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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 21] 고난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운영자 2019-01-08 추천 0 댓글 0 조회 945
[성경본문] 열왕기상17:8-16 개역개정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고난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써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바알 신을 숭배하는 아합왕과 이세벨을 향하여 무서운 선포를 했습니다.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17:1)

 

이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입니다.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천수답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비는 농사에 있어서 절대적입니다. 또한 낮과 밤의 기온차이로 인해 밤에 내리는 이슬은 광야에 매일 같이 새 풀로 돋아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야 양들도 염소도 매일같이 밤사이 내린 이슬을 머금고 매일 돋아나오는 풀을 뜯어 먹으며 생존하겠지요. 그런데 수년간 비도 이슬도 멈출 것이다 라고 하니, 정말 큰 일 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자연적 재앙을 주십니까? 왜냐하면 바알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나 왕비 이세벨이나, 백성들이나, 또한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는 가나안 족속이나, 거의 모두가 다 바알 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믿고 있었어요. 하늘에서 비와 이슬이 내리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과 그의 배우자 아세라 신의 은총 때문이다.”

 

그러나 어림도 없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창조주가 되시고,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바알신은 그저 허수아비와 같은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증명해 보이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비도 이슬도 수년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엘리야가 예언을 하니 아합왕과 이세벨이 놀랍니다. 크게 노합니다. 노여워하여 이 엘리야 선지자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죽이고자 하겠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생명을 보존하시고자 너는 숨어라 고 말씀하십니다. 172절과 3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생명의 주관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영혼의 창조자가 되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육신의 보존자가 되십니다. 요단강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먹고 삽니까? 그 시냇물을 마시고, 먹을 것은 까마귀를 통해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약속대로 그렇게 하셨어요. 엘리야의 생명을 지켜 보호하시기 위해, 까마귀를 통해 고기를 가져오게 하셔서 먹게 하시니, ~! 그렇구나!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엘리야로 하여금 확실히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날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살아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가 오지 않고 이슬이 내리지 않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바알 신이 비를 줄 리가 없습니다. 이럴 때에 아합 왕은 우상숭배를 멈추고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아니했습니다. 애매한 백성들만 고통의 날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 있는 백성들 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자들은 사회 빈민층에 속한 자들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빈민층은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과 레위인이었습니다. 이 계층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들 계층 중에 한 사람, 남편이 없이, 아들과 함께 살고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는 한 여인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사르밧 과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니 시냇물도 말랐습니다. 엘리야가 마실 물이 없습니다. 주의 종을 책임지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바로 이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십니다. 엘리야가 좋아했을까요? 왜 하필 힘든 가정에 나를 보내시는가?”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런 능력이 있을 것인가?

 

그러니 저가 물을 가져다 달라 그 여인에게 말하고서는 순종하는 그녀에게 추가로 요청합니다. 떡을 가져오라” “과연 내가 이 어려운 살림을 하고 있는 여인의 집에 거하며 이 가뭄의 때를 날 수 있겠는가?” “필요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는가? 어디 보자 그런 생각도 했을 법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야의 요청을 들은 이 여인은 그 가난과 어려운 삶속에 참고 있었던 설움이 터져 나옵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이 얼마나 어려운 처지입니까? 가뭄이 계속되고 있어요. 소출이 없으니 당연히 먹을 것이 없어요. 바알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먹을 것이라고는 곡식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거 먹으면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대에 이런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니 바로 북한이 떠올랐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작년 109, 로이터 통신은 에르베 베르우셀 WFP 대변인의 말을 인용, 북한은 여전히 만성적인 식량 부족 사태를 겪고 있으며 영양실조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북한 인구의 거의 40%에 해당하는 1000만명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먹을 것이 없고 깨끗한 물이 없어 병들어 죽어가는 저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이와 같은 절박한 상황을 보면서 엘리야 선지자가 말합니다. 두려워 하지말라 남은 가루로 작은 떡을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라 그리고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떡을 만들라

 

한편으로 냉정한 것 같지만 엘리야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미리 주신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을 긍휼히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엘리야를 그 집으로 보내면서 이미 언급하셨습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이미 이 불쌍한 여인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도우실 것을 계획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에게는 최소한의 믿음을 요구하고 계셨던 것이에요. 만일 이 여인이 엘리야의 요청에 거절하고 떡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기적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순종합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러한 모험을 불사할 때가 찾아옵니다. 극한 상황에서 서원기도 같은 것입니다. 주여~! 이제 나에게는 누구를 의지할 자도 없습니다. 주의 도우심이 없으면 내가 죽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그 모습은 마치 벼랑에서 몸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주께서 저를 사랑하시면 받아 주실 것입니다.”

 

이 여인은 떡을 한번 해 먹고 죽느냐, 또는 주의 종인 선지자 엘리야의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따르느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놀라운 일이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극한 상황에 가 보면 판명 지어집니다. 평안할 때에는 평안해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련이 닥쳐옵니다. 사업이 부도를 맞고, 건강은 악화됩니다. 이 상태에서 누구나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해결이 안되고 여러 날 불면의 밤이 지속되면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든지 하나님은 날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시나봐!” 믿음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또 더 큰 시련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병들어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졌습니다.(17) 이렇게 되면 절망이지요. 그 상황에서 믿음으로 일어나기란 너무 힘든 것입니다.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왔겠습니까? 하나뿐인 아들이 아니겠어요. 그 죽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을 것입니다.

 

원망이 화살이 엘리야에게 향합니다. 엘리야는 거룩한 주의 종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렇지 못해요. 그러니 자신이 죄 값을 받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여깁니다. 주의 종을 보내어 심판하신다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차라리 안왔더라면....!” 그런 원망이지요.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구체적으로 어떤 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말하기를 간음의 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얻은 아들이기에 심판이 임한 것이다 라고 말하며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적 문화를 근거로 해석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저는 이 여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이 하나님의 이 여인을 사랑하심은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엘리야가 이 여인에게서 아들을 달라하여 자신이 거하는 다락에 올라갑니다. 침상에 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그 아픈 상황을 체휼하는 엘리야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 이 모습이 주의 종의 자세이구나~! 아픈 성도들, 삶의 저 바닥에까지 내려가 주저앉은 성도들을 대하는 자세구나~!” 나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생각이 되어 회개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0.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엘리야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왜 죽게 하셨습니까?”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소서 저가 울부짖으며 간청합니다. 말씀에 보니 그 아이 위에 자신의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이 특이한 모습은 이러한 것입니다.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둬가시고 이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그러므로 이 아들을 살려주시고 이 가정의 슬픔이 물러가게 하옵소서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의 종은 성도의 아픔을 볼 때에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아뢰어야 하겠구나~!”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두어 가시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고통으로부터 성도를 건져 주옵소서~!”

 

이러한 주의 종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하나님께서 결국 이 아들을 다시금 살려 주십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그리고 성도의 아픔을 체휼하는 주의 종, 그리고 주의 종의 말에 순종하는 성도가 있는 교회, 오늘날 이 땅의 교회가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산돌중앙교회가 그런 교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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