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35:1-1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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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2.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3.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4.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5. 그들을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몰아내게 하소서
6. 그들의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며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뒤쫓게 하소서
7. 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잡으려고 그들의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까닭 없이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8. 멸망이 순식간에 그에게 닥치게 하시며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9.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10.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11. 불의한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질문하며
12.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13.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14.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15.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16.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들의 이를 갈도다
17.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려 하나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18.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선취적 신앙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참을 수가 없어 그 일을 해결하고 싶은데, 힘이 없고, 돈이 없고, 아는 사람 중에는 높은 권세를 가진 자가 없어, 어디에 하소연 할 때가 없으니, 고스란히 고통을 다 받으면서, 그야말로 마음이 상하고, 뼈가 상하고, 가슴에는 한이 맺힐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전극 중에 춘향전이 있습니다. 이미 약정한 님, 이몽룡이 마음에 있는데, 신임 사또로 부임한 변학도는 춘향이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자 합니다.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자 돌아온 것은 큰 칼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일이었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기를 했나요? 감옥에 앉아 있는 춘향이는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너무 착해서 다 참을 수 있었나요?
시편 35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도 인간인 지라 죄 없는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사울왕과 그의 군사들 앞에서 너무 억울한 것입니다. 그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 7절과 8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잡으려고 그들의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까닭 없이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8.멸망이 순식간에 그에게 닥치게 하시며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그런데 자신은 정작 힘이 없습니다. 살길은 하나, 그저 도망치고, 피하고, 숨는 길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무력한 모습이 10절에 표현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가난한 자,” “궁핍한 자”라는 말로 자신의 힘없는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더욱이, 나는 혼자인데, 상대도 하나면, 한번 겨루어 볼만한데, 내 주변의 사람들이 다 그쪽 편이 되어 협공을 하니, 억울함은 더욱 가증됩니다. 11절의 모습이죠. “불의한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질문하여....”
더욱더 힘이 들고 견딜 수 없는 것은 나는 저들에게 잘 해 주었는데, 선을 베풀었는데, 진심으로 잘 도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을 거꾸로 악으로 갚고자 하는 모습 때문입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 읽겠습니다.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13.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14.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15.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이럴 때에 “배반당하였다.”라고 말하지요. 선을 악으로 갚는 모습입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의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제가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중고등부 학생 교역자로 섬길 때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있었는데 늘 얼굴에 수심이 차 있어요. 왜 그럴까 궁금해졌습니다. “가정에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하여 가정방문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안 된다는 거에요. 오지 말라는 거에요. 알고 보니 아버지가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 한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집에서 나가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더욱 궁금하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승낙을 받고 집을 방문했는데, 한 봄날로 기억합니다.
방 밖에 햇볕이 좋은 마루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저를 만나고서는 반겨주었습니다. 자신의 딸을 위해서 수고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마당 한편으로는 빈 소주병이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가 제일 먼저 한 말이 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함께 투자를 하고 동업을 하던 친구가 자신을 밀어낸 것입니다. 세상 말로 배반당한 것이에요. 투자한 돈을 한 푼도 건져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배반당한 마음에 쓴 뿌리가 내리고, 실패자가 되어, 세상이 싫었던 것입니다. 3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두문불출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냈었던 것이었습니다. 긴 시간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결론은 “그래도 따님과 가정을 위해서, 다시금 시작하셔야죠.” 그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 예배당 밖에서 학생들을 기다리는데, 저 만치, 딸 혜경이와 아빠가 손을 잡고 교회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선교사로 나가게 되니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복음은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풀지 못할 인생의 문제가 없습니다. 새롭게 그 인생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다윗은 이처럼 억울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 인생의 위기를 극복합니까? 그의 강청의 기도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나를 저주하는 자를 주께서 저주하시고, 나에게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소서~!” 이삭이 야곱을 위해 드렸던 기도의 내용입니다. 26절과 27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이 함께 부끄러워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스스로 뽐내는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하소서 27.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또 다른 표현으로는 시편 23편에 그의 노래처럼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나에게 상을 베풀어 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보란 듯이, “그들 앞에 보란 듯이 의인이 잘 되는 모습으로 나타내시고, 저들이 사람들 앞에서 거꾸로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억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윗이 행하는 자세는 우리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그 모습 첫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 아뢰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다 주님 앞에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은 많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리고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그 가슴에 웅어리진 억울함을 다 토해내고 있습니다.
둘째, 자신은 끝까지 정직히 행하는 것입니다. 진실된 모습으로 초지일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면 내 편에 서실 수 밖에 없도록 나는 올바로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콘 악의 편에 서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23절, 24절에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외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24.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소서!” 무슨 말씀입니까? 요즈음 말로 이런 말이죠. “탈탈 털어보세요. 먼지가 나오나~!” 그리고 이어 외칩니다.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상대가 악하고 못되게 굴면 우리의 마음이 상처를 입고, 나중에 견디다 못해, 내가 본래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보복하려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 손에 피를 묻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두 번이나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엔게디 동굴 안에 다윗과 부하들이 있는 줄 알지 못하고, 볼일 보려고 그 어두운 굴 안에 혼자 들어왔을 때에, 죽이자고, 기회이니 죽이자고 부하들이 다윗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쫓다가 날이 저물어 십 광야에 진영을 치고 텐트 안에 자고 있는 사울에게 몰래 다가간 다윗은 침상에 있는 그의 물과 창을 가져옵니다. 그 자리에서 그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름부어 세운 이스라엘의 왕을 내 손으로 죽이고, 내가 왕이 되었다.” 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 내 자신을 지켜 범죄하지 않겠다.” 는 것입니다.
12절에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선하게 대했다는 것이지요. 블레셋 군사를 죽이라는 사울왕의 부탁을 그는 생명을 무릎 쓰고 실행했습니다. 다윗을 죽이고자 모의를 합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죽기를 바라여, “블레셋 사람의 포피 100개를 베어 오라” 명할 때에 실행했고 이어 다윗은 그가 원하는 대로 블레셋 사람의 포피 200개를 사울왕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내가 심판하지 않아도 주께서 하시니 나는 정도를 걷는다. 나는 옳은 길로 행한다.” 아멘입니다.
세 번째, 영적교훈이 있으니 그것은 “변치 않는 긍정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제일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실 것이다. 이루실 것이다. 종의 마음에 기쁨을 줄 것이고 정의는 회복될 것이다. 믿음과 확신 중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오늘 말씀의 제목인데, “선취적 신앙” 이라고 합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믿음의 눈으로 보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며,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긍정의 생각이 오늘 시에 면면히 배어져 있습니다.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18절도 같은 내용입니다.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그리고 28절에 결론을 그렇게 맺고 있습니다.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사방팔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심정은 억울해서 견딜 수 없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하소연을 하고 저들을 주께서 심판해달라고 간청을 하지만 그 마음 저변에는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결국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손을 보시고 질서를 잡으실 것이다. 내가 손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님의 때에, 최선의 길로, 최선의 방법으로, 평정하시고 악인을 낮추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실 것이다.”
오늘도 주안에서 이 믿음으로 꿋꿋이 서시길 바랍니다. 흔들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를 경외하고 의지하며 선을 행하는 자의 손을 높이 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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