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열왕기상3:16-2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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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 때에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17. 한 여자는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여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내가 그와 함께 집에 있으며 해산하였더니
18. 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19. 그런데 밤에 저 여자가 그의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20. 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21. 아침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22. 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23. 왕이 이르되 이 여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 여자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24. 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25.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26.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7.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하매
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神(신)의 한 手(수)
바둑을 주제로 한 일본만화 ‘히카루의 바둑’ 이라는 만화에 ‘신의 한 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 뜻은 바둑을 둘 때에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신통한 묘수”를 칭하는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신수(神手)란 단어가 원래 있었습니다. ‘신적인 수준의 극의에 다다른 바둑의 수’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본만화가 인기를 끌면서 ‘신의 한 수’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 알려 지면서 그 단어의 뜻이 좀 더 확장되어 이제는 “기상천외한 묘책 또는 먼 앞을 내다본 행동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 활용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로서는 도무지 만들어 낼 수 없는 수준의 생각이라는 것이라서 사람이 아닌 ‘신(神)’을 붙였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놀라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어떤 문제를 해결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하고나서도 “야~!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뭐 그런 거 말입니다. 필리핀에서 사역할 때였습니다. 그때에 다섯 살 정도 된 제 아들이 늘 상 텔레비전만 보고 앉아 있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텔레비전을 계속 틀어놓으면 이게 점점 뜨거워져서 나중에 불나, 그러니 너무 오래보면 안 돼, 자 이리 와서 한번 만져봐” 아들의 손을 잡아서 텔레비전 윗부분을 만져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뜨겁잖아요. 아이의 작은 눈이 똥그래지더라구요. 그리고 텔레비전을 스스로 껐습니다.
그 날 저녁에 집에 와서 보니 응당 텔레비전 앞에서 있어야 할 아들이 보이지가 않아요. 제가 텔레비전을 보려고 켰는데 안 나오는 거에요. 전혀 먹통이에요. “이상하다~! 이상하다~!” “어쩐지 아들이 텔레비전을 안 본다 했더니....!” “고장이 났나?” 그 텔레비전이 선임 이동구 선교사님이 필리핀을 떠나면서 팔고 간 것이니 이미 10년 정도 된 된 것입니다. “고장 났나보다” “그러면 고쳐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가까이 가서 그 텔레비전을 “탁” 쳤어요. 그리고 흔들어봤어요. 가끔 때리고 흔들면 말을 듣잖아요. 뭔가 선이 연결이 안돼서 그런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랬더니 “어~!” 텔레비전 안에서 밑으로 물이 주룩 떨어지는 거에요. “아니~! 어떻게 텔레비전에서 물이 나와?”
알고 보니 아빠 없을때에 텔레비전을 오래보다가 아빠가 한 말이 생각이 난 거에요. “텔레비전 너무 오래 보면 뜨거워져서 나중에 텔레비전에 불난다”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난 거에요. 그러니 이 어린 아들이 냉장고에서 얼음을 죄다 꺼내다가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은 거에요. 열 식으라고~!
이게 정말 완전히 상상을 초월한 신의 한수 아니겠습니까? 어린아이의 수준으로 보면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너무 놀라서 부랴, 부랴 텔레비전 뒷 부분을 열고 드라이기를 가지고와서 그 내부를 뜨거운 바람으로 한 참 말렸습니다. 그랬더니 한 참 뒤에야 다시 정상이 되어서 작동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는 이런 가짜 신의 한 수가 아니라 진짜 신의 한 수, 솔로몬이 자신의 기도의 응답대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니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멋진 판결을 내리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창기 둘이 솔로몬 왕 앞에까지 왔는데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실게임이죠. 분명 진짜 엄마는 한 사람이지 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그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한 엄마가 얼마나 둔한지 자다가 잘 못 움직여서 이제 난지 삼일밖에 안된 자신의 아들위에 눕게 되니 그만 아기가 압사당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러니 자신보다 3일 앞서 아들을 난 같은 또 다른 창기의 아가가 생각이 난 거에요. 잠자는 사이 죽은 자신의 아기를 그 엄마 옆에 가져다 놓고 그 엄마의 아기를 자신이 가져온 것입니다. 바꿔치기 한 거에요. 그러니 잠에서 깨어난 엄마가 죽은 아들을 보니 분명 자신의 아들이 아니에요. 그래서 바꿔치기 당했다는 사실을 안 이 여자가 억울함을 말하지만, 난지 삼일밖에 안된 그 어린 아가의 얼굴을 어느 누구가 미리보고 또 기억하고 알 수 있겠습니까? 오직 엄마만 알 수 있는 거에요. 억울함이 말도 못하지요.
아기를 실수로 죽인 이 한 여자의 마음에 처음에는 놀랐겠지요. 그리고 슬펐겠지요. 그런데 엉뚱한 생각이 든 것입니다. 바로 시기심입니다. 함께 사는 여자가 혼자 아기를 키울 것을 생각하니 그 마음에 아주 지독한 시기심이 일은 것입니다. 결국 포기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포기하지 않습니까? “그 아기를 칼로 베어 둘로 나눠라” 그 말을 들을 때까지 포기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연히 가짜 엄마지요. 이 시기심은 사단이 주는 아주 독하고 악한 마음입니다.
