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사사기 강해 27] 선한 일을 할 때에도 도덕성을 유지하라
운영자 2018-09-07 추천 0 댓글 0 조회 687

선한 일을 할 때에도 도덕성을 유지하라

 

나귀의 턱뼈 하나로 1천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사사는 왕이 없는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재판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니 곧 정치적으로 권세를 가지면서 동시에 백성들을 지켜내야 하는 의무도 가지고 있는 공적인 리더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본문 1절에 보니 삼손이 가사에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다고 했어요. 본문 그대로 읽게 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에고 지 버릇 남 주나? 삼손이 또 여자 문제에 걸려들었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생과 하룻밤 보낸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러한 삼손의 모습을 보면서 갖는 생각이 아니, 왜 결혼안하고 살어?” 였습니다.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긴 했었지요. 그러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자신의 백성 중에 이스라엘 여인과 결혼하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나실인으로써, 또한 사사로써 결혼을 해야 삶이 안정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럴까요? 신학생들은 빨리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제 때에 결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그것이 성경적인 것은 태초에 온 세상을 창조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28) 앞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갖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원리요, 또 복입니다. 또한 말씀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127:3)

 

그런데 자녀임신을 할 수 있는 가장 적령기는 21세부터 28세까지 입니다. 늦어도 35세 이전에 임신하는 게 자녀건강을 위해서도 좋다고 했습니다. 남자 나이도 24세에서 32세까지가 가장 좋은 정자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서울에 사는 여성의 초혼연령이 29.3세로 지난 1990년의 25.5세보다 3.8세가 많아지는 등 결혼적령기 여성들이 늦게 결혼하려는 만혼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늦은 출산으로 인한 아이와 산모의 건강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어요.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제 딸도 20대 후반인데 아직 결혼생각이 없어요. 자꾸 싸인을 줘도 일에만 빠져 있어요. 어째 그런지 모르겠어요.

 

삼손이 결혼을 하지 않고 사사의 일을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가사까지 내려갔어요. 거기에서 기생을 만나서 하룻밤을 지냅니다. 왜 그 먼 곳까지 삼손이 가야 했을까? 성경신학자들은 두 의견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사사 체면에 가까운 곳에서 여자를 만나면 사람들 이목도 있고 그러니 그 자리를 피해 먼 곳까지 간 것이다.” 또 한편은 아니다. 그는 사사로써 블레셋 사람들을 치기 위해서 그 먼 곳까지 간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편이십니까? 저는 묵상 중에 후자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서 하룻밤을 묶어야 하니 어디에선가 잠을 자야 하는데, 기생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선한의도로 가사까지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여자의 유혹에 한 눈을 팔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 블레셋에는 다섯 개의 큰 성읍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으뜸가는 성읍이 가사였습니다. 이곳은 팔레스틴의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로써 삼손이 살고 있는 소라에서 그곳 까지는 72킬로미터나 되는 아주 먼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는 블레셋 족속에게 어찌하든지 타격을 가하고자 고심하던 터에 또 하나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블레셋의 가장 심장부인 수도로 직접 찾아가서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었어요. 이스라엘 백성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이스라엘은 여전히 살아있다.” 고 하는 어떤 강한 타격을 주고 무력시위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정욕에 약한 삼손이 기생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가사 사람들에게 삼손이 왔다고 알려지매 그들이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이스라엘인들에게 삼손은 영웅이지만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악명 높은 삼손아니겠습니까? 그 소문이 파다해요. 그러니 잠에 깊이 떨어진 새벽을 틈타 삼손을 죽이려고, 그 밤에 군사를 모으고 그를 둘러싸고 매복하고 삼손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삼손이 자고 있지 않아요. 그저 누워있을 뿐입니다. 3절에 보니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랬어요. 자신이 그곳에 온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기생의 집에 들었으나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는가?” 하는 본래의 그곳에 온 목적으로 돌아간 거에요. 그러니 블레셋 사람들이 저를 온전히 포위하기 전에, 삼손이 그 밤에, 몰래 일어나 나와서...... 저가 무엇을 합니까?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삼손이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가지고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성 문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두 개의 문짝이겠죠. 거기에다 두 문설주와 문빗장까지 포함해서 그것을 메고 헤브론까지 갔다고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엄청난 힘을 발휘한 거죠. 그의 엄청난 힘을 발휘하여 블레셋의 심장부에 일격을 가했습니다. 성문이면 그 도시의 위용을 자랑하는 상징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삼손의 이와같은 모습은 사사의 모습입니다. 용사의 모습입니다. 기생집에 들어간 것은 잘못이지만....., 블레셋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인식시키기에 충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성문을 메고 어디까지 갔는가? 말씀에 보니 헤브론이라고 했습니다. 가자에서 헤브론까지는 그 거리가 14.4킬로미터입니다. 가사는 해안가 평지이지만 헤브론은 산악지역입니다. 그러니 나중에 성문을 찾아 온다해도 어떻게 들고 온단 말입니까? 이처럼 삼손이 엄청난 힘을 발휘했으니 블레셋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블레셋 사람들은 충격과 고민에 휩싸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외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뜻대로 맘대로 해볼 수 없는 이스라엘 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더욱이 전쟁이 신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었던 그때에 ~! 이스라엘에는 강력한 하나님의 손길이 그 능력이 존재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유명한 성경신학자인 랑게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 성의 문짝과 설주와 빗장을 빼버린 것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의해 강타내지는 패배 당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Lange)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영적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손길은 변함없이 그의 선민을 보호해 나가신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범죄하고, 그 결과로 넘어지고 부서지고 깨어지고...., 너무 힘들어, 다시금 회개하고, 부르짖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입니다. 택한 백성입니다. 온 세상에 샘플로 보여줄 선택받는 백성입니다. 그러니 삼손과 같은 사사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러합니다. 만세전에 택하셔서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예수 믿게 하셨습니다. 천국 백성으로 삼으신 거에요. 그런데 세상의 쾌락에 눈이 어두워, 또는 광야와 같은 세상이라, 육적으로나 심적으로 지치고 힘들어, 손 높아 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간 사람들 있습니다.

