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여호수아3:1-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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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신앙여정의 장애물, 요단강을 건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큰 난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단강입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때는, 곡식을 거두는 추수 때라, 본문 16절 말씀에 근거하면, 이때에는 강이 불어 올라서 언덕까지 그 수면이 범람하는 때니, 그 강을 건널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40년의 광야생활 중에 불평과 불만, 믿음이 없는 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출애굽 할 때에 20세 미만의 사람들, 바로 저들의 후손들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제 저 땅으로 들어갈 자들은 준비된 자들이요, 축복받은 사람들이요, 새 역사를 이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요단강이 저들의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이 시대의 우리의 모습으로 적용 해 보겠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지금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분들은 택함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신바와 같이 만세전에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 신앙으로 이 새벽에도 나와 기도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으나 여러분은 천국시민권을 갖고 있습니다. 고후5장 17절에 말씀과 같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의 정체성은 일반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습니다. 하늘에 속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영역은 하나님의 나라요, 인생의 종착역은 천국입성입니다. 아멘!
우리의 이 모습이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으로 받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이란 장애물이 있다는 것이에요. 구원받은 백성인데 여전히 건너야 할 삶의 장애물들이 우리 인생여정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기치 않게 닥쳐옵니다. 가정의 일로, 자녀의 일로, 생업의 현장에서,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또는 건강의 악화로 인하여, 또는 인간관계로 인하여, 그것도 같은 집안에서 동기들과의 관계의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눈 앞에서 넘실거리는 요단강의 거센 물살과 같이 이 어려운 삶의 파도를 넘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힘듭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요. 사람의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때로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보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을 떠나 요단강 앞으로 나와 진을 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립니다. 잠잠히 기다립니다. 그곳에서 유숙하며 사흘을 기다립니다. 아마도 과거 광야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렇게 평온한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왜 가지 않느냐고 어떻게 요단강을 건널 거냐고....., 불신의 마음으로, 모세를 향하여 불평, 불만이 쏟아져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자들의 모습은 역시 다릅니다.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닥쳐 올 때에, 또는 해결 방법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만세전에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종래 저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인데 작금의 이 문제도 해결해 주시지 않겠는가?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안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모세는 왕자였으나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가 되어 광야에서 무명의 양치는 자로 40년이란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는 일에 종으로 그리고 감옥에서 13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윗은 장인어른인 사울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죄 없는 도망자가 되어 10년이란 세월을 광야에서 정처 없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1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입성하여 복음을 전하겠다는 평생의 염원을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 감옥에서 2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로마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에 사무치는 염원이 있습니다. 이 새벽에도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그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흘이 지난 후에 하나님의 명령이 여호수아에게 떨어졌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요단강을 건너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하달되었습니다. 제일 먼저는 언약궤를 말씀하십니다. 두 개의 십계명 돌판이 들어있는 언약궤입니다.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들어있는 언약궤입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 앞에 있는 장애물인 요단강을 건너야 하겠습니까?
첫째,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언약궤를 앞장 세우라”는 말씀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 오늘날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주신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또한 제대로 말씀을 분별하고 가르치는 주의 종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같은 말씀을 읽으면서도 자기 맘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그래서 결국 사단의 사주를 받게 되고, 엉뚱하게 해석을 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단의 교주들이죠,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고, 자칭 예수가 나타납니다. 모든 성경의 내용을 비유로만 풀려고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성경을 전체로 보지 않고, 한 구절, 한 구절에만 묶여서, 구원받는 자의 숫자가 14만 4천명 밖에 없다는 엉뚱한 소리를 진리처럼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숫자에 들어가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것은 선교적인 마인드가 없으니 12지파를 만들고 14만 4천명을 정한다 하지만 왜 유독 한국 사람만 거기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그렇게 자기의 언어만 통하는 이 좁은 한국 땅에서만 12지파가 있어야 하고 14만 4천명이 왜 한국 사람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전혀 말도 않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게 먹히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혼미케 하는 악한 영의 역사라고 밖에 다른 해석이 없습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럴 일 없습니다. 이 새벽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기에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둘째,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성결해야 합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이 하시는 기이한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를 택하여 사용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반대로 말하면 심령이 청결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고 묵상을 하고 또 들어도 심령이 청결하지 아니하면 말씀이 그 곳에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는데요. 그러니 문제에 봉착할 때에 갈 길을 알지 못해요. 자기의 능력으로 힘으로 경험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나라는 심령이 청결한 자들의 나라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가 우리 죄를 말갛게 씻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때로 실수로 죄를 범할 수 있어요. 요한1서 1장 10절에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 죄가 용서함을 받습니다. 요한1서 1장 9절에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새벽기도는 기도 중에 어제를 돌아보고 또한 오늘 이 한날을 하나님 인도하심을 간구하며 그렇게 살기로 하나님 앞에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매일 하는 것입니다. 어제를 돌아보며 감사할 일 감사합니다. 또한 잘못한 것은 회개합니다. 그 청결해진 마음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말씀으로 그분의 뜻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인도하심을 따라 새날을 사는 것이며, 삶의 장애물들인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성결한 모습으로 서시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셋째, 믿음의 선포와 실천을 해야 합니다.
먼저 믿음의 선포를 보겠습니다. 3장 9절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10절 말씀입니다.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여러분 시편의 기록된 내용들이 거의 다 이 믿음의 선포입니다. “주는 나의 산성, 나의 방패, 나의 바위, 나의 요새, 나의 뿔, 나의 창, 나이 피난처가 되시나니 내가 전혀 요동치 아니 하리로다”
찬송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의 믿음의 선포요 고백입니다. 이 한날도 그렇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켜주신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실 것이다.” 아멘~!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0)
이렇게 준비가 되었으면 이제는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전진해 가야 합니다. 본문 14절과 15절 16절 말씀이지요.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요단강을 건너기 위하여 우리가 여전히 드려야 할 땀과 수고와 애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기쁨 중에 이루어집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어려운데 정작 일을 하는 사람은 감사와 기쁨으로 이루어갑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장애물 없는 인생이 없습니다. 어려움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이는 구원받은 자에게도 나타납니다.
그럴 때에 먼저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성결함을 유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포, 승리의 선포와 더불어 액션, 실천으로 요단강을 밟아야 하겠습니다. 요단강이 열리는 역사, 장애물이 해결되는 역사를 체험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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