에, 마치 부모에게 자녀와 같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이기에 결코 그렇게 멸망으로 가는대로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창조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더 이상 보실 수도 없으셨고, 죄의 대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셔서, 다시금 영생할 수 있는 존재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깊고도 넓으신 구원계획을 마음에 확실히 이해하고, 새로운 시대의 말씀인, 신약성경의 첫 장을 여시고 읽으시며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는 4개가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와 요한복음입니다. 그런데 각 복음서마다 특징이 있어요. 가령 어떤 복음서는 유대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기록되었다면, 또 어떤 복음서는 유대 땅 밖의 헬라인들,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어요.

 

사복음서에 우리가 시작하는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오심을 설명함에 있어서,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유대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시대를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대망하며 기다리던 메시아에 관한 구약시대의 예언들이 신약시대에 와서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장에는 1절부터 17절까지 족보를 들추고 있습니다. 여러 조상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출현할 것이다라고 외쳐온 선지자들의 예언을 그들은 믿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설명하면서 일찍이 옛부터 선지자들의 예언한대로,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에서 출생하셨다 라는 것을 이렇게 족보를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마태복음 1장을 대하면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모습입니다. 18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나셨어요. 마리아가 약혼자인 요셉과 동침을 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어요. 육정으로 잉태된 분이 아니심을,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죄인의 피를 입고 나오시지 아니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너무나 믿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때때로 인간의 생각과 과학의 논리를 초월합니다.

 

창조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가서 보았습니까? 그런 사람없어요. 우리가 히브리서 113절의 말씀처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알아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 그것도 유에서 유가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으면 이 신비한 성령으로 잉태한 사건도 믿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이 일로 인해 너무 놀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어요. 이 사실을 제사장에게 보고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알리게 되면, 마리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시 사회에서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19절에 그의 태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어째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고심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의 꿈속에 나타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20절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어렵고 힘들어 할 때에 찾아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 방법 또한 사람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어떠한 문제들을 놓고 고민하며 씨름하며 기도할 때에, 주께서는 찾아오셔서 깨닫게 하시고, 해결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가 그처럼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려면, 성령의 역사를 알려면 우리의 육적인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영안이 열려야 해요. 그러기위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 어떠한 자세로 서 있어야 할까요?

 

오늘 말씀 19절에 요셉은 로운 자라고 했어요. 헬라원어로 이 디카이오스라고 합니다. 그 뜻이 흠없는”, 거룩한”, 또는 신의 법에 순종하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안이 열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보고 아는 것이에요.

 

사도 바울이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햇빛보다 더 강한 빛에 의해서 눈이 멉니다. 보이지 않아요. 그 놀라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가 충격을 받습니다. 사흘 동안 보지 못하게 되니 그 놀라움에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했습니다. 그 다음에 주의 종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드기어 육적인 눈이 아닌 영적인 눈, 영안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전에 알지 못하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사도로 새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도 우리의 영안이 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자가 되기 위하여, 나는 의로운 자 인가? 나는 요셉과 같이 의로운 자인가?” “다른 사람들이 어려울 때에 그 입장을 헤아리고 긍휼이 여길 줄 아는 아버지의 마음을 닮은 넓은 마음의 소유자인가?” 이 새벽에 깊히 묵상하며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어려울 때마다 찾아와서 도우시고 지키시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요셉과 같은 의로운 자의 모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입니다. 임마누엘이라고 했어요.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별명입니다.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이름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미리 알려 주신 장차 오실 메시야의

이름이었어요. 임마누엘 이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구세주만이 가질 수 있는 귀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뜻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말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굉장히 큰 위로와 힘을 주는 이름입니다.

이 땅에 강림하신 예수님은 우리처럼 33년간 육신의 몸으로 사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여전히 임마누엘로 와 계십니다. 어떻게요? 영으로 계십니다. 바로 성령님의 모습으로 계신 것입니다. 또한 영이시니 어디든지 계십니다. 특별한 자리에도 계시고 평범한 자리에도 계십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리에 임하십니다.” 성경 말씀처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8:20) 마태복음 181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 새벽에도 우리가 기도하는 이 자리에 임재 하셔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응답하십니다. 영안이 열리게 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이 축복의 역사를 체험하시는 성탄의 계절,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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