 

또는 그저 편리한 생활이 최고이겠거니 생각하여 세상 사람들처럼 육적인 일에, 감정에 따라서, 영적인 면은 등한시하고.....,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지 아니하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말씀위에 서지 아니하고, 그저 자기 취향대로 살다가, 영적으로 피폐하고, 그러니 고난 속에 헤매이고 있을지라도.......우리 하나님은 늘 바라보고 계시는 거에요.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지요.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는 삼손 개인의 경우입니다. 그것은 좌충우돌해도 하나님이 인내하시며 그의 인생을 잡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을 손 안에 두고 지키시는 거에요.

삼손의 마음중심에는 늘 자신의 백성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건져내려는 사사로써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실인의 모습으로는 아닌 거에요. 거룩한 영성이 부족합니다. 특별히 육신의 정욕에 자주 눈이 멀어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실수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느 때 까지는 저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 택한 백성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계속된다면 하나님은 저를 버리십니다.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세 번째 여자, 들릴라를 통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삼손의 모습입니다. 그는 힘을 잃고. 눈이 뽑히고, 놋줄에 묶여, 옥중에서 맷돌을 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개인적인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서도 꼭 지켜야 할 것이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 닮은 영성입니다.

 

때로 좋은 일, 선한 일을 한다는 명목 하에 그것이 전체적으로 보면 이득이 됩니다. 그러나 개인의 죄성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최근에 유명 국제구호단체를 비롯한 40여 개의 크고 작은 구호단체 직원들이 분쟁·재난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저들의 난민을 보호하고 돕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안에 일하는 사람들이, 그 힘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나눠주면서 성을 유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라고 하는 틀이 있습니다. 대 사회적으로 선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좋은 일도 많이 합니다. 영혼 구원하는 일 이외에도 봉사활동으로 구제, 구호사역에 힘씁니다. 마땅히 교회는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주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영성은 언제고 중요합니다. 삼손을 볼 때에 안타깝습니다. 쓰임 받습니다. 크게 쓰임 받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렇게 행복하지 못합니다. 개인 영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교훈을 가슴에 담고 마음을 지켜나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사사기 강해 28] 사단의 공격 지점 운영자 2018.09.11 0 685
다음글 [사사기 강해 26] ‘절제’의 영성이 갖는 승리 운영자 2018.09.06 0 591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37
  • Total202,461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