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끊어내지 못한 솔로몬
과거에 우리나라에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국이 함께 있었던 삼국시대가 있었습니다. 결국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중국의 당나라군을 물리치며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이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신라의 장군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시지요. 예, 김유신 장군입니다. 명장이었던 김유신, 그가 얼마나 자신을 잘 다스렸는지(self-leadership) 이러한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저가 화랑이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배운 김유신은 천관이라는 기생 네 집에 자주 들락거렸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어머니 만명 부인은 자신의 아들은 김유신을 불러서 야단을 쳤습니다. “요즈음 네가 천관이라는 기생네 집에 자주 간다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큰일이다. 장차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이 기생에게 마음이 팔리다니.....“ 어머니의 탄식어린 말을 듣고 김유신은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기생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늦게까지 무예연습을 한 뒤 유신은 화랑들과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김유신은 몹시 피곤하여 잠시 말 위에서 졸고 있는 사이, 말이 멈추어 선 것을 알고 잠에서 깨어보니 말이 그 기생 천관의 집에 와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훈련을 마치면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그곳으로 자주 가게 되니 말이 자동으로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또한 그의 말 앞에는 그를 반기는 예쁜 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본 순간 김유신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김유신은 다시금 마음을 굳게 잡고서는 칼을 뽑아 그 말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대단한 절제력으로 자기관리를 확실히 했습니다. 신라 최고의 화랑이 되었고 신라의 장군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그 얘기를 읽을 때에 생각했었습니다. “왜 죄 없는 말을 죽인단 말인가~! 불쌍한 말이여~!”
성도 여러분, 습관적인 죄로부터의 단절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중독이 되면 더욱 더 힘들겠지요. 그러니 성경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7)
부귀영화가 따르게 되면 호방한 성격을 가진 남자들 중에 대부분은 성적인 유혹의 덫에 걸려들게 됩니다. 역사에 의하면 백제의 멸망을 불러온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삼천궁녀를 거느렸다고 하고 조선의 10대왕인 연산군은 기생인 장록수에 치맛바람에 휩싸여 나라의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여 결국 폐위 되었습니다. 동서양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이투스의 자료에 근거하면 신적인 권위를 갖게 된 로마황제들 15명 중에 14명이 동성애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철학자들이 황제를 교육시킵니다. 그런데 그 철학자들 중에 대부분이 또한 동성연애자들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그처럼 주변 왕국에 소문이 날 정도로 지혜를 자랑하던 솔로몬의 부귀공명은 그 종말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 요인의 한 복판에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나라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그의 생각은 군사를 훈련시켜 강한 나라로 세우기보다는 이웃나라들의 공주들과 정략결혼을 통해 평안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이미 모세의 율법에 엄중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신 7:3,4)
솔로몬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자신을 지키고 그리고 말씀으로 백성들을 가르치고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 모습이 이스라엘을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바로 아버지 다윗이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보면 역시 신앙은 고난 속에서 자라납니다. 솔로몬은 자라나면서 눈물 속에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더 깊이 하나님을 알아갈 계기가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저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주변의 나라들의 공주들과 정략적인 결혼을 하기로 한다면 많아야 주변 20개 나라의 20명의 공주면 족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3절에 보니 “왕은 후궁이 칠백명이요, 첩이 삼백명이라”고 했습니다. 말이 됩니까? 제가 계산을 해 보니 그의 왕정 전반기의 역할은 훌륭했으니, 40년 통지 기간 중 후반기 20년으로 계산을 해 볼 때에 그는 일년에 50명의 여자와 결혼을 한 것입니다. 이는 한 달에 4명의 여자를 새로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정략적인 결혼입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2절 후반부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이는 정략적인 결혼이라기보다는 거의 중독의 수준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니 무섭습니다. 못 끊어내는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그 수 많은 이방족속의 여인들 때문에 솔로몬이 여호와 신앙을 지켜내지 못합니다. 우상을 따르게 됩니다. 이미 멸망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와 같이 잘못된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경고의 싸인을 주십니다. “너 그러지 말아라 큰 일 난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을 나타나십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그런데도 솔로몬왕이 정신을 못 차립니다. 끊어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책망하실 때에 들어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우상들을 훼파하고 따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외국에서 공주들을 데려오는 일을 그쳐야 했습니다. 자신이 먼저 주님 앞에 회개하고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이 회복이 되어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고 보면 우리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 몸을 굴복시키고 감정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 리더쉽 연구분야에서 자기를 수양하는 용어를 self-leadership 이라고 합니다. 자기 리더쉽이란 말인데요. 우리 선조들은 修身(수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서는, 어떻게 남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하여 먼저 자기를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감정을 다스리는 일에 성공하면 결국 훌륭한 리더가 됨을 동서양이 막론하고 인정하며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일처럼 어려운 일이 세상에 없습니다. 남녀 할 것 없습니다. 특별히 습관적인 죄는 중독으로 발전합니다. 자기절제, 또는 자기억제, 이것이 중독이 되고 말면 자신의 이성의 힘으로 안됩니다. 이성은 안 되는 줄 아는데 몸이 따라와 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특별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닿을 때에 변화가 오겠지만, 그 때는 이미 많이 두들겨 맞고 나서야 돌아오는 모습이요, 후회막급인 것입니다. 그래도 매를 맞고 돌아오는 것이 낫겠지요.
결국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11절과 12절 그리고 13절까지 말씀을 읽겠습니다.
“11.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솔로몬이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에 11지파가 등을 돌립니다.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이 등장합니다. 그러한 잘못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않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심는 대로 거두신다는 우주적인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이 됩니다. 여러분이 잘하고 제가 잘하면 자녀가 뭘 좀 잘못해도 지켜 보호하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 안에 대대손손 잘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를 봅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이 너무 아닙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하지만 오늘날 세상의 삶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방적 차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야 하고, 기도할 때에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두둘겨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늘 깨어 기도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도 이 새벽에 기도합니다. “주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게 하옵시고, 자신을 지켜 정욕에 물들지 말게 하옵시고, 마음을 지켜 생명의 역사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기도하면 주께서 힘을 주십니다. 승리케 하십니다.
주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시고, 예비하시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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