당연하죠. 어느 엄마가 자기 아기를 칼로 둘로 나누는 것을 용납하겠어요. 그럴 수 없지요. 그러니 진짜 엄마는 “왕이여, 그러지 마십시오. 그럴려면, 차라리, 그냥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 이게 진짜 엄마지요. 솔로몬 왕의 이 판결은 금방 소문이 났습니다. 어떻게 그런 엉터리 같은 판결이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요?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엉터리 판결 아닙니까?
마치 제 아들이 “텔레비전 뜨거워지면 불 난다” 그러니 “그러면 식히면 되겠네.” 얼음을 잔뜩 텔레비전에 쌓아놓는 거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사람의 심리를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칼로 아기를 베어 둘로 나누면 진짜 엄마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란 히브리원어로 ‘솨마레브’ 영어로는 'Discerning heart' 즉 통찰력, 분별력을 말합니다. 그것을 솔로몬은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보너스를 주셨습니다. 저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 솔로몬의 지혜를 구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을까요? 11절에 그 답이 나오지요. 다른 왕들은 장수와 부와 원수들의 생명의 멸함을 구했습니다. 자신만의 영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보다는 ‘공의’을 구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나라, 백성, 하나님의 택한 선민,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왕으로써의 책임,
자신이 왕이 된 것이 자신의 의지와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저는 완전히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3장 6절 말씀을 다시금 읽도록 하겠습니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자신이 왕이 된 것은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로 솔로몬이 태어났고 왕의 자리에까지 서게 되었다 그 말 이지요.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직업을 갖고, 교회에서는 직분을 받고, 가정에서는 가장이 되고 엄마가 됩니다. 다 귀해요. 그런데 특별히 교회에서의 직분은 더욱 특별합니다. 직업을 갖고, 가족의 가장이 되는 것은, 그 중심이 나에게 쏠릴 수 있습니다. 결국 나의 삶과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둥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받는 직분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공의’를 생각하고 ‘공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라고 하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우리’를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 우리는 곧 성도들의 모임이요, 성경적 용어로, 성도들의 몸은 교회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거기에는 조금도 개인적인 욕심이나 명예를 구하고자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저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로 말미암아 교회가 든든히 서 갈 수 있다면 그것이 감사요, 기쁨이요, 보람이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바라는 소원이 자기에게 집중된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하여 백성의 행복과 안전과 안위를 위한 소원으로 지혜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시고 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보너스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로 주신 직분은 책임이 막중합니다. 그러니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은혜로 주신 것은 너무 감사한데 일을 그르칠까 두렵사오니 저에게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옵소서! 그런 기도 아니겠습니까?
이 공의를 위한 책임감과 열정은 직분자에게 언제고 필요합니다. 저는 2019년을 준비하면서 인사개편을 했습니다. 여러 지원자를 면접했습니다. 제가 보고자 했던 기준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역자로써의 책임감과 주를 향한 순수한 열정 그것이 기준이었어요.
그 증거를 저는 적어도 전임이라면 “교회 가까이 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세상의 직업은 어디에 사는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출근시간에 도착하면 되는 것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시로 때때로 24시간 깨어있어야 해요. 뭔 일이 있다하면 제일 먼저 달려올 준비를 교역자가 하고 있지 않으면 목자의 역할은 이미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거처가 멀면 힘들어요. 처음에는 열정으로 하지만 사람의 체력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너무 많이 봤습니다. 선교사들 중에 교회개척지가 지방이에요. 산 넘고 골을 건너 교회 없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데 정작 집은 수도에 있습니다. 자녀들 좋은 학교에 공부시켜야지요. 병원가까이 있어야 하지요. 한국에서 들어오는 물품을 살 수 있는 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여름철에 우기철이 되고 길은 끊어지고 오지는 차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개척하는 교회에 한 주 두주 때로는 한달 동안 가보지를 못합니다. 누구 책임입니까? 왜 이동구선교사님이 그 시골 지방으로 들어가고, 산속에 머물고, 저 또한 그렇게 하고, 이경수 선교사님이 수도권에 머물지 않고 원주민이 살고 있는 쟘발레스 수빅에 가서 살았겠어요? 동료선교사들이 말렸어요. 지방에 내려가면 고생한다. 가지마라. 그래요. 고생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고생을 능가하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열매는 컸습니다.
“선교사로써의 책임감과 주를 향한 순수한 열정” 때문 아니겠습니까? 가까이 가는 거에요. 가서 저들 중에 거하는 거에요.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수고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바로 바로 차 끌고 들어가서 말라리아로 폐병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병원으로 나르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 우리교회에 새롭게 인선된 교역자들은 교회 가까이 이사 옵니다. 벌써 왔어요. 성지아파트로 왔어요. 모두에게 새벽기도회에 주중 최소한 4번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결단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셨던 지혜도 주시고 보너스로 능력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영권도 주십니다. 그러면 교회는 든든히 서갑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직분을 맡겨주실 때에 솔로몬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나보다는 나라와 백성을 위한 소원, 직분자는 나보다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한, 모두를 위한, 공의를 위한 소원 바라시고 기도하실 때에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럼요. 당연히 주시지요. 내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소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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